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격으로 방어측 시설과 멘탈을 날려버리고
돌격해서 일제사격+백병전 깃발꽂기.
아직 철조망하고 기관총이 없을 때긴 하지만.
철조망은 2머전 미해병대 훈련영상보면 몸빵도 하더라. 앞사람이 자기 몸을 철조망에 걸치면 딋사람이 그 사람 등을 밟아 타고 넘어감.
익명(222.114)2023-06-13 03:10
전쟁을 이겨야 할 거 아냐
익명(ierw2194)2023-06-13 03:02
그당시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음. 참호, 기관총, 철조망 3조합의 환상의 콜라보 땜시 말을 타고 우회도 할 수 없음. 진짜 참호를 무진장 길게 깔아놓고 버티니까. 그러면 포 쏴서 날려버리면 되는 거 아님? 해도 지금처럼 포 명중률이 좋은 것도 아님. 그럼 항공 전력으로 밀어버리면 되는 거 아님? 저 떄 당시 항공전력은 근접항공지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음. 그냥 서로 공중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이긴 쪽은 정찰 정도 하는 수준 이었음. 사람이 직접 포탄을 떨구는 원시적인 수준의 항공지원은 있었지만 포도 못맞추는 마당에 겨우 포탄 몇 발 가지고 가서 기적적으로 죄다 맞춘다고 해도 참호를 돌파하는 건 어림도 없었고. 이런 상황이다보니 머리를 짜낸게 참호를 파고 그 밑에 땅굴을 파서 돌파하는 거였음.
익명(116.47)2023-06-13 03:03
답글
고타 폭격기같은 폭격기도 있었음
익명(220.95)2023-06-13 04:23
근데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하다보니 땅굴이 서로 맞닿아서 갑자기 지하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운 나쁜 경우도 있었음. 이런 상황을 타게하고자 나온게 전차이고 전차가 등장하자 참호전 양상은 조금씩 사장됨. 물론 전차가 막 나왔을 당시에도 그놈의 전차 무용론은 존재했음. 여기까지가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한데 전문가는 아니여서 반을 그냥 흘려듣고 직접 알아보셈.
익명(116.47)2023-06-13 03:06
역설적으로 1차대전 서부전선에서 '공세는 방어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행해야하는 선제 조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독일 쪽이건 프랑스 쪽이건 영국 쪽이건 방자가 참호를 파고 공세 의지를 저버린 채로 방어로만 일관해봤자 이는 공자 측이 반복된 효력사와 항공 정찰을 동원한 공세 끝에 해당 전술 구역에서의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도권을 온전히 쥔 공자 측은 방자 측의 최대 약점 지점을 파악하여 이 최대 약점 지점에 최적화된 공세 시간과 공세 방향을 설정하고 결정적인 공세를 가하게 되며 그러한 전술 상황에서 방자는 반드시 공자에게 압도당했다.
익명(ukraine123)2023-06-13 03:10
답글
따라서 인터넷에서 서부전선에서의 공세 행위는 무의미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지키기만 하면 되었는데 쓸데없이 '엘랑'했다고 떠드는 이들은 무지에서 기인하여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건데, '제대로 된 방어를 하려면 먼저 우세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공격을 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있었던 것이 바로 1차대전이다.
익명(ukraine123)2023-06-13 03:11
답글
"하이그라운드"였노
익명(220.126)2023-06-13 03:17
답글
즉 적군 참호에 적이 배치되었는지? 해당 참호구역으로 적의 대포가 얼마나 배치되었는지 알기 위해 아군보병을 진입시켰다는거임?
익명(211.40)2023-06-13 03:45
답글
보병을 진입시켰다, 보단 우세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세를 통해 영역을 확장했다 봐야될듯 - dc App
CAT:(prius834)2023-06-13 03:55
답글
가만히 세월아 네월아만 하고 있다가 적이 정찰 관찰 등으로 약점 파악하고 물자 병력 쌓아서 각잡은 뒤 작정하고 들어오면 무조건 ㅈ되기 때문에 우리도 적 약점지역 파악하는 동시에 적에게 그런 주도권, '각'을 주지 않고 또 방어에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 견제에 나섰어야 했다는거
익명(ukraine123)2023-06-13 03:57
전쟁이 지속될수록 답이 그거밖에는 안나왔음
익명(1.228)2023-06-13 03:11
그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음
AAAA(e0cxnexq2fjk)2023-06-13 03:34
1차머전 때에도 내각 인사들은 국민들의 지지도에 늘 고통받았음. 성과가 없으면 반전여론이 거세지니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공세를 안 할수는 없지 않을까
왜 깡보병돌격만 핬겠음? 크림전쟁때 이미 준비포격하고 돌격했음. 그게 잘 됐느냐는 별개로.
