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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GLE 들을 보고 오시면 더욱 좋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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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누엘의 일본군이 전멸하자, 더 이상 아그노 강을 도하할 미군의 측면을 위협할 존재는 아무도 없었고, 미 제1군단은 휘하 제6사단과 제25사단에게 아그노 강을 도하하여 산 호세로 진격하라고 명령했음. 산호세로 향하는 주요 도로의 교차점인 북쪽의 루파오(Lupao)와 무뇨스(Munoz)는 제2전차사단 부대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고, 이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했음.
루파오는 제10전차연대가, 무뇨스는 제6전차연대가 지키고 있었는데 제6전차연대는 48대의 치하 전차, 4대의 95식 경전차와 47mm 대전차포 16문과 105mm 야포 4문, 1,800여 명의 병력을 보유했고, 제10전차연대 또한 비슷한 전력을 보유했음. 이들 역시 전차 엄체호와 포진지들을 마을 외곽에 건설했고, 이 진지들은 마을 내부로 통하는 교통로로 연결되어 있었음.
무뇨스의 제6전차연대가 상대할 미군은 6사단의 제20보병연대였음. 이들은 4.2인치 박격포 중대 1개와 제44전차대대 소속 1개 중대의 지원을 받으며 1월 28일 무뇨스 인근에 도착했고, 1월 31일 1개 보병대대로 무뇨스 남쪽 발록(Baloc) 마을과 무뇨스를 동시에 공격하였음. 발록은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무뇨스 안으로는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했음.
2월 1일, 이번에는 2개 보병대대로 공격을 감행하고 1군단에서 보내준 3개 포병대대로 무뇨스 마을을 대대적으로 포격하였으나 여전히 한 번 공격할 때마다 몇 야드를 전진하는 것이 전부였음. 2월 2일 이루어진 일본군의 전차를 동반한 야습은 참담한 사상자를 내고 실패로 끝났으나, 미군의 전진 역시 지지부진하긴 마찬가지였음. 2월 3일 무뇨스-산 호세 간 도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여 일본군을 무뇨스 안에 고립시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음.
제20보병연대가 남쪽의 무뇨스에서 발이 묶인 동안 북쪽의 제25사단은 제10전차연대와 전투를 치르고 있었는데, 제10전차연대 대부분은 루파오와 그보다 약간 남쪽의 산 이시드로(San isidro)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차량화 포병 2개 포대와 전차 1개 중대는 아직 철수가 끝나지 않아 그보다 약간 뒤쳐진 상태였음.
제2전차사단 본대는 페@미엔타(Pemienta)-우밍간(Umingan)-루파오 고속도로를 통해 본대와 합류하라고 지시했고, 이들은 1월 29일 밤 페@미엔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 지역은 이미 미군이 먼저 점령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해둔 곳이었고, 일본군은 그들이 자랑하는 야습에 당해 6시간의 전투 끝에 전멸했음.
그러나 일본군 기갑부대 일부를 전멸시킨 제25사단은 우밍간에 주둔하던 일본군 보병부대의 강력한 저항 때문에 우밍간을 넘어 고속도로를 타고 루파오로 진입하려던 계획을 보류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음. 제25사단은 27연대로 우밍간의 일본군을 견제하면서 나머지 35, 161연대에게 우밍간을 우회하여 루파오와 산 이시드로로 진격하라고 명령했음.
제35연대는 2월 1일 루파오에 도착하여 정찰 활동을 벌였고, 다음 날 전차 중대의 지원을 받는 1개 보병대대로 루파오 공격을 시작했음. 그러나 기갑부대와 보병 수백 명이 지키고 있는 루파오에 1개 보병중대 만이 있다고 한 정찰대의 잘못된 첩보와 열대림이 우거진 지형을 활용한 일본군의 위장 때문에 2월 1일의 공격은 저지되었고, 다음 날에 가서야 3개 대대를 동원하고 루파오 마을을 고폭탄과 백린탄으로 도배한 후에야 겨우 마을 남쪽 끝자락을 겨우 점령할 수 있었음.
