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8월 러시아와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독일군은 동프로이센 방어에 대해 철저히 준비돼 있었다.


그것도 20년 전에 타넨베르크 전투 시나리오를 워게임으로 만들고, 이에 대항하는 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


독일 참모장교들은 러시아군이 쳐들어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해답은 슐리펜이 남겨준 유산 안에 이미 있었다.


File:East Prussian Campaign (17—23 Aug 1914) - ru.svg

(1914.8.17~23)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었을 때, 그들은 슐리펜이 예견한 대로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지 못한 채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해왔다.


러시아군에겐 불행하게도 우1익에서 남하해온 렌넨캄프의 제 1군과 좌1익에서 북상한 삼소노프 휘하의 제 2군 사이에는 마주리안 호수를 비롯한 수많은 호수와 하천이 지리적 장애물 역할을 했으며, 호수 사이로 난 협소한 통로는 독일군이 구축한 요새에 봉쇄되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서 전선군 최고 지휘관인 질린스키는 전선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사령부에 머무른 채 상황을 낙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8월 17일에 러시아군은 슈탈루푀넨 전투에서 승리했으며, 8월 20일에는 굼비넨에서 독일군의 역습까지 물리치고 승리했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 동안 독일 8군은 패배를 거듭한 사령관 프리트비츠 대신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를 지휘관으로 맞게 된다.


File:East Prussian Campaign (23—26 Aug 1914) - ru.svg

(1914.8.23~26)


준비된 진지, 계획, 러시아군의 어설픈 공세에도 패전을 거듭하던 프리트비츠가 강판된 직후 등장한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는 우물쭈물하며 수세를 거듭하던 전임자와 달리, 슐리펜이 남겨준 경험에 근거해 공격적인 작전을 입안한다.


우회한 독일군 요새와 좋지 않은 지형으로 병참 사정이 좋지 않았던 렌넨캄프는 삼소노프에게 집중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한 독일군의 움직임을 보고 적이 후퇴하고 있다고 판단, 여유를 부리는 착오를 내렸다.


그 결과는 서쪽에서 지나치게 북상해왔던 삼소노프와 러시아 제 1군의 파멸이었다.


File:East Prussian Campaign (27—30 Aug 1914) - ru.svg

(1914.8.27~30)


아이러니한 사실은 타넨베르크에서 거둔 독일군의 대승이 서부 전선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독일 군부는 프리트비츠의 졸전으로 제 8군이 동프로이센을 방어하지 못할 것을 걱정했고, 그에 따라 마른 전투에 투입될 수 있었던 전략 예비대를 동부로 파견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예비대는 타넨베르크 전투가 끝난 후에 도착해, 다시 마른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철도에 올라타는 신세가 된다.


사실 이때 동프로이센에 증원군이 오지 않고, 8군이 승리를 거두지 못했어도 러시아군은 쾨니히스베르크에 입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유는 렌넨캄프와 삼소노프 양자 모두 병참 문제에 시달렸기 때문.

 



3줄 정리)

동프로이센은 20년 전부터 요새화와 방어계획이 진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공격자를 애먹이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조건 아래 독일 8군은 자력으로 타넨베르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8군을 믿지 못한 높으신 분들은 이 승리의 가치를 퇴색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전투는 잘하지만 전쟁은 못하는 게르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