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출현에 가장 직격으로 영향을 받은 업계가 바둑임. 현존 최강의 바둑기사인 신진서 9단조차도 바둑 AI로 연습하고, AI를 사용한 치팅이 동원되면 인간이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모두가 인정할 지경이 되었거든. AI는 인간의 고정관념에 연관되지 않고 매 수 돌을 둘 때마다, 인간은 따라갈 수 없는 계산력으로 최선의 수를 찾아서 보여줌.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 AI가 인간의 고정관념에 전혀 영향받지 않는 것은 좋지만, 특정 상황에서 왜 어떤 수가 최선이라고 판단했는지 설명해주질 못함. 인간 바둑기사들끼리라면 '넌 이 상황에서 왜 이렇게 두었냐, 왜 이렇게 두지 않았냐.' 하고 논의할 수가 있거든? 실제로 많이들 그랬고. 그런데 AI는 그냥 '어디가 최선의 수임, 거기에 두면 이길 확률 92%', 이런 식으로만 제시해. 


그러면 왜 여기가 좋은 수인지, 혹은 어디가 나쁜 수인지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었어. 


지금처럼 AI가 널리 퍼지지 않았고, 딥마인드社가 알파고 제로끼리 둔 50판을 공개했을 때, 도저히 '왜 이렇게 두었는지 모르겠다.' 싶은 수를 프로 바둑기사들이 모여서 단체로 머리를 굴려서 해석하기도 했어. 인간이 알아먹으려면 인간의 눈 높이로 해설해주는 것이 필요해. 그런데 AI는 툭 하고 자기 판단만 제시하고 인간의 눈 높이에 맞춘 설명을 못하니까 인간들이 그걸 박 터지게 머리를 싸매야 했지.


그렇다고 AI느님이 이걸 답이라고 제시하셨으니까 무지성으로 따라하는 것도 곤란했어. 바둑은 고수로 갈수록 어떤 상황에서 왜 이렇게 두는지 이해하고 두느냐에 따라 실력이 확 갈리거든. 옆에 AI를 켜놓고 착수만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면, AI가 제시해주는 수를 보면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선에서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어.


불과 몇 년 사이에 AI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인간의 눈 높이에 맞춘 설명을 못하는 것은 여전해. AI의 행동을 보고 인간이 해석할 뿐이지. 인간이 보아서 AI가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명백하다면 다행한 일이지만, 왜 그런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면 여전히 곤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