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이라 쓰고 주북한 소련 군사고문단이 띨빵해서 동부전선에서만 우회 기동 하라 했을 것 같음?
애초에 한강이남에서의 국군 퇴로 차단 및 포위는 양익으로 진행되는 거였음.
북한군 2사단이 오른날개를 맡았다면,
북한군 6사단이 왼날개였음.
이들은 개성을 점령한 뒤 국군 1사단을 공격하는 대신 남쪽으로 이동, 한강을 도하해서 김포반도로 진출하기로 되어 있었음.
최종 목표는 김포가도를 타고 영등포로 진격해 국군 퇴로 끊고 포위망 완성하는 것.
어느 방면이든 뚫리면 뒤통수 깨지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비중과 달리 북한군 6사단이 2사단에 비해 인적, 물적 지원을 더 받았음.
북한군 2사단이 사단 자체 화력 중 제일 강력한 122mm 곡사포를 12문 보유하고 있었고 76mm 견인포는 36문 보유한 데 반해
북한군 6사단은 군단 포병(17 군단포병연대)까지 지원받아서 122mm 평사포와 곡사포를 총 24문 보유하였으며, 76mm 견인포는 40문이었음.
도하 장비도 6사단이 105땅크여단이나 2사단에 비해 훨씬 더 많았고.
또한 북한군 2사단은 기갑 전력으로 SU-76 자주포만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북한군 6사단은 SU-76는 물론 T-34 전차 1개 중대를 배속받은 상태였음. 하여 국군 6사단이 SU-76 상대로 전과를 올린 반면 T-34를 상대한 김포사는 2.36인치 바주카 쏴도 씨알 안 먹혀서 멘붕하는 상황이 여기서도 벌어졌음.
근데 국군 6사단은 예하에 포병대대라도 있었지 김포사는 사단급 105mm 그딴 거 없었다. 2.36인치 바주카도 급하게 후방에서 출동한 국군 8연대인가 22연대에서 들고 온 거지 보국대대나 보병학교 간부후보생들은 고장이 빈번해서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아리사카 소총 들고 싸웠음.
초전에 기갑연대에서 출동한 장갑차와 하프트랙들이 분전하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한강 방어선이고 뭐고 좆도 읎어요.
무엇보다 골 때리는 사실은 애시당초 육본 나으리 분들께선 다른 곳은 다 방어계획 작성하면서 김포반도는 뇌를 비우듯 놔버렸고 그 바람에 김포반도에서 싸운 건 국군 정규사단이 아니라 급조편성된 부대들이었단 거임.
전쟁 터지고 북한군이 한강 이북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보고 비로소 좆됐구나를 깨달은 육본이 아직 서울에서 대기하던 기갑연대 일부와 출동을 자처한 보국대대(북한군 출신 전향자 부대), 때마침 개성, 연백에서 탈출해 김포에 상륙한 12연대 2, 3대대(2대대가 3대대를 흡수), 그리고 간부후보생까지 긁어다가 정보 직능 장교에게 사령관 맡긴 게 김포사였음.
급조편성된 부대가 팔로군 출신에(사실 이게 만능은 아니었지만) 소련 군사고문단에게 풀코스로 조련된 북한군 6사단(-1) 상대로 최대한 시간 끌어 방호산 엿 먹인 게 기적 그 자체임.
물론 방호산이 3일 넘게 (포로 진술에서는 5일) 도하를 좆박는 바람에 굴러간 스노우볼이었다만, 김포반도 전투 경과를 보면 김포사는 그야말로 사람을 갈아 시간을 끈 거였음. 자꾸 찐빠를 내서 방어선이 돌파돼도 어쩔 수 없었음. 왜냐? 애초에 이기는 것부터 불가능했거든.
그 희생이 있었기에 국군 1사단과 18연대가 최악만은 면하고 한강을 도하할 수 있었음. 특히 29일 김포비행장 탈환전은 (북한군 문건을 보면 김포사가 전날 대형 찐빠를 낸 것 같다만 차치하고) 아군 후퇴를 위해 목숨을 내다버린 거였다.
개인적으로 춘천 홍천 전투의 향방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김포반도 전투가 채병덕이 터뜨린 초기전투를 운빨좆망겜으로 돌렸다고 생각함.
