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짤은 압록강 수풍발전소임.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였음.
사실 이 사건이 일어난 1948년에는 38선 이북에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있었고, 이남은 아직 미군정일 때라 양쪽 모두 남북한 공식 정부가 수립하기 전임.
하지만 편의상 이하 모두 남북한으로 서술하겠음.
"약정된 남한송전요금을 미군측이 청산하지 않으므로 대남 송전을
단전코자 한다. 동족끼리 해결할 의사가 있으면 곧 평양으로 오라"
1948년 5월 14일 오전 10시 반, 북한 전기총국장 이문환이 남한의 조선전업주식회사 사장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내용임.
우리 측은 단전 보류를 요청했지만 북한은 약 1시간 반 뒤인 12시 정각에 일방적으로 전기를 끊어버림.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왜 북한은 뜬금없이 전기를 끊어버리겠다고 지랄하고 남한은 그러지 말라고 빌어야 했을까?
남한 쪽 전기는 다 어디가고 북한제 전기를 우린 왜 받아쓰고 있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광복 전으로 가봐야함.
중일전쟁으로 한반도는 일본 제국에게 값싼 노동력과 수력자원, 그리고 지하자원의 보고가 됨.
그에따라, 상대적으로 자원이 풍부했던 한반도 북부 지역의 전기 수요가 늘어났고, 조선총독부는 그런 수요에 맞춰 북부에 주로 전력 생산 시설을 건설함.
특히나 수풍댐과 같은 대형 수력발전 설비는 전부 이북에 몰려있었는데, 이게 어느정도나 되었냐면 해방 당시 한반도 발전 설비의 88%가 이북에 있었음.
발전량으로 비교하면 더 암울했는데, 무려 한반도 전력 발전량의 96%가 북한의 것이었음.
해방 직후, 남북한은 10만kW급 전력협상을 체결함.
북한은 평양~수색발전소간(서울선) 154kV 송전선으로 남한에 전기를 공급하고, 남한은 북한측 열차에 구리와 고무, 전구, 케이블 등으로 전기료를 지불함.
또 서울선 외에도 화천에서 부평으로 이어지는 한강선으로도 전기를 공급받았다고함.
하지만 북한은 지들이 갑인건 알아가지고 전기료를 받아내면서도 좆같은 행패를 부리는데,
전기료로 400만 달러를 내놓으라질 않나,
당시 물가로 10억이나 되는 물자로 전기료를 치루니까, 보내겠다는 대금의 20%의 가치밖에 안된다고 하거나, 품질이 별로라고 트집을 잡질 않나,
47년 10월 2차 남북전력협상 실패 후 갑자기 설비 고장 핑계를 대면서 송전량을 5만kW 이하로 줄이겠다고 협박하더니 진짜로 1만 5천kW나 송전량을 줄이고,
48년 1월에는 전기료를 6배나 인상해버림.
이런 이북의 좆같은 갑질에도 씨발ㅠㅠ 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북한의 전기를 받아쓸 수밖에 없었던 남한은, 우선 당인리, 영월, 부산의 노후화력발전소를 응급보수함.
그리고 미국의 도움으로 부산에 2만kW급 발전함 자코나 호를, 인천에 6900kW급 발전함 일렉트라 호를 들여와 전기 소요를 어떻게든 충당하려고 했음.
그 결과는?
남한측 전기 소요량 대비 자체 발전전력량: 36.8%
발전함 공급 전력량: 7.7%
진짜 어떻게든 전기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는데, 그럼에도 북한이 보내주는 55.5%의 전력이 아니면 나라가 굴러갈 수가 없었음.
그렇게 북한의 갑질에도 꾸역꾸역 전기를 타내오던 48년 5월 10일,
모두가 잘 알듯이 총선거가 이루어짐.
남한만의 독자적인 제헌 선거이자, 남북한 분단을 기정사실화하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함.
그리고 5월 14일,
북한은 남한의 총선거에 보복이라도 하듯이 대남 송전을 완전 중단함.
그리고 그 여파는 매우 파괴적이었음.
남한의 전력 부족량은 7만에서 8만kW에 달했음.
전기를 아끼기 위해 공장들은 주야 2교대로 전환했지만, 그럼에도 생산량이 아무리 잘 방어해도 최소 50%, 최대 85%까지 급락함.
양수작업도 차질이 생겨 농업생산량도 감소함.
전력 공급 3부제가 실시되었고, 가정에는 30w 이상의 전구 사용이 금지됨.
일반 가정에도 격일제 송전이 이루어질 정도였으니 전력난의 정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을거임.
그럼 이 전력난에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단전 2시간만에 정부는 당인리 발전소를 신속히 가동시키면서 서울 시내 전차와 주요 시설에는 최소한의 전기 공급을 할 수 있었음.
정부는 배전선 정비 공사도 실시하고, 미리 보수해 예비전력으로 두었던 화력발전소들을 전력 생산 전면에 내보냈고, 소규모 수력발전소들은 관개용수 대신 발전에 총동원됨.
해방 후 미군정의 집계에 따르면 구호가 필요한 인구가 최소 200만명이었고, 쌀값도 폭등해 식량사정도 처참할 지경이었는데도 관개용수가 아니라 수력발전에 총동원을 한 것을 보면 당시 정부가 얼마나 전기에 사활을 걸었는지 알 수 있음.
또 정부는 신규 화력발전설비 건설을 추진하고, 전력사업 일원화도 추진함.
그리고 목포에 5000kW급 중유발전소도 건설해 1949년에는 전력 공급 능력이 최대 11만kW까지 늘어남.
북한의 5.14 단전 조치에 당한 초반에 비하면 그래도 숨통은 좀 돌렸다고 할 수 있음.
정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제강점기 때도 겪지 않았던 이 사태가 다신 반복되지 않도록 에너지 자립 정책을 추진하고자 함.
하지만 또 말도 안되는 개억까의 억까가 일어나면서 이 자립 정책은 시작부터 개폭망하고 마는데...
밑짤은 발전함 자코나 호임.
킹갓미군
이 글은 논문 참조 대신 언론사 기사를 종합해서 쓴 거라 사실과 다른 과장, 왜곡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음.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적 부탁함.
40년대에 발전함같은걸 만들어다니는 미국은 도대체...
자코나 호는 사실 1919년에 진수된 배임
바로 6.25때문은 아니겠지?
우리가 북한보다 잘살게 된지 생각보다 오래 안됐지 - dc App
6.25네
재미있다 - dc App
래퍼나 올려놔라 - dc App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57097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09/2010030901803.html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1994081800821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008365#home
빨갱이새끼 북한 까니까 화났노 ㅋㅋㅋㅋㅋ
나한테 올리지말고 글에 올리라고 위에있는 애미 처박살난 유동같은 년들 안나오게 ㅋㅋ - dc App
당시는 아직 북한정부이전에 소련군이 담당하고 있을때였는데, 소련측에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열받아서 전기를 끊어버림.
소련혐성 그대로온거구나 언제는 빨갱이가 국적이 상관있었나 싶긴 한데
2편! 2편?
최근 완공된 화력발전소 하나가 2기가 급이니까 저때하고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네
뒤통수를 전기로 때리다니; 나쁘넹!!!!
생각해보면 북괴는 지금까지 가난해지는 선택만 골라서 했노 ㅋㅋ 지금 가난하게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북한에 원전 지어주자, 러시아 가스 받자 씨부리는 애들은 이런 우리나라 역사는 알고 말하는걸까 ㅈㄴ 궁금하네
동족 어쩌구 아가리 털면서 이런 짓 하는 거 보면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