마을에 들어가서도 일본군의 강력한 방어에 부딪혀야 했는데, 포격으로 파괴된 건물 잔해들은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들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하였고, 가끔은 그 안에 일본 전차들이 작은 덩치를 이용하여 자리잡아 일본군들에게 화력 거점을 제공해 주었음.
밤이 될 때마다 일본군은 전차와 보병들로 야습에 나섰고, 결국 루파오를 공격한 35연대는 산 이시드로- 루파오 도로를 차단하여 산 이시드로에서의 일본군 증원을 막는 것 외에는 방어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음.
일본군의 저항이 완강하자 1군단 사령부는 산 마누엘에서와 같이 전투들이 장기화 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예하 사단들에게 도로 상의 일본군 방어거점을 우회하여 산 호세로 향하라고 명령했음. 이에 따라 제6사단의 1, 63연대는 무뇨스를 우회하여 남쪽에서, 우밍간 전투를 마친 제25사단의 27연대는 루파오와 산 이시드로를 우회하여 산 호세로 향했음.
1군단은 산 호세에서 격렬한 저항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산 호세는 2월 2일 루손 남쪽에서 일본군 105사단이 철수를 완료한 이후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고, 6사단의 1연대는 미약한 저항을 물리치고 2월 4일에 산 호세에 입성함.
루손 남부에서 거의 모든 일본군이 철수를 완료하자 루손 섬을 관장하는 일본군 최상위부대이자 제2전차사단의 상급부대였던 제14방면군은 산호세가 미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인 2월 4일, 제2전차사단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으나 철수 명령을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갑차량을 보유하고 있던 제2전차사단이 탈출할 수 있는 도로들은 이미 미군에게 차단된 상태였음. 게다가 대다수의 제2전차사단 예하부대들은 통신 상태가 좋지 않아 2월 6일에나 철수 명령을 접할 수 있었음.
또한 철수 명령을 받았을 때 일본군 방어부대들은 전력이 매우 약화되어 있는 상태였음. 철수 명령을 받아든 2월 6일 당시 제6전차연대는 미군을 일주일 넘게 붙잡아두며 무뇨스 마을 절반을 사수하고 있었지만 50여 대의 전차 중 35대를 잃었으며, 미군이 마을 진입 대신 포격으로 차근차근 다지기를 선택하며 포병이 부족한 일본군은 이에 대응할 수단이 없었음.
일본군이 가진 105mm 야포들은 전투 초반에 무력화 되었고 미군은 7개 포병대대의 105mm와 155mm, 심지어 야전군 직할의 8인치 대포 까지 동원하여 대포병 사격을 당할 걱정없이 1만 5천 발의 포탄을 무뇨스에 쏟아부었고, 여기에 제5공군 소속 항공기들까지 무뇨스에 네이팜 폭격에 동원되었음.
철수 명령을 받아든 제2전차사단은 2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밤 동시다발적으로 철수하기로 결정했음. 제6전차연대의 탈출은 소수의 보병 지원을 받는 4대의 전차로 이루어진 양동부대가 산 호세 방면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통해 탈출하려는 주 병력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기위해 반대방향으로 2월 7일 03시에 공격을 가함으로써 시작되었음.
양동부대는 공격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전멸했으며, 주 병력들도 63연대의 봉쇄망에 가로막혔음. 이들은 곧 이어 격렬한 포격을 받았고, 제44전차대대의 셔먼 중대들이 포격과 보병들의 공격에도 살아남은 일본 전차들을 공격했음. 어두워서 일본군 대열을 식별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미군 전차들은 30구경 기관총을 발사하여 일본 전차들의 장갑에 의해 예광탄이 튕겨져 나오는 곳에 사격을 가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고 함.
제6전차연대는 탈출 과정에서 병력 247명과 전차 11대, 트럭 10대를 상실했고, 전투 기간을 통틀어 전차 52대와 병력 1,520명을 잃으며 사실상 전멸했음. 그에 반해 미군은 전사자 46명과 164명의 부상자, 105mm 자주포 1대를 상실했고, 전차 손실은 한 대도 없었음.
