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일본 폭주족의 대략적인 계보를 이해해 보도록 하자.
60년대 고도성장 이후 풍족하게 된 일본의 일탈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모여 오토바이 주행을 시작한 것이 계기라 볼 수 있다.
물론 폭주족 이므로 당연히 당시에도 상당히 민폐를 끼치는 집단 이었지만
이후 시대에 비하면 흉악한 이미지는 덜 하였다.
<전통적으로 규모가 꽤 큰 팀이었던 조커스의 70년대 당시 활동 사진. 이때만 해도 싸움은 되도록 피했다>
아무래도 집단 행동이다 보니까 다른팀과 싸움을 일으키는 일이 물론 종종 있긴 했다.
그로 인해 각팀끼리의 연합체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어느정도 구도가 잡히고
70년대에 형성된 도쿄의 전반적인 세력 구도는 다음과 같았다.
위와 같이 5개의 주 연합체 세력과 그 외 비교적 소규모 연합체 및 단일 군소 팀들이 존재 했다.
인간이라는게 원래 그렇듯 세력끼리의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었고 '적대 세력'이라는 개념이 생기다 보니
패싸움이 예전보다 엄청나게 늘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기본적으로 폭주족의 주목적은 '주행'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 아래 집단의 등장으로 폭주족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다.
<극악(極惡), 만화 폭음열도에서 극락(極樂)이라는 이름으로 등장>
도쿄 변두리의 폭주족 팀이었는데 이전까지의 팀들과는 다르게 싸움을 적극적으로 일삼았다.
연합체 세력 소속이 아니었으나 싸움에 워낙 능하여 대형 팀들을 족치고 다녔기에
전투력 만큼은 당시 최강으로 평가 되었다. 오오이부두에 CRS연합 1000여명이 모여있을때
극악 인원 80명이 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일본 폭주족 하면 떠오르는 특공복 차림도 극악이 원조로 알려져 있다.
결국 극악이 폭주족 문화를 변화 시킨것.... 폭주족들이 다들 특공복을 입기 시작했고
싸움의 강도가 더욱 커졌고 흉기의 수준도 더욱 흉악해지기 시작한다.
이때가 바로 일본 폭주족의 전성기로서,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이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들어 사회가 변하면서 폭주족의 규모는 대폭 감소하기 시작했고
90년대 초반 들어서는 폭주족은 촌스럽다는 인식과 함께 불량청소년들은
폭주족 대신 찌마라는 명칭의 스트리트갱 스타일을 추구하게 된다.
<찌마, 90년대 초중반의 청소년 폭력써클>
이러한 변화에 따라 여러 폭주족 팀들과 연합체는 하나 둘 해체되기 시작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가 했는데, 고작 몇년 뒤인 90년대 중반.
아직까지 폭주족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던 78년생들이
관동연합을 부활시키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
<블랙엠퍼러 총장 미타테 신이치. 진성 미친 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잔학성을 가지고 있었다>
<블랙엠퍼러 부총장 마츠시마 크로스. 마찬가지로 교활하고 잔인한 성격>
<메두사 총장 무라이 유스케. 싸움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여러명이 배트를 들고 습격했는데도 격퇴>
그 중심에 이들이 있었다. 유명무실해진 관동연합을 부활시킨 주축들이었는데
(사실 한살 위인 77년생 세대가 부활의 시발점이긴 했지만 세력은 이들이 왕창 구축해 놨다)
70,80년대의 원조 관동연합과는 사실 연계성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이름만 따온 전혀 다른
'폭력조직'에 가까웠기 때문. 이전의 폭주족은 일단 기본적으로 집회, 주행이 목적이었고
싸움을 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폭주족끼리의 자존심 탓에 이루어지는 알력싸움에 가까웠지만
90년대에 부활한 관동연합은 뒷골목 마약판매, 여중고생 매춘 공급, 협박 갈취 등으로
이익창출에 적극적인 폭력단 형태가 됐다. 간부들은 10대 중반 나이에 월에 수십, 수백만엔의 돈을 만졌다.
이러한 이권이 달려있는 가운데 관동연합은 적대 폭주족이나 찌마세력을 하나하나 격멸, 혹은 흡수 해나가며
도쿄를 평정해 나갔다. 싸움방식은 이전의 패싸움과 전혀 달랐다. 적대세력의 리더나 간부 등을 납치해
온갖 참혹한 고문을 자행했는데 토치로 얼굴 구워버리기, 몸에 못박기, 뼈 부수기, 똥 먹이기 등 신체 손상과
집을 습격해서 부모를 위협해 금품을 빼앗고 가족, 애인이 보는 앞에서 수치를 주는 등 정신적 고통을 주는
등의 방식도 나타났다. 이로 인해 심각한 장애가 남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많았다.
