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경험 부재로 6.25전쟁 초반 대패에 도의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어쨌든 나라를 위해 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인물을 북한의 간첩 취급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 같음.


1) 한국전쟁 직전 육군 정보국의 전면 남침 경고에도 경계태세를 해제했다.

ㆍ채병덕 뿐 아니라 당대 한국군 수뇌부 모두 '남침은 없다.'는 극동사령부와 CIA 등 미국 측의 말을 더 신뢰했음.

ㆍ한국군 역시 오랜 경계 태세를 취해왔기에 사기 저하는 물론 군량 고갈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농번기에 장병들을 휴가 보내는 것이 틀린 판단은 아니었음.


2) 전선이 밀리는 와중에 제대로 된 조치와 보고를 안 해서 사태를 키웠다.

ㆍ채병덕은 한국전쟁 발발 즉시 전군에 비상을 걸고, 육군 정훈감 이선근 중령에게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서 장병들을 복귀시키라고 명령함.

ㆍ이후 일요일이라 연락이 안 되는(...) 신성모 국방장관의 자택을 아는 신동우 중령을 통해 직접 상황을 보고함.

ㆍ이후 의정부 방면의 통신선이 두절되자 직접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전선을 지휘했고, 육본에서는 김백일 참모부장이 대리를 수행함.


ㆍ육본에서는 모든 병력을 소집하여 필사적으로 북한군을 저지하려고 하면서 황당하게 국무회의나 국회에서는 거짓 승전 보고를 올리는데... 공교롭게도(?) 항상 신성모 장관이 옆에 붙어서 거듬.


3) 한강 인도교 폭파 명령을 내렸다.

ㆍ북한군의 한강 이남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 다리 폭파는 군사적으로 반드시 필요했음.

ㆍ다만 너무 빨리 끊어서 강북의 6개 사단이 고립되고, 서울 시민들의 발이 묶인 것이 문제였는데 한강 다리 폭파 계획은 채병덕이 세웠지만 그 시기는 채병덕이 정하지 않았음.

ㆍ명령을 내린 주체가 신성모 장관 또는 장경근 차관이었다는 증언들이 있음.


4) "청년 200만을 소집하면 알아서 북한군을 격퇴해 줄 것이다!"라는 헛소리를 하다가 해임되었다.

ㆍ서울을 잃고도 이런 한심한 태도를 본 맥아더가 해임시켰다는 게 가장 유명한 일화인데... 정반대의 증언도 많아서 의문임.

ㆍ미군 고문단장이자 '한국군의 아버지'란 별명을 가진 James Harry Hausman은 채병덕이 서울에서의 마지막 회의 후, 권총을 노려보고 있던 모습이 걱정되서 돌아와봤더니 채병덕이 그 상태로 있길래 그를 데리고 서울을 탈출함.

ㆍ해임 후, 후임인 정일권이 그 소식을 전하러 갔는데 채병덕이 눈물을 흘리면서 "자네라면 믿을 수 있지... 총장 각하! 이제 제가 잘 보좌하겠습니다."라고 함.


ㆍ신성모 장관에게 "서울을 잃은 것은 귀관 책임이니 죽음으로 속죄해야 한다."고 욕 먹고, 영남편선관구사령관이 되었는데... 고작 100여 명을 배속받아 최전선에 투입됨.

ㆍ하동 전투에서 탐색조로 나섰다가 북한군의 총격으로 중상을 입었고, 죽기 직전에 전속 부관인 이상국한테 "(신성모) 장관님께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김.


이외에도 광복 직후 일본군 조병창을 최대한 보존해서 한국군 창설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고, 일본 육사 출신임에도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동의로 육군참모총장이 된 일화들을 보면...

전시에 과분한 직위를 맡은 것이 개인에게도, 국가 전체에도 큰 불행이었지만 무책임하고 나쁜 인간이었다는 비판은 과한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