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軍)이 역수(易水) 북쪽에 주둔하자 흉노(虜)가 기병을 복병으로 두었다가 공격하니 군인들이 요란해져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전예가 지형에 의거하여 수레로 둘러싸 둥근 진을 치고 그 안에서 (군사들이) 궁노(弓弩)를 가득 당기고 의병(疑兵)들을 그 틈에 채워두었다. 호(胡)가 진격하지 못하고 흩어져 물러나자 이를 뒤쫓으며 공격해 대파하고 마침내 대(代)를 평정하였으니 이는 모두 전예의 계책(덕분)이었다.


- 조창과 함께 싸운 전예 기록


조창은 북정하여 탁군(涿郡)의 경계지역으로 들어갔는데, 반역한 오랑캐(胡) 수천 기병이 갑자기 왔다. 당시 병마는 아직 집결하지 않았고 오직 보병 천명과 기병 수백 명만 있었다. 조창이 전예(田豫)의 계책을 사용하여 요새를 튼튼히 지켰으므로 적은 곧 퇴각하여 흩어졌다. 조창은 적을 추격하면서 오랑캐를 활로 쏘았는데, 활 시위에 호응하여 거꾸러지는 자가 앞뒤로 서로 이어졌다. 싸움은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는데, 조창의 갑옷에 몇 대의 화살이 맞았지만 투지는 오히려 더욱 앙양되었다. 승기를 잡아 적을 추격하여 상건현(桑乾)까지 갔을 때는,[주1] 군으로부터 2백여 리나 떨어져 있었다.


- 조창쪽 기록





특히 기병 상대로 수레 간이용 성벽으로 쓰는 건 종종 수렴진화하는듯 ㅇㅇ


수레가 비싸고 불편한 물건만 아니었으면 다들 이걸로 야전축성하고 놀았을텐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