어쨋든 공격을 해야할거아녀
https://youtu.be/fnNy81CfXt0
이것도
19세기전투.
포격으로 방어측 시설과 멘탈을 날려버리고 돌격해서 일제사격+백병전 깃발꽂기. 아직 철조망하고 기관총이 없을 때긴 하지만. 철조망은 2머전 미해병대 훈련영상보면 몸빵도 하더라. 앞사람이 자기 몸을 철조망에 걸치면 딋사람이 그 사람 등을 밟아 타고 넘어감.
전쟁을 이겨야 할 거 아냐
그당시에는 그 방법밖에 없었음. 참호, 기관총, 철조망 3조합의 환상의 콜라보 땜시 말을 타고 우회도 할 수 없음. 진짜 참호를 무진장 길게 깔아놓고 버티니까. 그러면 포 쏴서 날려버리면 되는 거 아님? 해도 지금처럼 포 명중률이 좋은 것도 아님. 그럼 항공 전력으로 밀어버리면 되는 거 아님? 저 떄 당시 항공전력은 근접항공지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음. 그냥 서로 공중에서 치고 박고 싸우다가 이긴 쪽은 정찰 정도 하는 수준 이었음. 사람이 직접 포탄을 떨구는 원시적인 수준의 항공지원은 있었지만 포도 못맞추는 마당에 겨우 포탄 몇 발 가지고 가서 기적적으로 죄다 맞춘다고 해도 참호를 돌파하는 건 어림도 없었고. 이런 상황이다보니 머리를 짜낸게 참호를 파고 그 밑에 땅굴을 파서 돌파하는 거였음.
고타 폭격기같은 폭격기도 있었음
근데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하다보니 땅굴이 서로 맞닿아서 갑자기 지하에서 백병전을 벌이는 운 나쁜 경우도 있었음. 이런 상황을 타게하고자 나온게 전차이고 전차가 등장하자 참호전 양상은 조금씩 사장됨. 물론 전차가 막 나왔을 당시에도 그놈의 전차 무용론은 존재했음. 여기까지가 알고 있는 내용이긴 한데 전문가는 아니여서 반을 그냥 흘려듣고 직접 알아보셈.
역설적으로 1차대전 서부전선에서 '공세는 방어를 하기 위해서 반드시 행해야하는 선제 조건'이 되었다. 왜냐하면 독일 쪽이건 프랑스 쪽이건 영국 쪽이건 방자가 참호를 파고 공세 의지를 저버린 채로 방어로만 일관해봤자 이는 공자 측이 반복된 효력사와 항공 정찰을 동원한 공세 끝에 해당 전술 구역에서의 완전한 주도권을 가지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도권을 온전히 쥔 공자 측은 방자 측의 최대 약점 지점을 파악하여 이 최대 약점 지점에 최적화된 공세 시간과 공세 방향을 설정하고 결정적인 공세를 가하게 되며 그러한 전술 상황에서 방자는 반드시 공자에게 압도당했다.
따라서 인터넷에서 서부전선에서의 공세 행위는 무의미하고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지키기만 하면 되었는데 쓸데없이 '엘랑'했다고 떠드는 이들은 무지에서 기인하여 당시 상황을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건데, '제대로 된 방어를 하려면 먼저 우세한 위치를 점하기 위한 공격을 해야만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있었던 것이 바로 1차대전이다.
"하이그라운드"였노
즉 적군 참호에 적이 배치되었는지? 해당 참호구역으로 적의 대포가 얼마나 배치되었는지 알기 위해 아군보병을 진입시켰다는거임?
보병을 진입시켰다, 보단 우세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공세를 통해 영역을 확장했다 봐야될듯 - dc App
가만히 세월아 네월아만 하고 있다가 적이 정찰 관찰 등으로 약점 파악하고 물자 병력 쌓아서 각잡은 뒤 작정하고 들어오면 무조건 ㅈ되기 때문에 우리도 적 약점지역 파악하는 동시에 적에게 그런 주도권, '각'을 주지 않고 또 방어에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격, 견제에 나섰어야 했다는거
전쟁이 지속될수록 답이 그거밖에는 안나왔음
그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음
1차머전 때에도 내각 인사들은 국민들의 지지도에 늘 고통받았음. 성과가 없으면 반전여론이 거세지니까
그래서 포격 탱크 독가스 항공기 다 써봤다
공격해야 방어에 유리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