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와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주의 타만 반도(Таманський півострів) 사이에는 케르치 해협(Керченська протока)이 있다. 이 해협을 통해서 아조프 해와 흑해가 연결되고 나아가 돈 강과 러시아 내륙수운까지 연결된다. 해협의 간격은 18km로 상당히 짧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과 소련은 이 해협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를 펼쳤었다.
이 해협 중간에는 좁쌀만한 섬이 하나 있다. 바로 투즐라(Тузла)다. 이 섬은 1925년 흑해에 몰아쳤던 폭풍우로 인해 모래가 쌓여 자연적으로 탄생했다. 소련은 이 섬을 크림 반도 소속으로 넣어뒀다. 1954년 흐루쇼프가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 소속으로 변경시키면서 섬은 우크라이나 관할이 됐다. 섬은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는 모래톱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퇴적면이 넓어지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식물 씨앗들이 뿌리를 내려 나무까지 자랐다. 하지만 사람은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1990년,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가 우크라이나가 탄생했다. 당연히 투즐라 섬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여겨졌다. 이제 남남이 된 러시아는 내심 이 섬이 가지고 싶었지만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영토야욕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도 투즐라 섬에 경비병력을 주둔시키지 않았다. 케르치 해협은 절반 이상이 우크라이나 쪽에 있었지만 우크라이나는 딱히 해협의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고 양 측은 자유롭게 해협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3년, 푸틴이 정권을 잡은 러시아는 고유가 덕분에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투즐라 섬에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2003년 9월 29일, 수십대의 카마즈 트럭들이 타만반도에 집결하더니 투즐라 섬 방향으로 인공 모래톱을 만들기 시작했다. 크림 반도 쪽의 우크라이나 국경 수비대는 이 사건을 키이우에 보고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외무부 장관을 직접 모스크바로 보내서 이 사태에 대한 해명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러시아 측의 답변은 가관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투즐라 섬과 타만반도 사이에 댐을 건설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러시아 2중대'로 불렸던 우크라이나도 이건 명백한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러시아 정부는 투즐라는 섬이 아니고 자연형성된 사취(砂嘴)이므로 영토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 웃긴건 푸틴의 태도였다. 기자회견에서 어느 기자가 투즐라 섬에 관해서 물어보자 푸틴은 '거기에 댐을 짓고 있다고요?'라며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러시아의 의도는 뻔했다. 케르치 해협의 영유권을 가져오려는 속셈이었다.
빡친 우크라이나는 국경 수비대 500명을 투즐라 섬에 상륙 시키고 빈약하지만 해군 경비정들까지 파견했다. 국방 정보국(GUR) 소속 특수전 부대가 배치됐고 우크라이나 공군은 MIG-29와 대공 방어 시스템을 끌고 왔다. 이 때문에 면적이 고작 3km² 밖에 안되는 투즐라 섬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크림반도 쪽에서는 국경 수비대원들의 아내들이 몰려와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남편들의 얼굴을 보고자 눈물을 흘렸다. 키이우 시내에서는 러시아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투즐라 섬을 지키겠다는 자원입대자들이 몰려들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아예 투즐라 섬 남쪽 끝에 국경표시 말뚝을 박아 우크라이나의 영토임을 표시했다.
당시 남미순방 중이던 우크라이나의 레오니드 쿠치마(Леонід Данилович Кучма) 대통령은 바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비록 루카셴코와 맞먹을 정도로 러시아의 충실한 따까리였지만 친서방 외-교에도 힘을 쏟고 있었다. 쿠치마는 이게 해당되나 싶어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까지 펼쳐보았다고 한다.
러시아 인부들은 열심히 모래를 쏟아부으며 투즐라 섬 100m 근방까지 도달했다. 10월 23일, 쿠치마는 직접 투즐라 섬을 방문하여 러시아 측에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푸틴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지만 다음날 모스크바에서 양국 총리들이 회담을 가졌다. 의외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척을 지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음날이 되자 양국은 투즐라 섬에 대한 협정을 맺었다.
1. 투즐라 섬은 우크라이나 영토로 남는다.
2. 러시아는 투즐라 섬에 대한 영유권을 요구하지 않는다.
3. 케르치 해협은 오로지 우크라이나 해군과 러시아 해군만 통과 가능하며 제3국 해군은 진입을 금지한다.
겉으로 보기엔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한 내용이었지만 러시아는 교묘하게 케르치 해협을 공동수역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래도 당시까지만 해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척을 질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역시 케르치 해협에 대한 일방적인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 선에서 끝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후 투즐라 섬에는 국경 수비대 1개 소대가 주둔하는 기지가 세워졌고, 아예 이 섬에 거주하는 민간인들도 생겼다. 러시아 정부는 이 사태가 크라스노다르 주지사의 독자적 행동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 해군은 위의 협약 덕분에 케르치 해협을 통해 병력을 상륙 시킬 수 있었고 크림반도를 강제점령했다. 그리고 1년 뒤 짓다 만 공사를 다시 시작하여 끝내 투즐라 섬과 모래톱을 연결 시켰고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이어주는 크림 대교가 섬을 거치며 건설됐다.
현재까지도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림대교를 해체해버리고 이 섬을 회복해야만 전쟁이 끝날 거라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저 섬 까지의 진출이 돈바스 러시아 국경선 완전 회복과 함께 궁극의 양대 과제구나
스톰쉐도우야 힘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