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독빠들\'한테 디스당하고 은둔하면서 서로이웃한테만 공개돌리던 은둔고수같은 밀덕아죠시 블로그에서 봤던건데

\'왜 2차대전기 프랑스 전역에서 미군들은 현저히 낮은 전투력을 보였을까\'에 대한 포스팅이었음.

원문을 그대로 보여주는게 가장 확실하겠지만 일단 복사를 금지시킨 블로그 주인장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복사 대신 내가 그 내용을 어느정도 간추려 옮겨적어 소개하면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음.

1. 미 육군은 급격하게 덩치를 불렸다.

2차대전 개전 직전 미 육군의 인적자원 상황은 상부는 상부대로 말단은 말단대로 상당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경험도 부족했음.

전통적으로 큰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지상군은 소규모만 굴리던 나라인데다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인한 군축, 유럽에서 벌어질 장차전에 개입하고싶어하지 않는 고립주의자들의 영향력 등 복합적인 방해요인들 때문에 미 육군은 유럽의 중소국가와 비견되는 수준의 전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수백만 대군으로 뻥튀기를 시켜야 했음.

물론 결과적으로 압도적인 쇼미더머니와 조지 마셜 원수같은 인재들의 노력에 힘입어 이런 부족한 기반을 극복하고 2차대전 승전에 압도적인 기여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극복할수는 없었던거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미 육군의 졸전 역시 이 부분이 가장 큰 원인이었고 이 부분은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계속 쌔우면서 어느정도 성장을 하게 됨.


2. 처참한 당대 미 육군 일선부대의 간부 수준.


멕시칸 산적떼나 견제할만한 인력 수만 ~ 십수만 규모의 소규모 지상군에 걸맞는 규모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간부 양성 체계로는 갑자기 뻥튀기된 수백만 대군의 장교단을 전부 교육시켜서 애전으로 보낼 능력이 없었음.

자연히 징집된 인원들 중에서 고학력자나 싹수가 좋아보이는 녀석들을 3주간 속성교육시켜서 장교로 임관시킴.

쉽게 설명하자면, 전재우터지고 갑자기 끌려와 다같이 한달동안 신병교육 받은 동기들중 몇명이 후반기 받는 기간동안 사라졌더니 자대가보니까 신참 쏘가리로 부임한거임.

대개 말단 병사들이 소대장이나 중대장을 믿고 따르게 되는 중요한 요인중 하나가 \'권위\'임. \'아, 저 양반은 그래도 군사교육을 오래 받으면서 나보다 짬도 많이 먹었고, 이런저런것도 많이 배운 사람이고, 나보다 나이도 한두살은 더 많다.\' 뭐 대충 이런데서 오는 약간, 혹은 꽤 높은 권위가 병사들을 통제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되는데

일단 저 무렵의 신참 미군 쏘가리들은 이 시점에서 이미 리더쉽에 마이너스 점수 깔고 들어가는거임. 능력도 뭐 졔는 대학물 먹었으니까 잘할거라는 막연한 기대감 갖고 3주 굴려놓고 임관시키는데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지도 미지수지.

(밴드 오브 브라더스 후반에 나오는 웨스트 포인토 신참 소위를 상부에서 애지중지 여기며 금방 후방으로 빼던것이 괜히 그런게 아니었음. 제대로 교육받은 귀한 초급장교였으니.)

부사관은 상황이 더 나빴음. 병사들중에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사람들이 부사관을 해야하는데 군 조직 자체가 수백배로 뻥튀기 된 마당에 부사관이라고 달랐겠나. 거기다 소대장은 병사 30~40명에 하니 필요하지만 분대장은 병사 열에 하나꼴로 필요하니 어떻겠음.

자연스럽게 2차대전 초중반의 미 육군 말단 보병부대에서 병사들에게 보여지는 그들의 선임자들이란 \'소대장 = 대학물 먹은 훈련소 동기, 분대장 = 훈련 성적 좋았던 훈련소 동기\' 들이 태반이었던거임. 전쟁 이전의 육군 복무자 한줌은 싼샤댐 터져서 밀려드는 물폭탄처럼 쏟아지는 대규모 징병자원들에 휩쓸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겠지.


3. 거기다 1944년 6월 무렵엔...

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쟁 초반에 급조된 인원들이고, 물론 44년도애도 대다수의 부대가 그모양이던건 어쩔수 없었지만, 노르망디 상륙을 앞두고 준비되었던 \'침공부대\' (Invasion Unit)들은 왜 그렇게 독일군이랑 동규모 보병전투가 벌어졌다 하면 박살나기 바빴는가 의문을 가지는 이들고 많을거임.

이들은 기본적으로 북아프리카 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에서 실전경험을 치른 부대들이었고, 상륙작전을 앞두고서는 영국에서 강도높은 맹훈련을 몇달간 반복하면서 프랑스 진공을 준비하고 있었음. 그런데 이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진 이유가 무엇이었냐면 갑작스런 규모 확대와 탁상공론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정리할 수 있겠음.

앞서도 여러번 강조했듯 미 육군은 간부 병사 할거 없이 대다수가 신병인 군대였음. 중요한 작전을 앞두고 대규모 병력을 영국에 집결시키는덴 성공했지만, 대다수 병력들의 전투력은 여전히 못 미더웠음.

그래서 미군 지휘부는 베테랑들이 신병들의 전투력을 키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침공부대로 준비시켜둔 대다수의 기존 부대를 재편해서 고참병들을 골고루 신참들 사이에 재배치시킴. 언뜻 보면 괜찮은 아이디어긴 한데, 문제는 시기가 너무 촉박했다는거임.

