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학이나 군사사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면 잘 모를 이름임.
풀 네임은 존 프레데렉 찰스 풀러임.
이 양반이 한 20년 전에 밀덕계에서 꽤 논쟁적인 인물이었음.
왜냐면 이 양반이 초창기 기갑 기동전의 선구자였기 때문인데 독일의 소위 전격전(Blitzkrieg)과 소련의 종심 작전(Deep Operation)에 무슨 영향 내지는 어떤 영향을 주었냐를 두고 엄청난 설전이 오갔음.
1916년~1917년 솜므 전투, 캉브레 전투 등 영국군이 주도한 전투에서 처음으로 전차가 등장하고 기갑 제대를 이용한 전투를 하면서 현대 전쟁에서 전차 또는 기갑 전력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풀러가 그걸 처음으로 한 사람 중 하나임.
풀러는 전쟁 중에 기갑 전력으로 뭘 해야 하는지를 구상하고 기획서를 하나 만들게 됨. 그게 플랜 1919임.
(왜 플랜 1919냐면 1919년 독일 제국의 척추를 부러뜨릴 대공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주장하는 거였기 때문임.)
풀러는 플랜 1919에서 솜므 전투나 캉브레 전투 전훈 분석을 제시하면서
1. 전차는 소수 운용하면 안된다.(=대규모로 응집력 있게 운용해야 한다.)
2. 전차의 역할을 전선 돌파(특히 참호선 돌파)로 끝나면 안된다.
를 강조했음.
그러면서 대규모 전차 부대로 뭘 할지를 논하는데 여기서 큰 논쟁이 일어나게 됨.
풀러는 전차 전력과 항공기 전력을 대규모로 운용을 하며 적을 마비시켜야 한다(=패닉에 빠뜨려야 한다)고 주장함.
풀러는 전선 돌파 후에 전차 제대들이 적 후방으로 쇄도해서 적 제대 지휘부/사령부를 타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음. 여기에 더 나아가서 의도적으로 적의 통신선, 교통선은 타격하지 않음으로써 적의 패닉을 확산시키고자 했음. 사람으로 치면 다른 부위는 두고 뇌와 경추와 척수를 조각내는 식임.
사실 플랜 1919 자체는 실행 가능성이 매우 낮았음. 왜냐하면
1. 당시 그렇게 장거리로 쉬지 않고 야지기동할 수 있을만큼 전차가 기술적으로 안정되지 않았음. (풀러가 요구한 수준이면 당대 일반 차량으로 도로 따라 달려도 쉽지 않은 요구였음)
2. 풀러가 계산 결과 필요로 하는 전차 댓수가 수천 단위라서 당시에 그 정도로 생산해서 배치하고 보급하는게 쉽지 않았음.
3. 근본적으로 '마비' 자체가 검증되지 않았음.
그러면 이게 왜 후에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 논쟁이 됐냐.
두 가지 이유가 있음.
1. 독일의 전격전이 풀러의 영향을 받았다는 통설이 있었음.
2. 소련의 종심 작전이 작전 목표가 적의 마비라는 통설이 있었음.
결론적으로 위 두 가지 이야기는 20년 전에 모두 허구로 결론났음.
왜냐면 두 가지 이야기에는 모순이 있었기 때문임.
가장 먼저 논박된 이야기는 1번임. 이 경우에는 이전부터 2차대전 독일군에 대한 정보가 이전부터 많이 들어왔고 군에서도 독일 유학을 많이 갔기 때문에 알음알음 정보가 많았음. 그러면 뭐가 모순이냐?
독일은 서방 군대 중에서 심할 정도로 포위섬멸전(Keil und kessel) 성애자였기 때문임.
독일군은 전선 돌파 후에 일관되게 망치와 모루, 포위섬멸을 위한 기동에 집중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음.
물론 마비가 없었던 건 아님. 1940년 프랑스가 그랬음. 하지만 프랑스 전선에서 보여준 마비 효과는 작전계획상 의도한 게 아니었음. 당시 독일군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저지대 국가 쪽으로 들어간 제대가 모루가 되고 스당을 돌파한 제대가 망치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작전술 단위 포위섬멸전이었음.
그러면 독일군과 풀러 사이의 관계 이야기는 왜 나왔냐.
이 양반 때문임.
[버질 리델 하트]
이 양반, 영국의 군사사학자였고 풀러의 영향을 받은 사람임. 근데 뭐가 문제였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군 장성과 인터뷰하면서 독일군 장성들이 립서비스성으로 "풀러 짱짱맨"한 걸 듣고 자뻑해서 독일군의 전격전은 다 풀러 스승님에게 배워서 그런 거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기 때문임.
이번엔 소련.
서실 소련도 포위섬멸전 성애자였음. 사실 유럽에서 기동전 지향한 군대치고 포위섬멸전 사랑 안한 군대가 없긴 함. 거기다 마비 같은 것을 들고 오는 건 소련과 맞지 않았음.
이게 뭔소리냐면 사회주의자가 전쟁하겠다는데 마비 같은 관념론 따위를 들고 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음. 그냥 물리적으로 작살내는게 더 유물론적이지.
그리고 초기 소런 종심 작전 창안자들은 풀러에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음. 그 선두에 누가 있었냐.
[투하체프스키]
"풀러는 그의 전쟁 이론에 철학적 기반을 보여주기를 좋아하며 스스로를 스펜서의 추종자라고 여긴다. 그러나 풀러의 철학적 측면, 풀러의 가장 취약한 측면은 가장 혼란스럽고 어떻게 보든 비판을 멈출 수 없다.
풀러는 영국의 충실한 제국주의자로서 '삶의 법칙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게 풀러가 그의 수치스러운 파시스트적 선동가의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빼놓으면 안된다. 풀러는 특히 전쟁에 대해 애수에 차서 '섬멸로부터의 탈출은 연구를 통해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마 전쟁이 장기판에서 결정될 날이 올 것이다."라고 외치고 있다."
(출처 :
그러면 왜 소련의 종심 작전이 마비를 추종한다고 오해를 받았냐면 소련군이 광정면 동시 접촉 후에 허점을 찌르며 종심 돌파를 하면서 적 사령부에 대한 타격을 할 것을 명시하고 있었고 이게 마치 마비를 의도하고 때리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임.
여하튼 풀러는 마비라는 실증하기 어려운 개념을 들고 왔지만 처음으로 기갑 전략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연구하고 내적 완결성을 가진 전술-작전술을 처음으로 창안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만한 사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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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들 좆트가 또
소련쪽 마비는 적사령부 모가지기도 하고
20년 전에 블리츠크리그란 이름으로 게임도 있었는데 그게 생각남
관념론이랑 마비는 무슨상관인지 모르겠고 소련은 맑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유도된 공산주의랑은 스탈린 이후론 이름말곤 비슷한것도 없는 사이임
그리고 전쟁하는데 유물론 유심론 따지는 병신이 어딨어
우습게도 소련은 따졋다. 정치장교 이런애들 보고서에 이 작전이나 전투는 소비에트적으로 이루어졋기에 위대한것 이딴식로 맨날 썻음
ㄴㄴ당시에 빨갱이들이라면 충분히 개연성 있지. 세상만사 모든 걸 다 자기네들 사상과 결부시키려고 했으니까.
소련이 그 병신이었음 ㅋㅋㅋㅋ
그놈의 기갑운용 교리때문에 프랑스 작살난거보면 퓰러도 그리 저평가될 인물은 아닌거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