루파오에 있는 제10전차연대는 제6전차연대와 다르게 전차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장비와 차량들을 파괴하고 전차 엄호 하에 도보로 산악지대로 퇴각하고자 하였음. 제6전차연대와 마찬가지로 2월 6일에서 7일로 넘어가는 밤 탈출을 감행한 제10전차연대 병력들은 미군 35연대 3대대의 방어선에 가로막혔고, 바주카 공격과 716전차대대 소속 미군 전차들의 공격으로 탈출을 시도한 11대의 전차들 중 5대 만이 퇴각에 성공할 수 있었음.
루파오와 산 호세 사이에 위치한 산 이시드로에 주둔하고 있던 제10전차연대 소속부대들은 좀 더 운이 좋았음. 이들은 철수 명령을 다른 부대들과 비교하면 이른 시점에 수신할 수 있었고, 2월 5일에 중장비들을 파기하고 철수길에 올랐음. 2월 6일에 미군 제161연대가 산 이시드로 점령을 위해 총공세에 나선 것을 보자면 아주 운이 좋았던 거임. 161연대는 산 이시드로 마을에 23대의 전차와 18대의 트럭, 2문의 75mm 야포가 파괴되거나 버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미 도망간 일본군을 추격하기는 무리였음.
1월 9일 미군의 루손 섬 상륙부터 2월 첫 주까지 제2전차사단이 산 호세 일대를 방어하면서 루손 섬 중남부에 위치한 일본군 10사단과105사단, 산호세 보급창 관리 부대들은 루손 북부 지역에 위치한 산악 요새로 철수할 수 있었고, 제2전차사단은 우군이 철수를 완료할 때까지 산악요새로 통하는 입구를 방어한다는 작전 상의 목표를 달성하였음.
그러나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제2전차사단이 입은 손실 또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음. 상륙 당시 전차 200여 대와 병력 수천 명을 보유하고 있던 제2전차사단은 약 한 달간의 전투 끝에 전차 180여 대와 거의 모든 포병 장비, 2,000여 명의 병력을 잃어야 했음. 필리핀에서는 남은 전쟁 기간 동안 전차 몇 대가 매복 공격을 가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제2전차사단 소속 부대들은 기갑부대가 아닌 보병 부대로 전투를 치러야 했음.
참고자료 및 사이트
Steven.J.Zaloga, M4 sherman vs type 97 chi-ha: The pacific 1945, osfrey(2012)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2018/11/17/the-enemy-must-be-annihilated/
https://history.army.mil/books/wwii/MacArthur%20Reports/MacArthur%20V2%20P2/ch15.htm
加登川幸太郎. (1974). 帝国陸軍機甲部隊. 白金書房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나마 기갑사단급으로 동원해서 싸워보고 전멸했군...
미군이랑 기갑사단으로 싸워본 건 저게 처음이자 마지막임 - dc App
이집 제목 맛집이네.
쟤네 전차사단이 중국에 3전차사단이랑 본토에 1전차사단이 끝인가?
만주에 있다 본토로 이동한 1전차사단 필리핀에서 전멸한 2전차사단 중국 대륙에 있던 3전차사단 45년 급하게 편성한 4전차사단 (다만 전차 부족으로 실제 규모는 여단급) 사단급 기갑부대는 이렇게 4개였음 - dc App
그래도 목적은달성했으니 그래도 성과는있엇네
ㅇㅇ 덕분에 최종적으로 핵폭탄 2방 처맞고 무조건항복 했잖어 ㅋㅋㅋ
전멸하긴 했어도 악으로 깡으로 버텨서 주력 부대 철수 시간은 벌어줬네
ㅇㅇ 덕분에 최종적으로 핵폭탄 2방 처맞고 무조건항복 했잖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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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특 기갑부대보다 보병이 더성가심 - dc App
존나 코즈믹호러네
거진 포의됐는데 어떻게 탈출하긴 했노 얘들 지휘관은 누구임?
산 이시드로에 주둔하던 부대를 말하는 거라면 제10연대장 하라다 카즈오(原田一夫) 중좌가 직접 지휘하던 부대였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