근데도 자꾸 춘천 홍천 전투 얘기만 하고 있으면 이놈 떼찌하고 싶다 이겁니다.
대단하신분들이 많이계셨네
김포사가 더 대단한 게 그 짧은 기간 동안 사령관이 두 번이나 갈렸는데도 예하부대들은 꾸역꾸역 버텨줬던 거임. 초대 사령관이 그 유명한 계인주라 런쳤고, 계인주 참모장이었던 2대 사령관은 김포비행장 방어할 생각도 안 하고 내줘서 짤렸고, 3사단 참모장이었던 3대 사령관은 김포비행장 탈환 나섰다가 실패하고 피해가 너무 크니까 자결했지
최복수 중령은 김홍일 장군한테 질책먹고 사령관 대리 잘리고 책임을 통감했는지 자원해서 비행장 역습 지휘하러 갔다가 전사했던데 정말 가슴아프더라
북한측 문건(아마 교육이나 홍보 자료?)에선 28일 16시에 김포비행장을 북한군 중대가 점령했다고 서술하고 있음. 이후 피탈 사실을 모르고 비행장에 접근한 국군 지프가 박살났고, 장갑차 + 김포사 병력이 23시까지 거듭 교전을 벌였다고 하던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확실히는 모르겠다만 최복수 중령으로선 좀 억울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음.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82712
https://cafe.naver.com/bitethatbait/82720
(댓글
수정하려고 다시 작성했음 ㅈㅅ)
28일 오후면 행주에서 1사단이 한참 도강하던 시간이라 29일 아침까지만이라도 김포비행장 방어하면서 시간 벌어줘야 했는데, 적과 조우했다고 바로 소사로 후퇴 명령 내리니까 김홍일 입장에서는 진짜 빡칠 만했을 거임.
ㅇㅇ 29일까지 김포비행장에서 버텼으면 1사단이 개화산에서 큰 피해 입는 일도 없었겠지...
저 북한측 문서는 군사지식이라고 전쟁 이전에는 전술,전략 교육용으로 쓰인 잡지인데 전쟁 발발 후부터 참전수기록도 올리는게 가능해져서 내용이 다양해진걸로 기억함.
제목 알려줘서 ㄳ 바로 보러 간다
장비도 장비고 남침 당시 북괴 1군단 소속 사단들은 중국 팔로군 출신 병력으로 구성된 정예병들이라 질적으로 차이가 큼, 특히 저 북괴 6사단은 마산 코앞까지 미친 기동을했던 바로 그 부대잖어
북한군 6사단의 중공군 경력은 다소 뻥튀기 된 편임. 항일 경력은 조선의용군 시절 간부 수백 명이 전부인데 이들은 입북하거나 1지대(북 6사단의 전신)를 비롯해 새 부대 양성을 위한 기간요원으로 쓰였던 걸로 알고 있음. 나머지는 2차 국공내전 전후로 모병됐고 이들은 토비 토벌, 후방에서의 게릴라전, 지역 위수를 주로 하다가 정규전은 요심 전역 막바지에 살짝 투입된 게 다임.
북한군 6사단(입북 전 중공군 166사단)은 입북하고나서야 전투력이 오른 편이라 생각함. 입북 후 재편되면서 소련에게 물자 지원 받고, 군사고문단에게 소련식으로 다시 군사교육을 받았거든. 반면 2차 국공내전에서 166사단보다 전투 경력이 많은 중공군 156사단(북한군 12사단의 전신 중 하나)의 경우 입북하고 물자 지원도 별로였고 재교육도 없어서 동부전선에서 작살났음. 애초에 이들 입북시킬 때 마오가 "군사적 견지에서 (보면) 취약점을 가졌다"면서 간부교육 시키라고 주문할 정도였음.
한국군에서 기적적으로 잘 싸운 전투들이 줄줄이 나오는거 보면볼수록 북괴도 당시 보유한거 비해 병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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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당시 북한군이 벌벌떨던 한국군 명장들
개인적으로 6.25 전쟁때 무쌍 찍은 장군중 원탑이라고 봄, 반박시 니말도 맞다.(정떡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