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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쯤 전인가, F-4X 짤 올린 게 념글에 있었음.
그때 히스토리넷 기사를 찾아 읽었는데 꽤 재미난
내용이길래, 여기 옮겨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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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4X는 미국-이스라엘 합동 프로그램이었음. 그 내용은
마하 3 고속정찰 임무를 위해 F-4를 마개조하는 거였고.

이스라엘의 요청으로 시작된 사업인데, 그럼 왜 이런 걸
필요로 했을까? 그건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함.

1971년 11월 6일, 소련 63 독립 항공 분견대의 MiG-25R
"폭스뱃" 정찰기가 카이로 근처 공군 기지의 강화엄체호를
빠져나왔음.

해당 기체의 조종석에는 사다트 대통령의 긴급 요청에
따라 소련이 이집트로 보낸 한 무리의 "농부들" 중 한 명이
타고 있었음.

공식적으로 "농부들"이고, 실제로는 소련의 영웅 알렉산더
베제베츠 대령이 이끄는 고인물 파일럿들이었음.

소련의 미그기들은 이집트 공군 마크를 달았고, 파일럿도
엄격한 무선 규칙을 준수했지만, 이스라엘은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가지 않았음.

폭스뱃이 그해 11월 시나이 반도를 75000피트 상공에서
넘어가며 미틀라 고개 근처의 이스라엘 지점을 촬영하는
임무를 수행했을 때 이스라엘은 그걸 알아챘음.

이스라엘 공군은 지난 3월부터 저 뻔뻔한 침입자들을
요격할 수 있는 지대공 미사일이나 요격기가 없어서
눈뜨고 당하기만 할 뿐이었음.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준비된 상태였음. 최대한 무게를
줄이고, AIM-7E 스패로우 미사일로 무장한 F-4E 팬텀
한 쌍이 대기 중이었음.

팬텀은 44,000피트까지 올라가 미사일을 발사했고,
스패로우는 폭스뱃의 고도까지 올라가 폭발했지만, 
미그는 이미 거길 지나간지 오래였음.

스패로우의 근접 기폭장치는 저 정도 근접 속도를 감당할
수 없었음.

이스라엘은 긴급회의에서 논의하고, 미그기가 주둔한
기지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베두인으로 위장한
특공대도 파견했음.

그들은 "농부들"에게 백만 달러와 해안에 있는 별장을
제공해서 망명을 유도했지만 아무 효과도 없었음.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이 끝나면서 소련의 상공 비행이
멈췄지만, 미그기는 강력한 인상을 남겼음.

이스라엘은 이 사건 이전부터 자신들만의 정찰 플랫폼을
찾고 있었음. 마침내 찾아낸 답은 제너럴 다이너믹스가
만든 HIAC-1 선진고고도정찰카메라였음.

다만 그 카메라는 RB-57F(캔버라 폭격기 정찰버전)를
위한 물건이라 정말 컸고, 미 정부의 수출허가를 얻지
못하면 살 수 없는 물건이었음.

1971년 미 정부의 그런 물건에 대한 수출 입장이 바뀜.
미 공군은 G-139포드를 만들었음. F-4 팬텀 기체 하단에
달아 사용하는 카메라 포드였음.

팬텀용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작지 않은 크기였음.
22피트 길이에 4천파운드나 나갔음. 이 포드는 북한
국경 인근에서 RF-4C 팬텀에 달아 많이많이 써먹었음.

이스라엘은 카메라를 달고 다니는 팬텀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게 "피스 잭"(F-4X 개발) 프로젝트가 되었음.

해당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커다란 카메라
포드가 비행성능을 얼마나 해치는지였음. GD의 기술자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가벼운 카메라
시스템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팬텀의 성능을 더 올리는
거라고 주장했음. 팬텀 엔진에 물분사를 끼얹어서 추력을
올리자는 거였고, 이 아이디어는 예전에 나온 거였음.

1959년 12월 9일, 스카이버너 작전은 팬텀을 이용한
고공 비행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시작되었음.

하지만 스카이 버너 프로그램은 절대 속도 기록 또한
따냈음. 이를 위해 맥도넬 엔지니어들은 F4H-1에
물-메탄올 분사를 추가했음. 후방 조종석에는 대형 탱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보통이라면 WSO가 앉을 자리였음.

방풍창은 더 높은 속도에서 마찰열로 인해 깨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강화되어야 했음. 1961년 11월 22일, 미국
해병대 중령 밥 로빈슨은 개조된 팬텀을 시속 1,606.342
마일의 절대 세계 기록으로 날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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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너럴 다이내믹스 팀은 F-4X로 명명된 것에도 동일한
교훈을 적용했음. 동체 엔진 페어링 위에 300갤런의 대형
컨포멀 물탱크를 장착하고, 거기 넣은 탈염수를 제너럴
일렉트릭 J79 엔진의 사전 압축 냉각(PCC)에 써서,
압축기로 유입되는 공기를 냉각하고, 엔진을 통한 총 매스
흐름을 증가(이에 따라 추력증가)시키고, 애프터 버너에
산화제를 추가하는 세 가지 목적을 이룰 거였음.

