예전에 브라질 원정군 관련해서 어떤 갤러가 쓴 글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브라질이 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한 이유를 자세히 풀고자 함.

출처는 브라질 현지 사이트 + 위키들임.


1. 대서양 벨트


독일의 브라질을 향한 잠수함 작전이 시작된 것은 1942년 2월부터였다.

당시 브라질은 중립을 표방하였고 때문에 독일과도 관계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남미 국가였다.

이 말인 즉슨 이들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외3교적 스탠스에 발을 맞추는 편이 정권을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사안이었고,

때문에 1941년 12월 미국이 '진주만을 기억하라'고 외치면서 전격적으로 참전하자 친 연합국으로 슬슬 기울기 시작한다.


사실 브라질이 친 연합국으로 기우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루즈벨트는 브라질을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를 포섭하기 위해 엄청난 경제원조를 쏟아부었다.

이른바 좋은 이웃 정책이었는데, 그 결실 중 하나가 브라질 최대의 철강공장인 CSN이다.


250px-CSN01.jpg


물론 루즈벨트는 브라질이 친독적 중립을 유지하거나 혹여 추축국으로 가담할 경우 

브라질 북동부 나탈에 대규모 상륙작전을 벌여서 바르가스 정권을 엎어버리는 대안도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다(사실 1942년 초까지는 이쪽이 본안이었다).

이른바 '플랜 러버(고무 계획)'였다.


미국이 불안해 하는 이유는 충분하였다. 

보고서 상으로 브라질 육군의 70%가 친나치주의자였고, 브라질 남부에는 150만이나 되는 독일계 브라질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더해서 바르가스 정권은 '이스타두 노부'를 기치로 하는 극도의 파시즘 정권이었으며(살라자르의 이스타두 노부 맞다).

미국의 '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군사 주둔 요구'를 일언지하게 거절하여 루즈벨트를 빡돌게 만들었다.


그런데 미국은 왜 그렇게 브라질의 대응에 촉각을 곤두세웠을까. 이유는 심플했다. 브라질은 이른바 대서양 벨트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수에즈 항로가 봉쇄된 상황에서 추축국들은 전쟁의 지속적인 수행을 위해 희망봉을 경유하는 항로로 고무와 같은 천연자원을 들여왔다.

연합국은 이를 봉쇄하기 위해 브라질 북동부와 아프리카 서부를 잇는 선을 그어 독일의 수송로를 봉쇄하고자 했다. 이것이 대서양 벨트이다.


만약에 미국이 브라질 북동부에게 기지를 건설하면 독일의 주요 수송로가 붕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 때문에 루즈벨트는 브라질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무진장 애를 썼고, 그럼에도 바르가스가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정권을 엎어버리려고 했다.


결론적으로 루즈벨트는 그나마 온건한 인물이었고 때문에 군사적 옵션보다는 외3교적 옵션을 선호하였다.

군부의 '지금 당장 브라질 엎어버리자'는 헛소리를 일축하고는 온갖 당근을 퍼부었다.

그는 특히 독재자가 자신의 체면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바르가스의 비위를 잘 맞춰주었다.


루즈벨트의 노련한 외3교 솜씨는 마침내 브라질을 친연합국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결국 1941년 12월 나탈, 레시페, 벨렘 등에 미군이 진주하였고 1942년 1월 28일 남미 지도자 회의에서 미국의 '독일과 연 끊어'라는 요구에 제일 먼저 응하였다.



2. 8월의 비극


브라질은 그럼에도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지만 독일 눈으로 보기에는 '이 새끼들이 어디서 약을 팔아'였다.

이에 독일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브라질에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하였고 당장 1942년 2월 15일 화물선 부아르케가 침몰하였다.

1941년 3월 22일 이집트에서 타우바테가 공격당한 것이 최초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기총 소사에 불과하였는데, 이번 건은 명백한 공격이었다.

뒤 이어서 2월 18일에 올린다, 25일에 카바엘로가 연이어서 격침을 당하였다.


당연히 브라질의 독일에 대한 적개심은 점점 치닫고 있었고 1942년 3월 미국-브라질 워싱턴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서 브라질은 자국에서 나는 전략적 자원들을 오직 미국에게만 판매, 브라질 북동부에 미공군기지 부지 제공을 약속하였고,

미국은 브라질에서 나는 모든 천연자원을 제한 없이 모두 구매, 브라질군의 현대화, 경제자금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당장 일반인들은 배가 침몰했다더라 수준에서 멈춰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브라질의 침몰한 배들 전부 공해상, 혹은 미국 앞바다였고 가장 많이 나온 사상자가 54명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전쟁 중, 혹은 독일이 브라질을 공격하고 있다는 상황에 빠지기에는 좀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8월 들어서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1942년 8월 7일. 독일 잠수함 함대 사령부는 남대서양에 있는 모든 잠수함에게 '브라질 해안애서의 자유로운 행동'을 명령하였다.

