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10년 전인 쇼와 9년(1931년) 11월, 함정본부 제1부 제2과에서는 독자적인 무기를 연구개발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제안을 검토하고 그러던 때였음.
당시 런던 조약, 워싱턴 조약 때문에 대형함 건조에 대한 제약이 씨게 있으니 만약 이대로 가상적국인 미 해군과 맞짱을 뜨면 개털릴게 뻔하니 결전에 투입해서 적 전력을 점감할 전력을 구상중이였는데, 요코오 타카요시(横尾敬義)라는 한 대령이 정밀한 타격을 위해 인간어뢰를 만들자는 개또라이같은 제안을 했음. 과원들에게 관심을 이끌었지만, 아직 해군은 그런 걸 채택할 정신머리는 아니였는지라 인간어뢰는 빠꾸맥이는 대신에 작은 잠수정에서 어뢰를 쏘는 방안으로 발상으로 변질됐음.
또, 시나미 쿠니히로 대령의 방안으로 잠수정이 잠수함에 탑재돼서 주력함대랑 같이 대기타고 있는 것도 채택이 됐음.
1달 뒤인 12월, 함정본부 제1부 제2과장으로 키시모토 카네지(岸本鹿子治)대령이 착임하고나서 잠수정의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됨. 저 아저씨가 갑표적 말고도 그 유명한 산소어뢰 개발을 성공시킨 사람임.
기초설계는 아사쿠마 토시히데(朝熊利英)중령이 맡았는데, 아사쿠마는 이 무기에 조금 의심을 품었지만 설계에 착수하고, 쇼와 7년(1931년) 6월에 모형 만들어서 수조에 담궈 항행에 테스트 해봤는데, 와류가 추진기에 악영향을 줘서 설계를 변경하기로 함. 참고로 이 사람도 산소어뢰 개발에 종사함.
같은 해에 이 잠수정에 제안된 설계안은 전장 25m 배수량 45톤, 수중속도 30노트, 53cm 어뢰 2발 탑재였음. 우리 생각하는 갑표적이랑 많이 비슷해짐. 추진기로는 전지만 탑재, 디젤엔진만 탑재, 전지와 디젤엔진을 병용하는 하이브리드라는 3가지의 설계안이 제안됐는데, 제1안인 전지만 탑재하는 설계안이 당시 일본이 그걸 만들 기술이 있는 것도 둘 째치고 건조하는게 비용이 저렴하기 때문에 제1안대로 건조하는데 허가됐음.
설계주도는 아사쿠마 중령이 맡았고, 나와 타케시(名和武)라는 갑표적에 장착될 축전지인 특D형축전지를 개발한 기술사관을 비롯한 다른 기술사관들도 참가함. 그러나 키시모토는 어뢰의 권위였고, 갑표적도 잠수함이라기엔 어뢰의 성격이 더 가까워지고 잠수함 설계자들은 참가하질 못해서 나중에 갑표적 성능이 개씹창인 결과를 부르는 원인이 됐음.
쇼와 8년(1933)부터 대잠폭격표적이라는 이름의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만들어지는 프로토타입들도 다 무슨무슨표적이였는데, 이 특수잠항정이 기습을 전제로한 물건이라서 기밀유지가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해군 항공대의 표적으로서 만들어지는 걸로 위장을 했었음.
온갖 테스트를 거치고 쇼와 14년(1939년)7월, 갑표적(甲標的)이라는 정식명칭이 주어지고 쇼와 15년(1940년)10월에 본격적으로 양산을 시작함. 이후 쇼와 16년(1941년)12월 8일이 갑표적의 실전투입이 시작으로 이어짐.
실수로 시발 삭제해서 재업함;
비슷한 글 본 거 같았는데 삭제해서 재업한 거였네 추
태평양전쟁 1번 포로의 시작 진주만 갑표적 투입 ㅋㅋㅋㅋㅋㅋㅋ
싱글벙글 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