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념글에 나와있듯 북한군은 남침작전계획을 구상하면서 105땅크여단으로 하여금 한강인도교 등을 탈취해 국군의 퇴로를 차단토록 임무를 부여했었음.
6월 26일, 철원에 설치된 총참모부 전방지휘소를 방문한 김일성은 총참모장 강건에게 (소련 군사고문단이 짜준) 작전계획을 다시 확인시키는 한편, "한강을 일거에 도하하기 위하여 적들이 한강 인도교와 철교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탈취"하라고 당부하였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김일성은 기존 작전계획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음.
허나 의정부가 함락되고 북한군 주공부대(3, 4사단 및 105땅크여단)가 서울 근교까지 진격한 27일, 김일성은 뜬금없이 작전계획을 변경하였음.
그는 강건에게 전화를 걸어 중앙청을 비롯한 서울의 중요 건물들을 장악해야 한다면서 105땅크여단은 서울 동북쪽으로부터 철도를 따라 타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음. 또한 서울 점령 과정에서 중앙청, 서대문 형무소, 마포 형무소, 방송국 점령에 주안점을 두라고 강조했음.
김일성의 이러한 결정은 군사적인 목표는 거의 달성했다고 판단해 대신 정치적인 목표, 정확하게는 서울 점령과 승전을 홍보하려는 의도에서 내려진 걸로 추측됨.
즉, 서울이란 상징성에 눈이 멀었던 셈.
어쨌든, 김일성의 명령이라면 있는 그대로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던 강건은 이를 즉각 서울 방면의 북한군 사단장들에게 전달하였음.
그 결과 28일 새벽, 미아리의 국군 최후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 전차들 상당수가 서울 시내를 헤집는 사이, 정작 한강교를 장악해야 할 전차는 길을 잃고 헤매다 적시에 장악하기는 커녕 한강교가 폭파되는 걸 막지 못했음.
참고로 비슷한 시각 중랑교 방면의 국군 방어선도 돌파돼 북한군이 침입하기 시작했는데 이쪽 경과는 몰?루
이 과정을 시시각각 지켜보던 소련군 군사고문단은 보고서는 물론 수기로까지 "야이 씨발 전쟁 그따위로 하냐"로 씹어댔고,
김일성은 훗날 안면몰수하고 지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추태를 보임.
의정부 역습이 실패하고 국군 사단들이 축차투입 끝에 와해된 순간, 서울 함락은 기정사실이었음.
따라서 적의 전과확대를 막고 지연전을 수행하려면 한강의 교량들을 끊어야 했음. 실제 한강의 교량들이 차례로 폭파되면서 한강철교가 복구되기까지 국군은 최악의 상황(혼성부대 편제 + 중장비 망실로 인한 화력 열세 + 횡적 연결 부재)에서도 용케 한강이란 자연 장애물 빨로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었음.
그리고 솔직히 쓰자면, 미아리 방어선이 돌파된 시간이 새벽 1시 반임. 한강인도교 폭파는 새벽 2시 반. 한강 이북의 국군이 그 시간 안에 완전히 철수한다는 건 불가능했음. 육본에서 준비한 거라곤 도하용 주정 18척 뿐이었는데 이것도 일선부대에 제대로 전파되지 못해 제때 쓰이지 못했을 거임.
여기서 김일성이 변덕만 안 부렸으면 105땅크여단이 한강인도교 장악하려고 죄 달려들었을 테니 당시 상황은 급박하고 아찔했다고 볼 수 있음.
북한군이 뻘짓거리 했으니 한강인도교를 바로 폭파할 필요는 없지 않았냐, 따지기에는... 전장의 불확실성을 상수로 놓고 평가할 수 없음.
진짜 문제는 미아리 방어선이 붕괴되는 그 시점"까지" 국군이 한강 이북에 발이 묶여 있었단 거임. 그리고 육군본부는 이들을 어떻게 후퇴시킬 지 대책도 제대로 수립치 않고 시흥으로 철수했다가 돌연 서울로 복귀하는 통에 27일을 허투로 날렸음.
육본이 서울로 돌아온 이유? 미국의 참전이 공식화되면서 뭔가, 어떻게든 서울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미아리 방어선을 고수하기로 했던 것.
뎃데로게~ 뎃데로게~ 하며 총참모장 각하께서 행복회로를 돌리시다 28일 새벽 미아리 방어선이 허무하게 붕괴되었고, 그때부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대혼란이 펼쳐짐. 한강인도교 폭파에 대한 명령권자가 누군지 말이 다 다른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됨? 그게 당시 육본 상황이었음.
