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조선의 외교관계와 근대 일본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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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정한론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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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진출논리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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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 대조선 정책의 변화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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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선을 통해 본 청일전쟁 이전의 일본 위정자의 의견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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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쓰다만 일본 국민에게 펼친 여론전에 관한 고찰이다. 그리고 청일전쟁부분은 연재안할거임 전쟁관련은 솔직히 나보다 니들이 더 잘알자너
내가 저번글에서 이익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지? 근데 이건 엄연히 일본 고위층에서만 통하던 이야기였지 민중들에게는 전혀 전달되지 않은 이야기였다고
특히 위정자들은 조선이 중립국의 의무를 다하지 못할거라고 했는데, 당시 중립국의 의무가 무엇인지 한번 보자.
1. 용인의 의무 : 중립국의 해상교통을 교전국이 봉쇄하거나 선박을 해상포획하는 경우, 중립국은 그것을 용인해야한다. 요컨대 전쟁난 곳에는 얼쩡거리지 말라는거
2. 회피의 의무 : 중립국이 교전국에게 군사원조를 해선 안되며 공채를 보증해서도 안된다. 그런데 미국같이 존나 쎄면 조까고 독일 족치더라
3. 방지의 의무 : 중립국의 영역을 중립국 스스로가 실력을 갖고 방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일본 위정자들은 조선이 방지의 의무를 스스로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어. 실제로 조선정부는 일본과 청이 자국을 삼키려는 모습을 보이자 러시아에게 관심을 표하기도 했지. 또한 이 때, 동아시아 정계에서 영흥만을 러시아에게 조차한다는 찌라시가 돌면서 청일양국은 상당히 쫄게되지. 이후에 임오군란이 끝나고 청은 청대로 이홍장이 조선전권을 가지며 조선정부에 대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어.
일본측에서는 조선이 누구과의 속국이 된다면 다음 차례는 자신일 수 있다는 피해망상에 깊이 빠져있었어. 그게 이익선인거고. 그래서 일본정부에서는 해군력을 증강시킬 수 밖에 없었는데, 1891년 일본에 기항한 적이 있는 북양함대 기함 정원과 자매함 진원의 해군력을 보고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 따라서 매년 30만 엔을 군함 건조비로 돌리면서 6개년 계획을 잡아두지.
자 일본입장에서는 청이 조선을 집어삼키기 전에 전쟁구실을 만들어서 어떻게든 전쟁을 일으켜야해. 근데 고대시대부터 현대시대까지 유구하게 내려온 전통이 필요하자너? 바로 명분이 없던거야. 어차피 청 입장에서는 시간만 줄줄 끌면 조선이 자신 손아귀로 들어오는데 굳이 뭔가 할 필요가 없었지.
그런데 조선에서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터지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하지. 3월에 터진 농민운동은 5월말에 전주성을 함락하면서 조선정부에서는 청에게 군사파견을 요청하였고, 톈진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역시 군대를 함께 파병하게 되지. 이후에 동학농민운동은 두들겨 맞고 끝나는거까지는 교과서에서 배웠으니 언급할 필요가 없을거고
여기서 일본은 청에게 조선정부가 스스로 개혁의 여지가 없으니 함께 공동개혁을 제안하는데 그 내용을 보면,
1. 청일 양국 상설위원 설치
2. 내정개혁 보장을 위해 군대주둔
3. 재정조사, 국채모집 실시
이렇게 하는데 이는 일본입장에서는 조선이 청의 종속관계를 끊어 버리기 위해 만든 조항였어. 이에 대해 도쿄 주재 청국특명전권공사 왕봉조(汪鳳藻)는 이렇게 답변을 하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자
1. 조선은 내란이 진압되었기 때문에 청일 양국의 군대는 조선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
2. … 조선의 개혁은 그 스스로 행해야 하는 것이고, 청국조차도 그에 관해 간섭하지 않고 있다. 하물며 일본측도 … 타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3. 내란이 평정되면 군대를 철퇴하는 것이 톈진조약의 규정하는 바이다.
