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미외1교
주지하듯 미국은 먼로주의를 표방,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 열강의 간섭을 매우 싫어했음.
대표적으로 프랑스가 멕시코에 개입, 멕시코 제국을 세우자 바로 보복 조치에 들어간 바 있음.
한데, 불철주야 독일을 말아먹기 위해 태어난 팔병신은 미국이 싫어할 짓을 하나도 아니고 셋씩이나 저지름.
1) 멕시코 내전 개입(1914.7)
미국 안마당인 멕시코에 무기를 실은 수송선을 보내 내전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함.
2) 베네수엘라 무력 개입(1902~3)
베네수엘라가 자국 내 독일 자산을 몰수하자, 영국과 연합해 무력으로 침공 위협을 가함.
보통 국가면 경제 제재와 협상부터 하겠지만, 팔병신은 그런 하남자스러운 접근법은 쓰지 않음.
3) 미서전쟁 중 스페인령 동인도를 놓고 벌인 경쟁(1898)
팔병신은 독일 국민 및 재산 보호를 명분으로 함대를 파견해 마닐라 만을 봉쇄하던 조지 듀이 제독의 미국 함대와 대치함으로서, 자기네가 미국을 적대하고 있다는 걸 물리적인 차원에서 증명.
번외) 팔병신은 3차례에 걸쳐 미국 침공 계획을 세웠다가 1906년에 철회한다.
2. 대영외1교
영국은 흔히 위대한 고립으로 일컬어지는 고립주의 외1교를 관철해왔음.
한편으론 독일계 왕가 간의 친밀함과 프리드리히 대왕 이래의 우호관계로 독일과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았음.
빅토리아 여왕이 손자인 팔병신을 위해 킬리만자로 산을 선물하고, 전략적 요충지인 헬골란트 섬을 잔지바르와 교환해준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행위.
그럼에도 팔병신은 불철주야 대영관계를 망가트리기 위해 몸소 헌신함.
1) 보어 전쟁 개입.
보어 전쟁은 영국이 45만 대군을 투입해 숫자로 짓누르고 수용소에 민간인들을 집어넣는 짓거리를 해야할 만큼 고전했던 전쟁임.
한데 팔병신은 이런 와중에 보어인들이 베를린에서 채권을 팔 수 있게 해주고, 보어 군대가 승리하자 공화국 대통령 크루소에게 축하 전보까지 보냄.
영국이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러시아를 대화 상대로 생각하게 된 것도 이 짓거리를 봐서임.
2) 함대법.
세계 2위의 상선단을 거느린 독일이 그에 걸맞는 해군력을 건설하는 건 사실 상식적인 행동이었음.
어쨌거나 위의 사례에서 보듯 독일도 약소국한테 자산 압류 걸리는 일이 생겼기 때문.
하지만 함대 건설의 목표를 뻔히 '대영제국 추월'이라고 내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
당연하지만 이런 말을 정부 당국이 공공연하게 떠들면 영국으로선 독일을 위협적인 가상적국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음.
그럼에도 영국은 독일이 자기 지위에 어울리는 해군력을 가지는 것에 대해 타협할 생각도 있었고, 협상도 제안했지만, 팔병신은 이를 거절함.
이유는 조금만 더 군비경쟁하면 영국 놈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져서 좋은 조건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해서.
3) 중국에 대한 무자비한 세력 확장 시도.
중국 시장에 독점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던 영국은 현상 유지를 원하는 국가였음.
독일은 그딴 것 없이 선교사 살해를 구실로, 키아우초우를 점령해 중국 분할의 신호탄을 쏘아올림.
이어 의화단 운동 진압을 구실로, 사건이 다 종료된 후에 2만의 독일군을 보내 화북 전체를 휩쓸고 다니며 청나라에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했음.
당연하지만, 이딴 짓거리가 영국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이때 팔병신이 다시는 중국인이 독일인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게 하라는 유명한 '훈족 연설'을 했는데, 이게 독일이 서방에서 훈족으로 통하게 된 계기가 됨.
번외) 팔병신은 삼촌인 에드워드 7세에게 사탄이라는 패드립을 치고 독일인은 반영이지만 자기는 친영이라는 이해 안가는 말도 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사건에선 영국인은 미쳤다, 미쳤다 라는 발언을 하기도.
4)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지원.
러시아와 동맹인 프랑스는 러시아를 도울 명목이 있었지만, 독일은 그딴 것도 없음.
영국이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었지만, 팔병신이 그딴 걸 알빠노.
러시아 채권 풀매수.
3. 대불외1교.
비스마르크 시대 독일은 프랑스를 외1교적으로 고립시키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프랑스가 유럽 바깥으로 관심을 돌리도록 식민지 획득을 방해하지 않았음.
