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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 photo 뉴시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등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특히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420만명이나 받아들이는 한편 우크라이나를 위한 사실상의 병참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폴란드와 러시아 두 나라 지도자들의 가시 돋친 설전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지도자들과 언론들은 폴란드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는 등 맹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며 강경대응을 선도하는 중이다. 두 나라 비방전의 직접적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이지만 바탕에는 500년간 이어진 대립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병참기지 역할 하는 폴란드


러시아와 폴란드의 뿌리 깊은 갈등이 담긴 기념물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 있다. 러시아의 상징으로 통하는 성바실리성당 앞에 설치된 미닌과 포자르스키 기념상이다. 나폴레옹의 침략을 앞둔 1812년에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폴란드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기 위하여 이 동상의 제작을 명했다.


폴란드는 16~17세기 동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구성하여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배하는 등 황금기를 구가하였다. 폴란드는 현재의 리투아니아와 수도 키이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러시아에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반면 러시아는 이반 4세(1530~1584) 사망 이후 혼란이 지속됐다. 이반뇌제라고도 불린 이반 4세는 스스로를 차르라고 칭한 첫 인물이다.


그는 모스크바공화국이 조공하던 카잔의 킵차크한국을 정복하는 등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지만 전제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귀족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이반 4세는 아들을 말다툼 끝에 살해하여 루리크 왕조의 대를 끊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모스크바 귀족들은 이반 4세의 경호대장인 타타르 출신의 보리스 고두노프(1551~1605)를 차르로 옹립하였다. 고두노프 이후 그 아들이 차르 표도르 2세(1589~1605)가 되었다. 당시 모스크바의 귀족들 사이에서는 타타르 출신인 고두노프와 표도르 2세에 대한 반발도 심했다.


표도르 2세가 차르가 되자 이반 4세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는 드미트리가 나타나 차르 자리를 내놓으라고 선언한다. 폴란드의 지원을 받은 드미트리와 귀족들은 표도르 2세를 살해하고 드미트리를 차르로 옹립한다. 실제는 이반 4세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짜 드미트리'로 불린 새로운 차르는 가톨릭을 옹호하는 등 친폴란드 행태로 러시아인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10개월 만인 1606년 귀족인 바실리 슈이스키가 동원한 병력이 크렘린을 습격하였다. 창밖으로 달아나다 다리가 부러진 드미트리는 살해당했다. 러시아인들은 가짜 드미트리의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유골은 크렘린 성벽 위에 있는 대포에 장전하여 폴란드 방향으로 발포하였다. 드미트리를 경호하던 폴란드 병력 500여명도 살해되었다.


이후 폴란드는 러시아를 침공하여 한때 모스크바를 장악하였고, 러시아 귀족들의 요청으로 폴란드 지휘관이 차르에 즉위한 적도 있었다.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열세에 몰린 러시아인들은 니즈니노브고로드를 지배하고 있던 포자르스키 대공에게 폴란드와의 전쟁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포자르스키는 상인 쿠즈마 미닌의 도움을 받으며 폴란드와의 전쟁에 승리하여 1612년에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포자르스키는 이후 로마노프 왕가를 옹립했고 러시아인들에게는 구국의 영웅으로 통한다





러시아에 세워진 친폴란드 정권


현재 붉은광장에 있는 미닌과 포자르스키 동상은 러시아제국 시절인 1812년 제작되었다. 1812년은 포자르스키 대공이 러시아에서 폴란드군을 몰아낸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국난에 처한 차르 알렉산드르 1세는 폴란드에 대한 적개심과 승리의 역사를 되새겨 국민들의 애국심과 헌신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에서 이 동상의 제작을 명했다. 상부에 오른손을 펼치고 서 있는 동상이 미닌의 상이고, 앉아 있는 동상이 포자르스키의 상이다. 하단부 전면에는 전비 마련을 위하여 귀중품을 바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새긴 부조가 있다.


미국의 명배우 율 브리너가 열연했던 영화 '대장 부리바'(1962)도 폴란드와 러시아의 적대사가 가장 중요한 사건의 배경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고골의 소설은 17세기에 폴란드에 저항한 코사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자포리자의 코사크 지도자인 주인공 부리바는 두 아들을 폴란드가 지배하던 키이우의 대학에 유학보낸다. 방면된 농노들이 주축이 된 코사크는 정치적으로 자치를 유지하면서 폴란드에 복종하며 살았다.


그런데 자포리자의 코사크는 보흐단 흐멜니츠키(1595~1657)의 지도하에 폴란드에 반란을 일으켰고 흐멜니츠키는 1654년 러시아 차르에 충성맹세를 하는 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우크라이나 중동부는 러시아제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러시아제국은 유럽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이후 코사크 병사들은 러시아제국의 가장 강력한 군사력이 되어 제국의 팽창과 차르의 보위에 선봉 역할을 맡게 된다. 자포리자 코사크의 후손들은 지금은 푸틴의 러시아에 결사저항하고 있다.


흐멜니츠키에 대한 평가는 나라마다 다르다. 러시아에서는 역사적 영웅이지만, 폴란드에서는 정반대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잃은 폴란드는 종말로 치닫게 된다. 18세기 말 프러시아가 대두하면서 폴란드는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등으로 3분되고 국권을 잃게 된다. 이후 폴란드인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줄기차게 싸웠다. 미국 독립전쟁에도 참가해 미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기도 했다. 1차대전 당시에는 폴란드인 200만명이 연합국 편으로 참전하여 45만명이나 전사하였다. 덕분에 1918년에 독립한 폴란드는 소련과의 전쟁에서도 대승을 거두며 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라루스 등 이전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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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카틴에서 학살한 폴란드군의 시신들. photo 위키피디아





소련이 학살한 폴란드 장교 2만2000명


그런데 1939년 8월 히틀러의 나치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폴란드 분할을 내용으로 하는 비밀 협정인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9월 1일에는 독일이, 9월 17일에는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두 나라가 분할점령한 끝에 다시 폴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진다. 소련은 점령 직후 폴란드군 장교 2만2000여명을 학살하는 이른바 '카틴학살'이라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분개한 폴란드 국민들은 2차대전 중 연합국 편에서 투쟁하며 무려 600만명이 사망하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2차대전 후 폴란드는 독립하게 되었지만 스탈린이 일방적으로 국경을 오데르·나이세강으로 정하면서 영토의 20%를 상실하였다. 폴란드인들은 공산정권에 저항하는 반소련 투쟁을 줄기차게 벌여왔다.