지금부터 설명할 이오기레이싱 69능욕 사건도 이런 맥락이다. 그럼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위에 기술한 도쿄 내의 세력들 외에 도쿄 밖에 TC연맹이라는 제법 큰 단체가 존재했었다.
한국으로 치면 경기도권 단체... 그곳 간부의 친척 한명이 도쿄 스기나미 구에 살고 있었다.
'아카호리 노부오'라는 인물로서, 중학교 시절 엄청난 폭군으로 알려져 있었고 인근 30개 중학에 영향력을
행사 하고 있었다. 실제로 무력이 상당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카호리 노부오는 중3때 스기나미구를 거점으로
TC연맹 산하의 '이오기레이싱(井荻レーシング)'이라는 폭주족 팀을 창설 한다.
그리고 이후 이오기레이싱이 '틴즈로드'라는 폭주족 잡지에 등장하면서 문제의 발단이 된다.
<이오기 레이싱 총장인 아카호리 노부오. 77년생으로 신흥 관동연합의 주축들 보다는 한 살 위다.>
<우측은 부총장>
잡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스기나미구는 우리가 접수했다'라고 한 것이 문제였다.
스기나미구는 관동연합의 주 본거지였고 관동연합의 심기는 매우 불편해졌다.
이후 몇번의 작은 충돌이 있었고 이오기레이싱 측은 스프레이 낙서 등으로
관동연합을 도발하기까지 한다. 도쿄내에서는 단일 군소팀 이지만 TC연맹이라는 뒷배경이 있어서 나름
배짱있게 행동 했을 것으로 추정....
그리고 약 1년 뒤... 일은 터졌다. 관동연합이 이오기레이싱을 제대로 손 봐주기로 결심한것.
이 때는 관동연합에 싸움꾼 폭주족 집단으로 유명했던 미야마에구렌타이도 합류한 상태였다.
<미야마에구렌타이 총장 시바타 다이스케. 신장 150cm 이하의 초단신 이었지만
땅땅한 근육질에 각종 격투기 단련으로 싸움실력은 매우 절륜했다. 관동연합과 친분관계의
알아주는 싸움꾼 우리타 준지와 약간 트러블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겨 팼다.>
관동연합은 이오기레이싱 간부들을 유인, 납치후 (꽃뱀을 이용했다는 설이 있음)
린치를 가하다가 아카호리 노부오의 요청에 의해 1대1로 싸우게 되는데
이때 시바타 다이스케가 나선다. 물론 싸움으로 한가락 하는 아카호리였지만
이미 린치를 당하던 중으로 심리적으로 위축 돼 있는 상태였는지 몰라도
시바타에게 처참하게 얻어맞고 항복을 한다. 이후 관동연합 멤버들은 또 다시
무자비한 구타를 한다. 이때 메두사의 총장 무라이 유스케는 아카호리 노부오가 가지고 있던
너클을 빼앗아 끼고는 노부오의 턱뼈를 박살내 버린다.
<린치 후에 벗겨진채 짓밟히고 있는 노부오>
------아래부터 다소 혐짤일수 있으니 주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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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오기레이싱의 간부들이 나체로 포박 당한채
각종 능욕 사진들을 찍히고 심지어는 총장과 부총장은
69능욕 퍼포먼스까지 강요 당한다.....
관동연합 측은 이오기레이싱 측에 일주일내로 50만엔을 가져오지 않으면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 이에 아카호리 노부오는 야쿠자에게 의뢰해
사진을 회수하려 했지만 관동연합 측은 오히려 분노하여 사진을 스기나미구 곳곳
담벼락, 전화박스나 아카호리 노부오의 출신 중학교 정문 등에 붙이거나 해서
대량 유포 시켜 버린다. 또한 아카호리 노부오 부모의 자동차를 방화하고
집을 습격하여 물건들을 때려부수거나 부모로부터 금품을 강탈하기도 하는 등
추가 보복이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오기 레이싱 해체는 물론,
아카호리 노부오의 불량배 생활은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리고 위 사진들은 몇 년 후
'매드맥스'라는 막장 잡지에서 입수하여 실리게 된 것....
낙지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