대표적으로 비스마르크는 청불전쟁 당시 정원과 진원을 전쟁 중 청에 양도하지 말아달라는 프랑스 정부의 부탁을 받아들였음.
이건 지정학적으로 유럽 중앙에 위치한 독일의 안보를 위한, 상식적인 인식임.
하지만 팔병신이 그런 거 알빠노.
1) 모로코 위기.
1~2차 모로코 위기는 흔히 알려진 거와 달리 독일에 명분이 없진 않았음.
1890년에 모로코와 무1역조약도 체결하고 모로코의 국제은행에 지분도 갖고 있으며, 모로코 술탄으로부터 주권을 지켜달라는 요청까지 받았으니 명분으로만 치면 독일이 프랑스에 꿀릴 게 전혀 없었음.
그럼에도 모로코 위기에서 독일이 좆박은 이유는, 팔병신이 배타고 여행와서 즉흥적으로 일을 벌였기 때문.
팔병신은 물밑에서 사전교섭해서 판을 만드는 게 아니라 대뜸 독일이 모로코의 주권을 보호하겠다고 나왔음.
여기에 프랑스가 반발하자 독일은 동원령을 내려 예비군을 동원하고 군함을 보냈음.
당대 국가들 시각에 먼저 시비털어놓고 일이 뜻대로 안 풀리니 힘으로 해결해보자고 나오는 새끼가 문명인으로 보일 리가.
이걸로 독일은 국제 외1교무대에서 병먹금 취급당하게 됨.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보불전쟁의 앙금에 위협까지 받자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됨.
2) 국경선 드립.
팔병신은 독일은 인구가 많고, 프랑스는 인구가 적으니 국경선을 서쪽으로 옮기면 어떻겠느냐는 드립을 쳤다.
당연한 얘기지만, 독일 국가원수인 팔병신의 드립을 가볍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4. 대 이탈리아 외1교
이탈리아는 보오전쟁을 치르던 시절부터 동맹을 유지해온 국가였고, 이탈리아인이 상당히 거주하던 튀니지를 프랑스가 무력으로 침공한 관계로 '미수복 이탈리아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동맹이 유지될 여지는 충분히 있었음.
하지만 팔병신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이탈리아는 프랑스와 밀약을 맺고 동맹에서 이탈해버림.
1)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물밑 교섭을 수수방관
프랑스의 이탈리아에 대한 접근은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이뤄진 일이 아님.
프랑스는 1892년에 이탈리아와 밀약을 맺어 독-이 동맹을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1902년에는 삼국동맹이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이탈리아가 동맹 측에서 싸우지 않을 것을 보장받았음.
그럼 이런 정황을 눈치채는 게 불가능했느냐?
아님.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확보를 지원했고, 관세 문제를 우호적으로 처리해주는 등 뭔가 이뤄지고 있다는 뉘앙스를 끊임없이 풍겼음.
팔병신은 이 중요한 시간에(1890) 요트타고 로마에 와서 제대로 의전하라고 뜬금없이 갑질 시전하면서 깽판이나 침.
2) 동맹 간의 조율 실패
팔병신은 동맹국 간의 의견 정리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음.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합병이 삼국동맹과 러시아 간의 전쟁을 부를 수 있음에도, 이 문제에 관해 로마에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음.
거꾸로 이탈리아가 도데카니사 제도를 점령했을 때는 오스트리아-헝가리가 강한 불만을 드러냈는데, 여기에도 중재를 신경쓰지 않음.
이렇듯 동맹 간에 정보 공유나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다 보니 로마 입장에선 독-오가 같은 게르만끼리는 도우면서 자기들은 동맹 취급도 안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음.
3) 1차 에티오피아 전쟁(1895)
이탈리아는 동아프리카에서의 식민제국 확장을 노렸는데, 이러한 행동은 러시아의 견제를 받았음(뜬금없지만 러시아도 이 지역을 탐냈음).
러시아는 대포 등 무기를 지원했고, 결과적으로 이탈리아는 패했음.
문제는 이 뒷수습을 영국과 프랑스가 중재해줬단 거임.
당시 에티오피아에 독일이 가진 영향력을 고려하면, 독일이 더 깔끔하게 해줄 수 있는 문제였지만 안 했음.
이유는 간단한데, 팔병신은 자기 땅 1센티미터 더 늘리는 데 신경쓰기 바빠서임.
러시아는 재보장 조약 거부한 것부터 너무 유명하니 생략!
3줄 요약)
팔병신은 비교적 친밀하거나 우호적인 국가간 관계를 씹창내는 데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팔병신은 독일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에 관심이 없었다.
팔병신은 존재 자체로 독일에 재1앙이었다.
저새낀 진짜 가오만 잡는 병신임 ㅋㅋ
그것이 팔병신의 아이덴티티
저거 콘으로 보니 수염 쥐뜯어버리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