명령의 내용은 간단명료 하였다. 아르헨티나 국적을 제외한 모든 선박을 격침할 것. 민간선이던 군용선이던 상관하지 않는다는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첫시작이 바로 베펜디였다.


배펜디 (1930).jpg


8월 15일 바이아 주 살바도르에서 출항한 여객선 베펜디는 해안가에서 약 37km 떨어진 근해에서 다음 기착지인 마세이오로 항해하고 있었다.

이는 선사인 '로이드 브라질레오'가 계속되는 격침에 진절머리를 낸 탓에 내놓은 고육지책이었다.

당시 배에 타고있던 인원은 총 306명. 이 중에는 부대 이동을 하는 제7포병대 인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배의 속도는 시속 9노트였고 당시 배에서는 저녁을 마친 뒤 너나 할 것 없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 베펜디를 포착한 것은 하로 샤흐트 함장의 U-507이었다.

19시 12분 1번째 어뢰가 발사되었는데, 정말로 재수가 없게도 정확히 보일러실에 명중하였다.

보일러실이 폭발하면서 화염이 솟구치기 시작하였고, 명중 이후 고작 2분 만에 조난 신호를 보낼 틈도 없이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그 와중에 507은 2번째 어뢰를 발사하였는데, 507의 목적은 단순한 격침이 아니라 최대한 희생자를 많이 내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306명에서 270명이 목숨을 잃었고 고작 36명만이 살아남았다. 브라질 역사상 최대의 해난사고였다.


간신히 잔해에 의지해서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생존자들은 저 멀리서 폭음과 함께 섬광이 이는 것을 보았다.

베펜디의 생존자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21시 3분 507이 발사한 2발의 어뢰에 여객선 아라라콰라가 피격, 5분 만에 침몰하였다.

총원 142명 중 생존자는 고작 11명이었다.


아라라콰라.jpg

군인이 탔다는 핑계라도 있던 베펜디와 달리 아라라콰라는 그것도 없었다.


507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4시 13분, 해안에서 고작 13km 떨어진 곳에서 아라카우를 향하던 아니발 베네볼로가 격침당했다.

하필이면 잠을 자던 새벽에 공격을 받은 상황이었기에 가장 생존율이 바닥이었다. 154명 중에 4명이 기적적으로 생존하였다.


아니발 베네볼로.jpg

배가 격침당한 이후 아라카우시는 그야말로 적막에 휩싸였다. 사망자 상당수가 아라카우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날인 8월 17일. 설마하겠지만 이번에도 507이었다. 오전 10시 49분 이타기바가 30마일 떨어진 해안에서 격침, 145명이 생존하였고 36명이 사망.

13시 3분 이타기바의 조난자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온 아라라도 공격하여 격침하였고, 총원 35명 중 15명이 생존,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타기바.jpg아라라 1.jpg

이타기바(좌)와 아라라(우).


브라질이 사건을 파악하게 된 날은 8월 18일. 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는고 하니 15일은 토요일, 16일은 일요일, 17일은 상황파악이 덜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널리 퍼지면서 브라질이 어떻게 되었냐고? 그야말로 전국민적으로 반독을 넘어서 혐독으로 치닫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브라질의 해안에 선박 잔해와 같이 시체들이 떠밀려 오는데 정상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분노가 치솟는게 당연하겠지만.


이 와중에 브라질 전국에서 독일계, 이탈리아계, 일본계가 운영하는 상점이 무자비하게 약탈당하였고 

조금이라도 독일계라고 의심되면 린치를 당하였다. 평소에 친독적인 발언을 내뱉던 사람들도 이런 린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학생, 노동자, 엘리트를 막론하고 전국 주요 도시에서 가두행진이 일어났고, 대통령궁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 당장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구하였다.


최종적으로 바르가스 정부는 8월 22일 각료회의를 통해 중립 중단을 선언하고, 

마침내 8월 31일 법령 제10,508호를 발표하여 브라질은 공식적으로 독일, 이탈리아와 교전상태에 놓여졌음을 천명한다.



507의 함장 하로 샤흐트. 브라질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개자식이었겠지만 

1943년 1월 13일 연합군의 공격에 잠수함이 격침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