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름의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정도 있음.

히틀러가 2차대전을 수행하면서 물량전, 소모전으로 흘러갈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염두하고 NSDAP와의 밀약, 유태인 박해 등을 등에 업고 성장한 중화학 공업 콘체른들의 파이를 키워주려고 함.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경상도엔 꼴데화학, 충청도엔 휸다이자동차, 경기도에는 샘숭바이오 같은 식으로 중화학 콘체른들을 위한 대단위 공단을 조성하도록 헸음. 신설 공단을 통해 각종 군수물자를 생산해서 전선으로 보낼 건 당연지사.

비슷한 사례가 독소전쟁인데 히틀러는 일관되게 우크라이나와 아제르바이잔을 탐냈음. 전자는 식량, 석탄, 철광석 산지이고 후자는 석유 산지임. 이걸 잡아야 독일 전쟁 수행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음.



2. 즉흥적으로 결정을 하기도 했음.

대표적인 게 1939년 폴란드 전역 개전임. 독일이 사실 1933년부터 차근차근 전쟁 준비를 하긴 했는데 완전히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없는 상태였음. 그래서 단치히 회랑의 독일령화를 무리하게 요구하며 폴란드를 도발하면서 이번에도 영국과 프랑스는 두고 볼거라며 근거없는 희망회로만 돌리다 결국 자기 50번째 생일을 기념하며 단치히를 넘어 바르샤바까지 가게 됨.

1940년도 비슷함. 만슈타인이 어거지로 히틀러와 독대해서 낫질 작전 계획서(그것도 완성 안된 초안 수준의 계획서)를 들고 갔을 때 내심 프란츠 할더가 제출한 슐리펜 계획 복붙판 보고 미음에 들지 않다가 만슈타인의 펀쿨섹한 계획을 듣고 요시 그란도 시즌을 외치며 기존 작전 계획을 엎어버림.

(물론 위 사건엔 1939년에 일어난 독일 참모장교의 네덜란드 불시착 사건도 영향이 있었지만)



3. 일단 말은 꺼냈는게 게임을 던지다시피한 것도 있음.

1943년 성채 작전을 계획하면서 일단 쿠르스크 돌출부를 절단하자는 건 정했는데 작전술적 목표는 정했지만 전략 목표는 모호한 요상한 작전안이 나오게 됨. 독일군이 한판 싸움 벌이자고 원기옥은 모으는데 영 지지부진하니까 계속 작전 개시일은 연기하면서 “이 거 생각하면 머리가 아픈데 다른 대안이 없음.”이란 말만 되풀이함.

그래서 쿠르스크 전투 전체를 봤을 때 히틀러가 뱉은 중요한 말이란 게 작전 개시, 작전 중지, 후퇴 금지 밖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