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병제를 폐지할때 병호제를 도입하지 않음


한반도국가들은 역사적으로 세병제와 병호제를 통해서 상비전력을 확보했었다.


세병제는 귀족과 군벌이 가진 사병을 뜻하며 병호제는 신라의 경우 서라벌이 위치한 사로국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핵심계층을 주축으로 병역을 부담시키고 특혜를 주는 방식이었고 고려의 경우는 경기주위의 서해도와 양광도에서 토지를 지급하고 병호를 지정하는 방식이었다.


귀족이나 군벌이 강성할때는 세병제가 주축이 되고 국가의 세력이 강해지면 병호제로 전환되는 시스템으로 군대를 굴렸으나 조선초 사병을 폐지할때 사실상 무대책으로 상비전력을 해체시켰고 그 결과 즉응전력의 미비로 인해서 임진왜란때 초전에 크게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 이후로도 이괄이 지휘하는 1만2천의 상비전력으로 대책을 세웠으나 그것이 반란으로 돌아오게 되자 이후 남이흥과 정충신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조는 그냥 대응을 포기해버렸고 병자호란때 참패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세병제는 말할것도 없고 병호제에서도 무신정변같은 반란의 여지가 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반란이 무섭다고 최소한의 방어전력조차도 포기한다는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고 신라와 고려와 다른 조선의 약체성을 드러내는 심각한 문제점이었다.오늘날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면 전체경제가 몰락하게 되는것이 사실이 아닌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비교적 강력한 조선정부의 감시체계하에서 의병의 동원체계를 구축한것도 아니다. 그냥 문제가 있어도 정치적인 부담과 당위가 있으면 그냥 대책없이 포기하는 것이 항상 조선식 해법이었으며 끝까지 달라지지 못했다.


2.조선식 중앙집권체제의 문제점


봉건체제하에서는 국가와 백성차이에 봉건영주가 존재하고 그 영주는 백성을 수취하고 관리해서 영주자신이 국가가 요구하는 부담을 대신하느 구조를 가지고 있다.그러나 조선은 지금의 북한마냥 개인과 개인의 갑을관계가 무수히 확장되는 시스템이었다. 봉건체제나 근대국가처럼 정부와 국민이 직접 연결되는게 아니라 국가가 위임한 관료와 향리 그리고 그들과 연결된 이권세력에 이중삼중으로 수탈당했고 이로인해 정부는 기본적인 조세규모를 낮출수밖에 없었으며 그래서 재정적인 능력이 약화되고 군대를 무장하고 보급할수 있는 경제력과 동원력에 심각한 타격을 얻게된다.


3.통제를 넘어선 간섭


지배층인 국왕과 귀족자체가 군인인 신라와 군대가 존재하지만 오늘날처럼 최고지휘관과 장관급인사를 국가관료인 문신이 맡아서 통제하는 고려와 달리 조선의 경우 분명 무신이 따로 존재했지만 전략과 인사에서 있어서 비군사적인 국왕과 관료세력의 판단과 결정하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그래서 전략적인 사고가 결여된 쓸데없는 독전과 무모한 행태로 참패하거나 요충지를 맡은 지방수령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조선은 고려말의 요동과 동북면처럼 수동적인 공백지로 전락하게 되었고 결국 고려와 원나라 그리고 고려와 명나라의 각축전으로 각각 점유가 확립된것처럼 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와 일본간의 각축전으로 조선의 점유가 확립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