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향하는 중국군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본국에서의 보급을 받게 되는 것은 우북평부터임. 그 이후부터는 병사들이 싸들고 간 등짐과 함께 간 우마차(치중), 마지막으로 절대적으로 중요한 현지보급을 통해 보급이 이뤄져야 함. 그런데 산해관을 넘어서서부터 나오는 저 지도에 노랗게 표시한 지역은 (요서, 요동) 전근대에는 거대한 습지로서, 보급마차의 속도가 하루 10km가 채 안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보급에 거대한 난관임. 해당 기록은 자치통감, 수서에서 확인되고, 2인용 외바퀴수레에 대한 기록인데, 우북평에서부터 유성을 거쳐 지도상에 강조 표시한 강(고구려군의 주 방어선인 요하 방어선)까지 군량미를 보급하려던 인원들이 가다가 식량을 다 소모하고 도적으로 변해버렸다는 기록임. 하루 10km는 거기서부터 직접 역산한 값이고 소폭 더 느리거나 빨랐을 개연성은 충분하지만 하튼 그 정도로 전근대 보급 수레의 진군이 좆같은 땅이라는 뜻.
그러면 현지보급을 해야 하는데, 사실 현지보급은 중원 왕조들을 넘어서 고중세 군의 가장 메인 보급 수단에 가까움. 손자병법 십가주를 읽어보면 부대 나눠서 하루종일 약탈 돌려야 보급 충당이 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고 실제 사례를 봐도 현지보급이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지며, 이건 카이사르 갈리아 원정에서도 그러하고 더 넓게는 로마군도 마찬가지임. 이 경우에 문제는 지도상 노랑색 부분이 뻘밭이기 때문에, 즉 요동 요서가 습지라는 특성상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만한 취락지대가 형성될 수 없음. 현지보급도 불가능하다는 소리.
수양제는 이걸 극복하기 위해 지도상 강조 표시한 강(요하)이 바다에 맞붙는 지역에 전쟁 이전 대규모 보급창을 형성해놓고, 거기서부터 고구려 방어선까지 육로 수송을 시도했음. 그런데 이 거리도 이미 300km를 넘어서 약 반 이상은 길가다가 수송대가 까먹었다고 봐야 타당함. 단순 계산상으로는 300km 거리의 10만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선 30만 이상의 보급인원이 하루도 쉬지 않고 로테이션을 돌아야 함.
중국 내부야 워낙 농경이 발달하고 부유한 평야 비중이 많은 만큼 군대가 현지 보급을 통해 보급을 충당 가능하지만(백성이야 뒤져도 전쟁에 이기는게 중요함.) 이게 안 되는 중간지대인 요동, 요서가 중간에 끼어 있다 보니까 중국 왕조 입장서 한반도는 참 먹기 힘든 땅이 되버림.
애초에 중국이나 인도는 식량 자원만 많아서 무기 자체가 별로 없었음 그래서 철 생산량이나 실제 병력은 로마보다 적었을 것으로 추정할 걸
잘 나오는 유목민 관련 질문도 마찬가지임. 중국이 왜 유목민한테 빌빌거렸냐? - 빌빌대지 않음. 싸운 기록 보면 잘 싸움. 그럼 왜 유목민 못 이겼냐? - 정주민 군대가 보급이 불가능한 땅이라 유지가 안 됨.
+ 전근대에 '본국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보급로를 유지한다' 이건 판타지임. 나오는 게 이상한 것. 원래 싸우는 땅 작물 빼앗아야함. 근데 유목지역이나 요동 요서는 그게 감당이 안 됨
아예 불가능한건 아님, 크세르크세스의 경우 지정된 원정로에서 약탈 대신 지속적인 세금을 징발하여 원정대를 유지할 수 있었음, 물론 이런 방법은 거리가 멀수록 힘들고 원정전부터 지속적인 통치력이 있어야만 가능했음.
'현지보급'이라 할때는 징발하고 구매도 포함한 개념인데 너무 약탈 위주로 설명하긴 한듯 ㅇㅇ 어쨌거나 본국에서부터 링겔 꽂는 식이 안된다는거임
한중 전쟁역사는 개추
중공군은 인민 갈아서 보급물자 확보하던데 그거 기차로 옮겼을려나
철도 나온 다음에 모든게 다 바뀐 이유가 철도는 밥도 안 먹고 빠르고 거대물자 운송도 되고 깔린 범위 내에서는 지형 영향도 덜 받아서임. 철도가 보급사를 뒤바꾼 왕중왕임
중일전쟁이 몇년인데 이미 중국 동북부나 만주나 철도인프라는 많이 깔렸지.