1944년 1월 ~ 4월의 기간동안 이런 조치가 취해졌는데 이는 최악의 수가 되었음. 몇달에서 몇년간 자기랑 훈련도 해보고 전투도 치르면서 호흡을 맞춘 전우들은 온데간데 없고, 갑자기 이병들밖에 없는 부대에 혼자 똑 떨어져서 \'야 너 시실리에서 피똥 싸 봤지? 니가 얘들 보살피면서 쓸만하게 키워야한다.\' 같은 상황이 된거임.

시간이라도 넉넉했으면 모르겠는데 중요한 작전를 코앞에 두고 이래보리니 이건 신병들은 신병대로 여전히 얼타고, 잘 하던 부대는 개인개인으로 분배돼서 신병들의 물결에 휩쓸린 꼴이 되어버렸음.

포스팅했던 블로거분은 이와 같은 대표적인 사례로 제 29보병사단의 직할의 29레인저대대를 소개해주고 있음.


29보병사단은 오마하 비치의 상륙 1파로 지정된 부대였고, 29레인저는 사단에서 지원자를 받아 영국군의 코만도 훈련을 이수시킨 뒤 이들을 모아 만든 정예부대였음. 이들의 임무는 상륙 1파가 겨두보를 확보하면 2파로 투입돼서, 교두보 너머의 독일군 거점을 공격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음.

그런데 상륙을 앞두고 이런 별도의 특임부대가 필요없다는 생각을 한 사단 윗대가리 누군가의 의견이 있었는지 부대가 해체돼서 예하 보병대대에 분산배치 돼버린거임. 한술 더 떠서 이들은 \'특수훈련 받은 친구들이니까\' 상륙 1파로 지정되었고, 결국 29레인저 출신들은 \'상륙 5분만에 사상률 90퍼센트\'라는 기록을 남기며 녹아없어져버림.

차라리 부대가 신병들로만 구성됐다면 시키는대로 죽어라 뛰어다녔을지도 모르겠지만, 중요한 작전 앞두고 나타나 자기를 이끌어주리라 믿었던 고참병들이 아무것도 못해보고 픽픽 쓰러지니까 신병들은 얼어버려서 할 수 있을 일도 못하고 멘탈 깨지고 육신이 갈리고...

이 문제는 교두보 확보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신병들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던 구조는 상당기간 미 육군 말단 제대의 전투력을 잡아먹게됨.
간단히 말해서 중대장이나 행보관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보지 못하고 말단 소총분대 분대장이나 소대장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거임.

미군 지휘부 역시 바보는 아니었던지라 기존의 병력 운용 방식에 개선이 필요함을 깨닿게 됐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국군이 굿우드 작전을 말아먹으면서 미군의 전투 부담이 늘어남애 따라 병력 운용에 여유부리기는 더 힘들어졌고, 그 결과가 44년 프랑스 전역에서 독일군들이 말하는 \'형편없는 전투력의 미군들\'이었다는 이야기임.

4. 근데 잘 싸우는 애들도 있었다. 다른 애들도 점점 잘 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개판 5분전의 인사상 난맥에서 자유로운 부대가 몇 있었음. 독일군도 전투력을 자신들과 동등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했던 공수부대나 레인저 대대 이야기임.

이들은 일단 무리한 고참병 재배치에서 자유로울수밖에 없었는데, 공수부대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낙하산 교육등의 특수 교육을, 레인저 부대의 경우에는 악명높은 영국군의 코만도 교육을 이수한 인원들로만 구성되었고, 부대 특성상 일반 부대와 인력이 섞일 여지가 없어서 일반 부대처럼 극단적인 인원 재배치가 이뤄지지도 않았음.(부대가 통째로 해체되고 일반 부대로 전출가야했던 29레인저는 특별히 재수가 없던 케이스.)

풍부한 실전경험이나, 실전경험은 없더라도 수년간 같은 부대에서 특수훈련 위주로 맹훈련을 받으며 호흡을 맞췄으니 전투력이 온전하게 발휘될 수 있었던거임. 거기다 이런 녀석들이 미군 최대의 자랑인 압도적인 군수지원이나 2차대전중 세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압도적인 포병 화력지원을 받으며 싸우게 되면 동 규모의 독일군으로서는 답이 안 나오기 시작함. 서부전선의 독일군도 슬슬 갈려나가면서 인적자원 문제가 점점 심해지기 시작하니까 그 격차는 더해지고...

거기다 아무튼 실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던 야전부대들도 점차 실전경험이 쌓이고 호흡을 맞추면서 없던 전투력이 점점 쌓이기 시작하자 불황으로 허리띠 졸라매면서도 악착같이 만들어 전투부대 기본화기로 뿌린 반자동 소총이나 높은 자동화기 보급률 등에서 오는 화력의 이점, 시골에서 사냥하면서 나고 자랐던 인력자원등 여러가지 미군만의 숨겨진 강점들이 점점 빛을 발하기 시작함.

이런 결과 결국 44년 연말 ~ 45년 연초의 미 육군 전투부대는 초전의 대혼란을 극복하고 전투력이 향상되는데다, 거기 맞물려ㅠ독일군은 날이 갈수록 막장이 되어 양측의 전투력은 덤차 지교할 수 엊ㅅ을정도로 벌어지게 된다... 는 이야기.

안타깝게도 레퍼런스는 일일히 안 적는게 보편화되있던 시절에 올라온 포스팅이라 관련 1차사료를 직접 확인할수는 없었지만, 일단 내 개인적으론 덕력이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아죠시라서 이 이야기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

떡밥 돈 김에 미군과 독일군 모두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 이 이야기를 올려보는데, 혹시 관련 자료 찾아볼 수 있는사람이 앞선 키배나 이 이야기를 보고 이 떡밥과 관련된 자료들도 올려주고 하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