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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좌가 가정에서 등산해 식수없는 꼭대기에 진을 쳤다가 박살나고 북벌을 다 말아먹은 걸 모르는 군붕이는 아마 없을거임.


그런데 수백 년 후 머나먼 서방에서 마속과 비슷한 짓을 한 장수가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데본의 영주 오다(Odda)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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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이킹들이 온 영국을 쑥라포밍하던 "이교도 대군세" 시절,


웨식스를 공격한 "웁바 라그나르손"과 구스룸에 맞서서


중세 영국의 아버지, 알프레드 대왕이 항전하던 시기였음.


알프레드 대왕이 치프넘에서 바이킹들한테 영혼까지 털린 후


웁바와 구스룸은 병사를 나눠, 서머싯 습지대로 역돌격한 알프레드를 양쪽에서 쌈싸먹을 생각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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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대왕은 병사를 둘로 나눠 샌드위치 꼴이 되는걸 막으려 했는데


웁바를 상대하게 된 이가 데본의 영주 오다였음.


방어를 준비하려던 오다는 준비할 새도 없이 웁바의 군세가 상륙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황급히 근처 산 꼭대기에 있는 키뉘트 요새에 진을 치게 되었음.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으니 바로 키뉘트 요새에는 식수원이 없었다는 거.


설상가상으로 데본군 대부분이 말이 병사지 군사훈련은 받아본 적도 없고, 영주님한테 얼떨결에 끌려온 농민인데 비해


웁바의 1200 바이킹들은 밥먹고 하는 짓이라곤 도끼로 인간 뚝배기 쪼개는 것뿐이던 괴물들이었으니


실로 희망이라곤 없는 상황이었음.





웁바도 웬 머저리들이 물도 없는 산에 제발로 기어들어가는 꼬라지를 보고는


꽁승 개꿀ㅋㅋㅋㅋㅋㅋ하고 키뉘트 요새를 포위하고


귀찮게 공성전 벌일 것조차 없이, 갈증을 견디다 못한 데본군이 도로 기어나오길 느긋하게 기다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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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판사판이 된 오다는 병사들에게 아그덜아 저새끼들이 어디 우리 살려줄 놈들도 아니고,


이대로 앉아서 죽느니 들이박기라도 해보자. 마음 단디들 먹으라!고 한 후에 웁바에게 무지성 야습을 걸어버림.


근데 왠걸? 웁바가 이 야습에서 끔살당함.


일설에 의하면 난리통 속에 웁바와 마주친 오다가 일기토를 떠서 썰어버렸다는 말도 있고


한 이름없는 종사가 일기토로 웁바를 조졌다는 설도 있는데


하여간 웁바가 비명횡사함으로서 혼란에 빠진 바이킹 주력군까지 덩달아 무지렁이 농민군한테


1200명 중 800여명이 죽어나가며 완전히 궤멸되는,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던 거임.





심지어 이 키뉘트 요새 전투는 잉글랜드 전쟁의 향방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버린 전투였는데


졸지에 커버할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져버린 구스룸이, 알프레드 대왕에게 에팅덤 전투에서 패배하고


바이킹들이 알프레드의 왕권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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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산에 오른 건 의외로 딱히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름.


그냥 마속이 장합이랑 일기토 떠서 이길만큼 강하지 못했던게 문제였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