결국 1980년대 자유노조와 가톨릭교회 등이 주도하는 전 국민적 반소련 투쟁이 벌어졌으며, 1990년에는 자유노조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소련의 지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폴란드의 자유화운동은 동유럽에 신속하게 전파되어 소련의 영향력이 소멸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폴란드는 1999년에 나토, 2003년에 유럽연합(EU)에 차례로 가입하였다. 2015년부터 집권한 법과 정 의당은 낙태나 동성애 등에 반대하여 EU로부터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그러나 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중세 이후 러시아가 폴란드와 싸우면서 제국으로 성장해 왔다면, 폴란드는 러시아와의 싸움에 패하면서 유럽의 강대국 지위와 국권을 상실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두 차례나 독일과 러시아에 분할 점령되면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폴란드는 러시아와 독일의 관계에 늘 의심의 눈초리를 감추지 못한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발트해를 지나 독일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승인했을 때도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푸틴의 체면을 살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화기 지원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그러자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은 지난 6월 9일 독일 일간지 빌트와의 회견에서 숄츠와 마크롱이 "푸틴과 대화를 하는 것에 경악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푸틴과의) 대화는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며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군대가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해줄 뿐이다. 푸틴은 책임져야 한다.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푸틴이다.… 2차대전 중에 아돌프 히틀러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 사람이 있었나? 히틀러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고 한 사람이 있었나? 히틀러가 경멸당하지 않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한 사람이 있었나? 나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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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성바실리성당 앞에 있는 미닌과 포자르스키 기념상. 알렉산드르 1세가 폴란드에 대한 적개심을 북돋우기 위해 제작을 명했다. photo 우태영






두다 폴란드 대통령의 격분


그는 이어 "우리는 러시아 제국주의를 멈추기 위해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가능한 한 모든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 우리의 최대 희망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이빨이 우크라이나에서 부서지는 것이다. 그 사이에 우리는 아주 강력해져서 러시아가 우리를 침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방어하여 자유로운 주권국가가 되도록 하는 일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숄츠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와 핵전쟁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계심을 표한 데 대해서도 "우리가 러시아의 핵무기를 두려워한다면 지금 당장 모두 다 항복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푸틴이 러시아의 세력권이 포르투갈, 즉 대서양까지 확대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핵무기를 투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두려움에 떨며 푸틴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나? 푸틴의 핵무기가 두려워서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두다는 이어 "러시아의 공갈을 두려워한다면 재 앙이 일어날 것이다. 러시아의 위협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우리를 협박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문이 조금만 열리면 발을 들여놓고,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 든다. 이게 내가 유럽과 외국 정상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내용이다"라고 했다.


러시아도 폴란드를 상대로 비난전을 가중하고 있다. 지난 5월 9일 폴란드에서 열린 2차대전 기념행사에 참석한 러시아 대사가 붉은 물감 공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소련의 승전 행사를 비판하는 행위는 푸틴에게는 정권의 존립을 부정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당시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먼저 "폴란드가 러시아에 대한 위협의 원천"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에서 이인자로 평가되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안보위원회 서기도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서부를 차지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폴란드의 야망 맹비난하는 러시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협상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도 지난 6월 17일 "폴란드는 항상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러시아 영토를 차지하려 하였으며 가끔 성공하였다"며 "현재 폴란드가 취하는 행동은 폴란드·리투아니아연방, 발트해와 흑해라는 바다와 바다를 연결하는 대(大)폴란드로의 복원 열망을 웅변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도 두다가 "우크라이나 서부 영토에 대한 요구를 공식화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검찰국은 지난 6월 18일 두다 대통령의 할아버지가 2차대전 중 나치에 협력했다며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2015년부터 그의 할아버지 미하일 두다가 나치와 협력하여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두다 대통령은 자신의 할아버지 이름은 알로이지 두다이며 재단사로 일하다 1992년에 사망했다고 공개반박한 바 있다.


미국 카터 행정부 당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소련의 압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폴란드 외 교관의 후손이다. 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추진하던 소련과의 데탕트(화해) 정책을 폐기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을 상대로 투쟁하던 이슬람전사들을 지원하였다. 이 때문에 소련 붕괴의 단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브레진스키는 1994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없으면 제국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복속시키면 러시아는 자동적으로 제국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고 주장했다.


푸틴의 다음 타깃이 폴란드라고 많은 학자들이 전망하고 있고 폴란드인들 역시 쓰라린 경험을 통해 이를 직감하는 듯하다.


마리우슈 부아쉬착 폴란드 국방장관은 지난 6월 15일 나토회원국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하여 "폴란드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이 폴란드의 독립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정복한다면 거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의 목표는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부아쉬착 국방장관은 "폴란드는 실제억지력(Real deterrence potential)을 구축해야 한다"며 군병력을 30만명으로, 국방예산을 GDP(국내총생산)의 3%까지 각각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5월 30일에는 한국을 방문하여 이종섭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두 나라 간 국방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태영 자유기고가 wootaiyou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