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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중공은 단 한명도 처벌하지 않은 채 내전에 승리한 후 '덕으로 원수를 갚는다'는 논리로 감옥에 갇혀 있던 모든 전범을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국공 내전에서는 수만명의 일본군이 국공 양측에 용병처럼 고용되어 싸웠으며, 내전이 끝난 뒤에도 중국과 타이완은 일본 정부에 전쟁 보상이나 과1거사 사죄를 요구하기는커녕 경제 원조를 얻기 위해 머리를 숙였다. 중국 정부는 1988년 4월 국공내전에서 인민해방군으로 참전하여 희생된 일본군 출신 조종사들을 추모하는 대표단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중략)


1972년 9월 27일 다나카 카쿠에이 총리가 직접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과 회담하면서 중일 국교 정상화에 합의하였다. 여기서 저우언라이는 대일 배상 청구권의 포기를 공식 선언하였다. 일본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으면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던 중국 인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저우언라이는 "장제스는 우리보다 먼저 배상을 포기했다. 공산당의 도량이 넓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일본인들이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하려면 긴시간에 걸쳐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중일 양국의 우호를 바라는 우리의 희망과 상반된다"라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였다.


-중일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권성욱.



이러한 중국측의 태도에 오히려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이 더 놀랐다고함. 예를들어 공명당 위원장 다케이리 요시카츠는 적어도 500억 달러를 배상금으로 요구할줄 알았는데, 중국측에서 한푼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하자 온몸이 떨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고함.


마오쩌둥이 일본 총리에게 "일본덕에 우리가 중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해 감사한다." 라고 말한 일화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