중국 공산당 후반기 사실상 본거지가 만주인데 거기 일본군이 존나게 깔아놓고 갔을걸ㅋㅋㅋ
고대는 지금보다 해수면도 높아서 만주가 뻘밭이였다는 소리가 있긴하더라 ㅇㅇ
아예 요동, 요서로 안 부르고 요택澤 이라고 부름. 택이 연못이나 습지대에 쓰는 단어
K-라스푸티차 ㄷㄷ
전근대의 보급은 ㄹㅇ 지옥인 듯ㅋㅋ
매번 비슷한 판도로 국가가 형성되는 이유가 결국은 자연경계로 인한 보급한계 형성 같음 ㅇㅇ
오 - dc App
애초에 좋은땅이라고 생각도 안했을듯, 척박하지. 춥지.. 영지관리힘들지...방어뚫기 힘들지... 가성비 안나온다고 생각했을듯
정치적 이유나 황제 개인의 욕망 이외에는 별로 메리트가 없기도 함
배로는 어떻게 안되려나? - dc App
전근대 보급에서 배는 최고존엄이라, 수양제가 수십만 수준의 대군 이끌고 요하까지 갈 수 있던 이유도 배로 미리 보급창을 만들어뒀기 때문. 그런데 이것도 지속적으로 '꽂아주는' 보급로 형식은 안됨. 일단 중국 내부에서 항구 거점까지 물자를 '모아야'하는데, 그 '모으는' 과정도 똑같은 육로보급의 문제가 있으니까.
내 기억이 맞다면 수양제가 배로 미리 형성해둔 보급거점이 지도상 유성현에 흐르는 강과 강조표시한 요하 사이일 거임. 문제는 이래도 고구려 안까지 들어가면 보급품 전달을 담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육로수송이 비효율적이라는 점.
또 배 같은 경우는 전근대에 아군이 어디 도달했는지 알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음 + 풍랑에 지속보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
짱개는 그렇다치더라도 몽골은 잘도 침공 잘했네 보급 현장에서 수급했을거 같은 이미지 이긴한데
중국의 몽골 침략인지, 몽골의 중국 침략인지 잘 모르겠는데 전자는 내가 아는게 없고 (ㅋㅋ;) 후자 같은 기마민족의 정주민족 침략은 민간만 털어도 먹을게 넉넉하게 나올 수밖에 없음
아 몽골의 한반도 침략 얘기였음 여몽전쟁
1차 여몽전 초반에 주 2개가 날아갔으니까 거기서 현지보급한듯? 군대 규모도 그렇게 큰 동원은 아니었으니까
몽골의 고려 침공은 고려가 당시에 정상이 아니어서... 중앙군이 몽골보다 반란 떼려잡는데 주력이라서 몽골이 현지보급 열심히 돌렸지...
요동 지형이 보급 좆박은 건 맞는데 그 이전부터 짱깨 왕조들이 사방 팔방으로 원정한 거 봐서는 무지성으로 요동에 들이박지는 않았을테고 어느정도 극복 가능하다고 본거라고 생각함 물론 미리 강폭을 측정했지만 실제론 살짝 부족한 나머지 때죽음 당한 사례도 있었만서도 그 이전 고조성부터 원정 성공시킨거 보면 보급, 지원 능력은 있었다고 보여짐
전근대에 수십만 단위의 군대를 저기에 보냈고 어쨌거나 돌아왔다는 점에서 고평가할 여지가 있다고 봄. 근데 이제 이런 제약이 그렇게 가벼웠나 하면 그건 아니라는 거고.
한창 치고박고 싸우던 시절 국경선이 대부분 자연 국경이지
산둥에서 옹진으로 상륙하는건 근대나 돼야 가능한가?
이 점은 확답하지 못하겠음. 해양세력이 발달하지 않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중국 통일 정권이 대규모 수상병력을 유지한 사례 자체가 드물기도 하고.
백제멸망전에서 소정방이 13만 대군 이끌고 산동에서 덕적도 상륙후 백강하구에 상륙해 백제 침공하긴 했는데 신라군이 정해진 날짜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다고 난리친거 보면 가능은 해도 도박수였던게 아닐까 싶음.
가능은 한데 아군 육군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그리고 상륙 작전 자체는 도박수가 많아서 잘 안함. 백제전이야 양동 끼고 성공했지만 나당전쟁 후반에 당이 백제방면으로 상륙하려다가 말아먹음.
그걸 기어이 100만 꼴박한 수양재가 경이롭긴해 - dc App
양제 - dc App
습지라 해도 뭔가 극복 가능했으니 고조선이 연나라한테 얻어터줘도 보고 한무제 한테 멸망한건데, 그 부분이 해명되어야 할듯 수당시절엔 그러한 극복 가능했던 방법을 상실해서 수만수십만씩 때려박거나 100만도 동원했다고 봐야할려나 글고 해안선이 시대마다 달랐던 점도 고려해야 하고 - dc App
병력이 줄어들수록 현지에서의 보급이 가능한 선택지로 올라오게 됨. 관구검 병력은 1만여 정도이고 그것도 한데 모여서 간 게 아니고 여러 길로 갔음.
관구검은 평양까지는 안 갔잖어 - dc App
기본적으로는 한반도 북부 정치체의 여력이 작음 + 그래서 적은 병력으로 격파가 가능함 + 선비 오환 등 가능한 새외 이.민족에게서 도움을 받음. 정도인 듯.