GE는 엔진을 테스트하고 데이터를 GD에 전달하여 F-4X
프로젝트 엔지니어의 작업을 단순화했음. 이를 통해서
PCC는 J79 엔진 추력을 50% 증가시켜 기대 이상의
성능을 뽑아낼 것으로 계산되었음.

훨씬 더 빠른 공기 속도를 위해 더 큰 엔진 공기 흡입구가
설계되었고, 내부 플레이트와 블리딩의 정교한 시스템이
완성되었음.

새로운 폴리카보네이트 조종석 인클로저는 마찰열을
처리할 것이고, 비행 제어 장치도 수정되었고, 미익 면적도
늘렸음.

1973년에 더 작은 업데이트 버전의 HIAC-1 카메라가
노즈에 설치되었음. 포드 제거로 인한 항력 감소로 팬텀의
성능은 이제 마하 2.4의 순항 속도와 마하 3.2의 대시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계산되었음.

하지만 이는 F-4X의 수출을 불명확하게 했음. 미국과
소련 외에 마하 3 이상의 성능을 가진 항공기를 보유한
나라는 없기 때문임.

노만 폴마는 그의 책 "스파이 플레인 : U-2 역사 기밀
해제"에서 왜 그것이 우려될 수 있는지 예를 들었음.

수에즈 사태 때인 1970년 8월부터 미 공군 U-2R 정찰기
2대가 키프로스 아크로티리의 RAF 기지에 주둔했음.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 모셰 다얀은 U-2의 첫 비행이 끝난
후 텔아비브 주재 미국 대사관의 임무 부국장을 집무실로
불러 U-2가 이스라엘이 지정한 폭 5km의 좁은 회랑을
벗어났다고 불만을 드러내면서, F-4E를 사용하여 그들을
격추시키겠다고 위협했음.

미 국무부가 다른 나라, 심지어 동맹국이라도 미 정찰기를
위협할 수 있는 요격미사일을 획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이해할 만함. 하지만 F-4X는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요격기로 사용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음.

따라서 프로그램을 계속할 수 있었음. 1974년 11월,
이스라엘 F-4E가 GD의 포트워스 공장에 날아가서 새로운
항공기의 모형으로 사용되었음.

엔지니어들은 1975년까지 제트기를 손봤고, 그 무렵
프로그램은 문제에 부딪혔음. GD는 광범위한 테스트를
거친 후 PCC가 터빈 컴프레서 블레이드를 팽창시켜 엔진
케이스에 부딪혀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결론내렸음.

한편, 맥도넬 더글러스 F-15 이글은 시험 프로그램을
마치고 곧 가용한 상태가 될 예정이었음. 공군 관계자들은
F-4X가 더 낮은 비용으로 어떤 면에서 더 우수한 성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의회가 F-15 자금 지원을 줄일
것을 우려하기에 이르렀음. 또한 미 국무부는 IAF가
F-4X를 요격 수단으로 사용할 수도 있고, 소련 정찰기의
성공적인 격추는 국제적인 사건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음. F-4X는 이래서 죽게 됨.

그러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기수에 장착된 HIAC-1을
원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완전히 실패하지는 않았음.

2대의 추가 IAF 팬텀이 모형 작업에 사용되는 F-4E에
합류해 3대 모두 새로운 RF-4E(S) 변형으로 개조됨.

F-4X 프로그램의 조기 종료 및 예산 제한으로 인해 개조된
항공기는 여전히 개조되지 않은 재래식 J79 엔진을
사용했음.

RF-4E(S) 정찰기 3대는 1976년과 1977년에 마침내
IAF에 인도됨. 이스라엘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Tsalam Shablul 또는 사진가 달팽이라는 별명으로
부름. 70,000피트에 가까운 고도에서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조종사와 시스템 장교는 미국 정찰 조종사가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David Clark Company A/P22S-6
보호복을 착용했음.

Shabluls는 길고 바쁜 경력 끝에 2004년 5월에 은퇴함.
2대는 Ovda의 보관소에 보관되었고 세 번째는 여전히
Hatzerim 공군 기지의 이스라엘 공군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음.


간단요약. 이스라엘은 정찰 플랫폼을 찾고 있었고,
폭스뱃에 털리면서 더더욱 가지고 싶어했음. 그래서
찾아낸 게 정찰포드를 단 팬텀임.

정찰포드를 달아서 비행성능이 떨어지는 걸 걱정했더니
GD 엔지니어들이 "더 가벼운 카메라 시스템을 만드느니
팬텀 성능을 올리는 게 진짜 해답임! 너믿나믿?!" 이래서
물-메탄올 주입으로 J79엔진에 사전압축냉각을 하는
방법을 부활시킴.

순항속도 마하 2.4, 애프터 버너 써서 마하 3.2를 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팬텀이 나올 뻔함.

그런데 기술적 문제가 생겨서 개발이 더 오래걸리게
되었고, 미 공군은 F-4X가 F-15 펀딩을 반갈죽할 것을
걱정하게 되고, 미 국무부는 이스라엘 놈들이 이거
가지고 소련정찰기 격추하고도 남을 놈들인데? 해서
거기서 끝남.

그래서 F-4X는 실제 제작된 기체가 단 1대도 없는
환상으로 남고, 그 대신 RF-4E(S)라는 어정쩡한 애들만
3대 만들어서 씀.

출처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