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45년 제주도에서 일제가 준비했던 일본 본토 방어 작전.
[개설]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어 미군과의 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하는 등 결전 준비를 진행했다.
[역사적 배경] 1910년 한국을 강점한 데 이어 1937년 중국 대륙에까지 진출한 일본에게 제주도는 중국의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등을 폭격할 수 있는 최단 거리의 전략 요충지였다. 이로 인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일본 해군 비행장(일명 알뜨르 비행장)이 건설되어 1937년 8월 중순부터 중국 남부를 폭격하기 위한 도양 폭격 기지로 활용되었다. 일본의 상하이 점령 이후 제주도의 전략적 가치는 줄어들었지만,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하면서 제주도는 또다시 전략적 요충지로 그 가치가 높아졌다.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을 계기로 미군이 공세로 전환하면서 전투는 점차 일본 본토로 접근하여 갔고, 1944년 봄부터는 미군 잠수함이 일본 근해까지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일제는 수송선 침몰이 이어져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에서의 물자 수송이 어렵게 되자 또 다른 유력 물자 보급 기지인 한반도 및 중국 대륙 간의 보급로 확보는 절체절명의 과제로 대두되었다. 제주도는 지리적으로 일본의 남단 큐슈[九州] 지방과 중국 남부를 연결하는 직선상에 위치하면서 필리핀과 한반도 사이에 놓여 있어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 3국의 군사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던 것이다. 제주도를 미군에게 점령당하면 일본은 대륙으로부터의 물자 공급 및 관동군 차단, 일본 본토에 대한 직접 공격이 이루어질 수 있어 전쟁 수행 능력을 사실상 상실할 우려가 큰 상황이었다.
[목적] 결7호 작전을 수행하는 제58군 주력 부대를 미군이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투입, 사전에 그 지역을 확보하고, 미군이 제주도 상륙 작전을 전개할 경우 전력을 기울여 이를 격멸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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