육본이 비로소 일선부대의 후퇴에 대해 염려해 폭파 중단을 시도하려던 때는 폭파 직전이었음. 그것도 5사단장 겸 미아리지구전투사령관 이응준 소장이 와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야 참모부장과 국장들이 아차 싶었으니 말 다했지 뭐.
시흥전투지구사령부도 육본의 지시가 아니라 김홍일의 자의적 행동에서 시작되었음을 감안하면 이때 육본은 "니미 씨발아 느그들 전쟁을 어떻게 그따위로 하냐" 소리 들어도 할 말 읎다고 봄.
요약하자면,
한강인도교 폭파는 필요했는가? -> 안 하면 개좆됨
그래서 폭파 및 부대 후퇴 과정은? -> 이런 니미 씨발 미 좆박음
논쟁이 어그러지는 이유 -> 두 병신 집단의 가슴 웅장해지는 대결이라 도저히 어디서 뭐가 맞고 틀리고 따지다간 속에 없던 천불이 다 생김
ㅇㄱㄹㅇ이고, 그냥 한국전 초기 전황은 2머전 겪으면서 전쟁 숙달된 인간들 눈으로 볼 땐 이뭔씹 싶은 트롤대 트롤의 명승부였음. 양측 정치권이고 양측 군부고 다 그랬어. 딱 하나 전의만 충만했고.
이게 맞지!!
폭파 자체는 필요한 게 맞음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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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공지 좀 읽어
정떡 ㄴ
김홍일 장군 님...그저 빛...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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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트리지 말자고?
논쟁이 생겨도 폭파 및 후퇴 ㅂㅅ인건 안 변하네 ㅋㅋㅋㅋㅋㅋ - dc 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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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결과론적 요소를 배제하더라도 대응이 븅신같았다는 소리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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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하긴했엇구나
후퇴시켜야한다 소리 솔직히 말은 좋지 그냥 당시 국군 훈련도나 기동력으로 볼때 불가능했음.
이 개병신짓에 대해서는 찐빠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뭐함.
ㄹㅇ 딱 이거지, 해야만 했는데 좆같이 해버렸다 - dc App
놉. 이런 식의 양비론은 결과적으로 확실한 잘못을 스리슬쩍 감추는 효과가 있음. 민간인은 둘 째 치고 병력, 장비 후퇴할 여유가 충분했는데도 정부와 장성들이 쫄아서 서둘러 저지른 거라 애당초 폭파의 필요성 문제도 아니었고 퇴각 관리와 폭파 타이밍의 문제였는데 관리도 타이밍도 아주 큰 실패임
28일 시점에서 일선부대 후퇴할 여유가 있었는가? -> 미 군사고문단과 합의한 대로 삼각지의 육군본부로 북한군 전차 도달했을 때 한강교 폭파시킨다고 해도 그때까지 후퇴할 수 있는 부대가 얼마나 있겠음?
내가 지적하려는 건 28일 새벽이 문제가 아니라 27일의 육본 행적임. 시흥으로 내빼면서 일선부대에 대한 철수는 당연하고 지휘마저 손 놔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서울로 복귀해 한 거라곤 미아리 방어선에다 "미군 온대!" 외치며 영혼 보태는 수준이었잖음? 그나마 양호하게 철퇴할 마지막 기회를 그렇게 날려버린 건 비판받을 수 밖에 없음.
자꾸 한강교로 어그로 끄는 애들 주장은 윗댓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글 말미에 요약된 저런 논쟁이 아님. 폭파 시키는게 당연한 행동인게 명백했는데도 자꾸 '안폭파하는게 맞았고 안폭파함으로써(?) 북한군 좆바를 수 있다'고 주장해서 지랄이 나는거임. 진짜 조선족 춘장들 존나 많다니까
그 주장 어디서 왔는지 짐작은 가는데 조선족 찾지 않아도 됨. 여하간에, 서울 사수는 그 시점에서 불가능했다고 생각함. 바리케이트라 해봤자 공간사에서 대놓고 "좆도 노쓸모"라고 까버린 이상... 게다가 그 즈음 가면 병부터 장교까지 안 가리고 온갖 해괴한 행동들이 목격될 정도로 멘탈 바스라졌으니 스트레스 만빵 시가전을 과연 치를 수 있었을까?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