전근대 중국 통일왕조가 총력전 할 각오로 밀어 붙이면 다 정복할 수 있긴 함. 정글로 악명 높은 베트남, 히말라야 끼고 있는 티베트, 고비사막을 건너야 하는 몽골도 기어이 정복하긴 했음. 들어가는 돈과 인명에 비해 나올게 너무 없어서 대부분 금방 도로 뱉어내버렸지만.
무제의 고조선 멸망은 자료가 너무 없어서 실제 원정이 어떤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고조선이 어떻게 방어했는지.. 아니 고조선 영역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고 행정영역은 어떻게 되며 역량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야 그걸 갸늠할듯
광개토대왕 이전까지는 그게 가능함. 만주, 요동 지역에 정치체가 고구려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중국쪽에서 고구려 치러갈 때 부여에서 보급 받아갔다는 말도 있던거 생각하면 자기가 치려는 상대의 적대세력이나 중립세력 쪽에서 보급 받아간 듯
중국쪽이랑 전면전? 이라고 할만한 전쟁은 4번 있었는데 그중 한나라,당나라,청나라에는 허무하게 정복당했고 수나라는 막아냈지. 그와 별개로 중국 옛날 역사서보면 한반도쪽 자체가 북쪽 유목민족들이랑 물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줘도 안먹는다라는 인식이 큼.
기본적으로 통일된 중국 왕조는 대부분 남쪽, 서쪽을 정복하려고 시도했음 현재 공산당도 마찬가지고.
티베트랑 위구르에 집착하는 이유가 그거 때문인가
당나라도 허무한 정복까진 아니었음. 신라하고 연합해서 공격했으니
정벌은 가능해도 지배는 어려웠다고 이해하면 되나
어느정도 큰 정권이 들어서면 이쪽도 큰 병력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큰 병력일수록 저 구간에서 유지가 힘들어짐) 장기간의 지배도 어려움. 만주가 반유목정권을 낳는 분만실 역할을 하는게 어느정도 농업이 가능하면서도 중국쪽에서 터치하기 상당히 먼 입지라서.
지도를 이렇게 보니까 큰 지중해 같네
지중해처럼 사용되었다면 정말 좋았을텐데
단순히 땅만안좋아서 정복을안당한건아닌데 지형도 큰이유가되긴하지 애초에 농경되는땅이 똥땅은아니니까 그래서 몇번정복하려했는데 아예 현지세력도움없이는 거의힘들었지
만주가 워낙 험한 땅이라 군대 굴리기 ㅈ같은 건 ㄹㅇ인듯. 만주하면 걍 엄청 넓은 벌판만 떠올리기 쉬운데 실제로는 사막, 고산지대, 늪지, 원시림 다 있는 말도 안 되는 험지임. 저기에 군사 밀어 넣는 건 진짜 수양제 같은 미친놈이나 가능한 거.
고조선, 고구려, 발해 같은 한국계통 북방 왕조들이랑 싸우는 것만으로도 이미 황제가 친정해야 되는 레벨인데. 만주에 득실거리는 거란, 여진, 말갈 이런 유목민들을 복속시키지 못하면 한반도로 진출할 수가 없음. 한무제 때도 한사군만 설치하고 바로 철군한 거 보면 중국 입장에서 한반도 진출은 그냥 계륵임. 적당히 조공 책봉해주면서 우호국으로 놔두는 게 낫지
임용한 교수도 비슷한 말 하던데 전쟁사 전공자 연구는 다 수렴하는듯
저기가 이세민이 쌩고생했다는 요택인가
요택이 뭔지 실감하려면 포털에서 "홍해탄"이라고 검색해봐~~ 대릉하 하구의 습지인데 농사도 안 되고 길도 뚫을 수 없다는 걸 실감할 꺼야. 단! "요택"이 실제 대릉하 하구라고 주장하는 건 아냐. 단지 그게 왜 뭣같은지 실감해보라는 거지. 요택의 후보지는 넘 많지. 영정하, 조백하, 고황하가 만나는 천진 인근, 난하 하구, 대릉하 하구, 요하 하구가 다
저런 지형이라 요택이 될 수 있고, 주장도 분분한데, 난 어디라 못박는 게 아니니 그냥 넘어가라.
저기 ㄹㅇ 지옥이라 당태종이 직접 수레 끌었다는 썰도 돌고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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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의 물을 빼는 작업이 전근대에는 어마어마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그 범위가 넓을수록 거의 어려워짐. 현대 한국의 곡창지대 중 상당수도 현대 기술 들어오면서 습지에서 배수작업을 진행한 이후에야 곡창지대화 된 편. 그 전까지는 습지/뻘이었음.
갈석산 동쪽 요서지역은 고조선의 발상지이자 상고시대부터 우리땅이었는데 저걸 다 뺐겼으니... 쩝. 고대야 저게 뻘밭이었지 최근에는 상당수 개간하고 이용가능한 땅이라서 더 아까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