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대에도 참호는 전쟁에 중요한 요소였음.
2. 1차 대전처럼 참호전을 했다는 의미는 아님.
3. 하지만 방호 수단은 많아서 나쁠 것 없는 법임.
4. 참호와 보루 건설은 한 세트로 야전축성의 핵심이었음.
- 참호와 보루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촉나라 병사가 대대적으로 이르렀으므로...(후략) (곽회전)
- 제장들이 한수의 병력이 많음을 보고 이를 꺼려 영채를 구축하고 참호를 만든 뒤 싸우려 하자...(후략) (하후연전)
- 인마(人馬)가 극도로 피곤하였는데, 또 밤이 되니 (진영에는) 참호와 보루도 없었다. (후략. 이후 병력이 와해된 이야기.) (손견전)
5. 이렇게 일단 병력이 진을 친 곳에는 참호와 보루가 한 세트로 만들어짐.
6. 이외에 참호는 공성전에서 공성측과 수성측 양쪽에 모두 사용됨.
7. 수성측은 성벽과 해자 너머의 추가 방호시설로서.
8. 공격측은 성벽 위의 적에게서 아군을 보호하고, 또한 성벽 안 적이 갑자기 나올 때 대항하기 위해서 참호를 팜.
- 왕기와 안동장군 진건 등에게 사방으로부터 수춘을 포위하여 안팎 이중으로 포위하고 참호와 보루를 매우 높게 하도록 했다. (제갈탄전)
- 공손연은 또 비연 등을 보내어 크게 무찌르고, 성 아래까지 진군하여 주위에 참호를 팠다. (공손연전)
- 듣건대, 작전 방안에 신병들 중에서 약한 자는 앞에 배치하고 정예병사는 뒤에 있게 하며, 성을 공격할 때는 약한 병사에게 참호를 파게 하여 즉시 격파시키려고 한다고 합니다. (주방전)
- 태조가 참호를 파고 성을 포위한지 석 달이 지나자 위아래의 마음이 흐트러지니...(후략) (무제기)
9. 이런 사례들은 로마 군단병의 야전축성과 많이 닮았음. 몇몇 묘사는 알레시아 공방전의 묘사를 떠올리게 만듬.
10. 고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원시적인 '땅파서 보호하기(제약하기)'란 방식은, 그 세부적인 방식은 비록 시대마다 달라져왔을지라도, 군대의 방어수단으로서 남아온 유서깊은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음.
저 시대 참호는 근대적으로 땅파고 숨는건 아니었지?
땅 파서 숨는 그거 맞음. 그거를 몇 리씩 연장하는 행위도 함
그 시대에 땅파고 들어가는게 의미가 있음? 땅속에서 창 휘두르면 오히려 더 전투력 떨어질거같은데
1. 병사들이 모두 갑옷을 입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투사무기에 취약함. 2. 특히나 주둔 시에는 갑옷을 벗고 생활하기 때문에, 주둔지와 그 외 공간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벌려 둬야 함.
+ 적병의 돌격의 충격효과 자체를 매우 약화시킴(기병이든 보병이든) + 적이 어떤 식으로 공격하든 공격의 물리적/심리적 효과를 공간적으로 제한시킬 수 있
참호추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제대로 재현해주지 않아서 슬퍼
참호파도 안에서 싸우는게 아니라 위에서 싸운다는 말도 있고 안에서 싸운다는 말도 있어서 좀 더 디테일한 정보글이 필요한 레후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