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국가가 서구식 무기를 도입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1. 재정 문제.

서구 국가는 국가 경제 규모 이전에 세입 자체를 효율적으로 관리함.

반면 전근대 국가는 세입 자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뿐더러, 중간에 누수가 매우 심함.

또, 전근대 국가는 추가 재원 조달이 힘듬. 서구 국가는 금융 시장에서 채권 판매 등을 통한 재정 조달이 가능하지만, 전근대 국가는 그게 잘 안됨. 신용이 없어서 좋은 조건으로 구하기도 힘들 뿐더러, 그렇게 들여온 돈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힘듬. 정말 운이 좋은 예외(일본=그나마 재정 규모가 좀 됨)를 제외하면 베트남이나 이집트처럼 따갚되 실패하면 망하는 엔딩임.

2. 국민 개병제.

서구 국가는 국민 개병제를 통해 기본적으로 청년~장년층 전부를 자원으로 동원할 수 있음.

반면 전근대 국가는 서구 국가처럼 그물코에 잡히는 사람을 다 군대로 걷어들일 수 있는 행정력이 없음. 이런저런 이유로 다 빠지다 보니 실질적으론 모병제를 실시하는 거나 다름없음. 민족주의와 국민 국가가 탄생하기 이전이라면 상관없어도 제국주의 시대에 와서 어설픈 모병제를 굴리는 건 체급에서 상대가 안 됨. 질적으로도 국민 국가의 시민과 어설픈 그물로 대충 걷어 만든 빈민+특권층 장교로 만든 군대는 국가를 위해 싸워야 할 동기에서부터 밀림.

그렇다고 국민 개병제가 쉬운가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음.

유사 열강에서 열강으로 성장한 일본만 하더라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서구 수준의 진짜배기 국민 개병제는 흉내도 못 냈음.

국가 행정력과 세수가 안 되기 때문.

3. 장교단.

서구식 사관제도와 참모장교 전통은 짧게는 나폴레옹 전쟁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스템임. 서구 군대랑 똑같은 무기를 손에 쥔다고 해도 그걸 운용할 교리, 교리를 실천에 옮길 장교단이 없으면 제대로 쓸 수 없음.

4. 산업력.

군붕이들도 알다시피 무기는 사온다고 끝이 아님. 대포가 있으면 그걸 수리 유지할 부속이 있어야 하고, 훈련/실전용 포탄도 있어야 함. 그걸 죄다 수입으로 돌려버리면 가동률이 떡락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전시에 필요량을 팔아준다는 보장이 없음. 한데 병기창과 탄약공장을 차관 들여와서 세운다 해도 제대로 굴리려면 그 뒷배경이 될 제철소며 발전소 같은 인프라까지 다 깔려 있어야함. 전근대 국가가 그걸 다 갖추려면 중국 정도의 체급이거나 일본 정도로 돈이 많아야함.

5. 정치.

서구 국가 혹은 서구화된 국가는 기본적으로 전쟁은 제복 입은 전문가에게 위임한다는 원칙에 동의했음. 전쟁 중에 정치적 요구에 따라 무리한 공세 같은 걸 요구할 순 있어도 턱도 안 되는 이유로 장군을 갈아치우거나 하진 않음. 전근대 국가는 이게 안 됨. 전투에 패해서 후퇴한다? 서구에선 문책이 있을 순 있어도 그걸로 총살까지 가진 않음. 한데 전근대 국가에선 책임을 물어 사형을 때릴 수도 있음. 이런 리스크 때문에 정치의 간섭이 매우 심함.

6. 외교.

전근대 국가는 서구식 근대 외교에서 대화 상대로 인정받지 못함. 열강의 위협을 받을 때 다른 열강의 도움을 받는다? 그거도 쉽지 않은게 그 다른 열강은 '약소국'하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할 바에 격이 맞는 자기 적수하고 대화하고 약소국을 '분할'하는 쪽을 선호함. 그러니 무기 도입, 기술 도입, 차관 도입, 군사고문단 도입, 이 모든 단계마다 일이 뒤틀릴 가능성이 매우 높음.

7. 기술 발전 문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제국주의 시대는 이전 시대에 비해 무기 테크가 엄청나게 빨리 발전했음. 장갑함이 장갑순양함, 전노급 전함, 드레드노트로 변할 만큼 상전벽해하는 시대인데, 기껏 투자해서 서구랑 동등한 무기를 갖춰도 딱 한 세대가 지나면 퇴물이 됨. 결국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마다 막대한 돈을 붓다보면 국가가 못 견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