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형 꼭지점마다 당인 조선혁명당, 정인 국민부, 군인 조선혁명군을 상징함)
당시 조선혁명군 소위로 있었던 계기화 선생에 회고에 의하면
《1927년경부터 양세봉장군(梁世奉將軍)이 자기(自己)휘하에 중국인(中國人) 심복(心腹)(엽장명(葉長命))외(外) 일명(一名)을 조혁군(朝革軍)으로 고용하여 중국인(中國人)이여야 해결이 용이한 사건(事件)이면 이들을 시켰는데,
당시(當時) 통화(通化) 일경(日警)놈들이 일용품(日用品)을 구입하려 입성(入城)하는 농민(農民)들을 이놈들 독립군놈들께 돈 얼마씩이나 주었느냐면서 욕설과 구타를 자행한다는 말을 듣고
이들 중국인(中國人)을 보내여서 영사관(領事館) 대문(大門)에 모여서 지꺼리는 문모(文某)순사 외 이명(二名)을 사살하고 전단을 뿌려 앞으로 계속하여 촌민을 괴롭히면 한 놈도 남기지 않겠다고 하여 기후(其後)로는 놈들이 거리에 함부로 나돌지 않엇다고 하였음. 》
요약 : 한인들이 독립군 지원한다고 일본경찰이 한인들 괴롭혔는데 그걸 알게된 양세봉이 빡쳐서 친한 중국인들 보내서 일본경찰 몇명 조지고 더 괴롭히면 완전히 조지겠다는 포고문 뿌리자 일본경찰의 괴롭힘이 사라졌다는 글임
이와 같이 양세봉은 민심에 신경쓰던 독립군 대장이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흉작이 생기면 빈민구휼을 하기도 하고, 위와 같이 한인을 괴롭히는 작자들을 보면 조지기도 하고 그랬음
그 이유가 자기가 소작농 출신이여서 그런걸수도 있고 민심이 하늘이라고 생각한걸수도 있음
아무튼 계기화의 회고에 양세봉의 인간적인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몇개 적어보것음
《다른 일반인(一般人)이 불응(不應)하기 때문에 강제(强制)할 수 없기에 별수없이 소원(踈遠)하여지는 것은 자연(自然)이지 인심(人心)이 나빠서 그러는 것은 아니니 우리에게 불친절(不親切)하게 군다고 하여서 일반인(一般人)을 압박하여서는 않되며 우리는 먹으나 굶으나 즐거우나 괴로우나 조국(祖國)을 위(爲)하여 죽으러 나온 몸으로 죽으면서 죽어서 욕먹을 필요가 없지 않으냐? 아무리 하여도 죽는 몸이니 말이다, 이러한 마음만 먹으면 괴로우나 죽으나 무서울 것이 없으며 목적은 원수를 한 놈이라도 더 죽이고 잡는 것이 지상(至上)의 원(願)일뿐이다. 》
일본군경한테 쫓기고 있을때 양세봉이 사람들이 우릴 도와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강제로 빼앗거나 하면 안되고 원수를 한 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고 이 회고를 쓴 당시 소위였던 계기화한테 한 소리
《양세봉(梁世奉)의 침착하고 강의한 성격, 아무리 불리(不利)한 역경의 전투에서도 패(敗)해본 일이 없는 군신(軍神)이 있고,...》
조선혁명군 병사가 양세봉에 대한 평가고, 그당시 사람들이 양세봉이 암살당하자 슬퍼했다고 할 정도로 인망있었고, 만주에서의 마지막 민족주의 독립군을 이끌던 사람으로써 뭐 하나 욕할거 없는 대단한 사람이라 할수있음
마지막으로 양세봉이 이끌었던 조선혁명군은 민족주의계열 독립군으로써 10여년동안 일본군과 싸웠는데 이걸 잘 기억 못하고 김일성이 만들었다던 가공의 조직 조선인민혁명군이랑 헷갈려서 조선인민혁명군 이야기 하는 양반들도 있던데 군붕이들은 안그러겠지만 그래도 헷갈리지 않았음함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