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내용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제작한 6.25전쟁사에 나오는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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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교 폭파로 국군은 총병력의 46%와 대부분의 장비, 공용화기 손실


정작 북한군 전차가 한강교에 빼꼼한건 폭파 7시간 30분이 지난 후였음

(2권 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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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통고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2권 670p)


국방부 군사편사편찬 연구소가


작전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함



그래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음


병력 절반과 중장비 대부분을 손실했지만


한강교 폭파로 북한군 남침 지연시킨건 사실 아니냐?


이 건에 대해선 두가지 이슈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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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북한군이 28일 새벽 서울을 접수한 이후


적극적으로 도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음


서울 점령 후 3일을 허비한건 유명한 이야기

(2권 6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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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에 한강교 점령이라는 목표가 있긴 했지만


전차가 시내에서 헤메서 제시간에 도착 못 하기도 했거니와


어디까지나 도망치는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역할이지


바로 다리를 접수하고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


셀프 파괴로 국군의 퇴로 차단이라는 목표는 달성하게 됨

(2권 6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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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한강에는 폭파에 실패한 한강철교같은 다른 다리도 있었고


실제 북한군은 한강철교를 보수하고 강변에 있던 나루터를 이용해 도강함


즉 한강교가 딱히 도하 가능한 결정적이고 유일한 지점도 아니었음

(3권 126p)




결론


국군 손실, 국군 총병력의 46%, 장비 1300여대 유실


북괴가 28일 당일 적극적으로 남하할 의지가 있었나? > 아니오


이후 북괴의 한강 도하를 성공적으로 저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나? > 아니오


한강교 폭파로 모랄빵난 국군을 간신히 수습한건 전적으로 시흥지구전투사령부의 공임


한강교 폭파 '덕분에' 전쟁에서 이긴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긴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