솔직히 일본 입장에서 조선은 독립국이다 라고 실컷 이야기하고 상설위원을 설치하자니 군대를 파병하자니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니 청 입장에서도 뭔 개소리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는게 바로 정상이지.
하지만 이러한 청측의 거절은 일본 민중에서는 간단하면서도 자명한 논리를 던져주는데, 내정개혁에 열심인 일본과 그것을 거절하는 청국이라는 매우 단순한 논리를 만들어줘. 이러한 논조가 어디까지 미쳤는지 확인해보자.
치바민보 : 1894년 7월 26일자의 논설 - … 일본은 동양 전도의 평하를 유지하기 위햇 조선을 엄연히 독립국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국정에 일대 혁신을 해야 한다는 권고를 행했지만, 청국은 이에 반하여 어디까지나 조선을 속방 보듯이 하고, 방약무인의 간섭정략을 행하면서 혁신정책을 방해한다. (이하생략)
지지신보 : 1894년 7월 29일자의 논설 - … 그들은 보통의 도리를 알지 못하고, 문명개화의 진보를 보고 이를 기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반대로 그 진보를 방해하려고 하여 무법으로 우리들에게 반대의 의사를 표명하여 사태가 어쩔 수 업이 이에 이르렀다. … 수천의 청국 병사들은 무고한 인민들로, 이들을 죽이는 것이 가엾더라도, 세계의 진보를 위해 방해물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은 …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하생략)
어때, 군붕이들이 평소에 하는 말을 이새끼들은 신문에다가 박아버리는 꼬라지를 보니 국가가 미치면 이리도 미쳐간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리하여 1894년 6월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청일전쟁이 시작되고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
하지만 승전 이후 사람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점차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이 들게 시작해. 다음번에는 청일전쟁의 종결과 러일전쟁 개시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선개추후감상
아죠시 정외과나 사학과에요?
ㄴ 아마도?
그나저나 시발 사진 두개 나오네 어떻게 지우는거야
흠... 그런데 청일-러일 전간기면 anno hideaki 내각과 야당 당수 kishimoto masashi의 대립 사건은 꼭 나오겠네요. 일본 근대사의 격전지 중 하나...
사실 청일전쟁 이전에도 내각끼리부딪쳐서 파토난적 있는데 안썼으요 갤럼들 어차피 전쟁만 보고싶자나요
내각간 갈등도 갤럼들 좋아할걸요. 전에 kubo taito 연정내각이 Obata takeshi까지 포섭하려다 실패해서 내란날뻔한 사건 념글 갔던걸로 기억.
아아니 최소 학사급 교양 가진분이 연재글을 안쓰시고 뭐하시는거죠
뭐 청일전쟁 이전에도 내각에서군함 건조비를 전액 삭감하고 중의원에서 내각탄핵 상주안도 가결되는 등 많은 일들이 있었죠. 해군에서 현재 일본의 안녕을 지킨 공적은 사쓰마와 조슈에 있다고 말하면서 내각에서 터졌거든요
근데 그것도 자세히 쓰다가 흥미롭지도 않을거 괜히 쓰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는데 나중에 시간되면 이 부분도 써보죠
시대는 다르지만 어째 Fushimi tsukasa 파벌과 Watari wataru 파벌간 대립을 연상케하네요;; 기대하고 있겠슴미다.
이런글 정말 보고싶었다. 역사교육책에서나 보이는 표면적인 이야기말고. 그 뒷편에서 무슨일들이있었는지.
ㄴ 뭐 국사시간에는 한국사만 배우니 당연히 중국 일본정치사는 안배우는게 정상이죠
머한교육 관련으로는 어쩔수가 읎어요 더 내용 넣으면 분명히 뒤쳐지는 인간 생길거고 그럼 역포자 속출할텐데 그럼 역사시간 늘리슨게 뭔소용이에요
진보의 방해물...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