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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7월 쿠르스크에서 패배한 직후, 독일군은 8월~9월 내내 무자비한 철퇴를 강요당했다.


43년 10월에는 '스탈린그라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쿠반 반도에서 버티던 제 17군이 크림반도로 철수를 감행했다.


사실 이 시점에서 독일군은 크림반도를 유지할 이유가 사라졌지만, 히틀러의 생각은 달랐다.


히틀러는 정치적으로 크림반도를 고수하는 것이 발칸 동맹국들의 이탈을 방지하는 동시에, 터키의 우호적인 중립 유지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 사단이 부족해 전선에 뚫린 구멍 막기에 여념이 없던 만슈타인 이하 남부 집단군 사령부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히틀러의 의지는 단호했고, 17군은 크림반도에 남게 됐다.


그 결과 43년 11월, 페레코프 지협 너머까지 소련군이 진격해오자 17군과 남부 집단군의 연결이 끊어졌다.


사실 육군 장성들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크림반도의 유지는 군사적으로 가치가 없진 않았다.


전략적으로 크림반도의 유지는 전진해올 붉은 공군의 공습으로부터 루마니아의 유전을 보호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흑해 함대의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었다.


외1교적으로도 독일이 흑해에서 세력을 계속해서 과시하고 있었기에 터키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추축국이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용인했다.


독일 측으로선 불행 중 다행으로 붉은 군대는 고립된 제 17군을 부차적인 목표로 간주했다.


그들은 드네프르강 요새의 잔존 구획에 매달린 채 필사적으로 돌출부를 절단하려는 만슈타인을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봤다.


어차피 붉은 군대는 17군은 내버려둬봐야 도망가지도 못하는 '자급자족하는 수용소'에 갇힌 신세라고 생각했다.


독일군도 인식은 비슷했다.


크림을 반드시 사수해야 한다는 히틀러와 달리 17군이나 A집단군은 그래야 한다는 열의가 없었다.


독일군은 41~42년의 붉은 군대처럼 크림반도에서 버틸 자신도 없었고, 그래야 할 이유도 못 느꼈다.


루마니아도 마찬가지였다.


루마니아 국가원수 안토네스쿠는 히틀러를 설득, 루마니아군을 본토 방어에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독일군 최상층이 철퇴에 동의하자 17군은 지연전을 편 다음, 세바스토폴로 철퇴, 해상으로 철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44년 4월 8일 소련군은 페레코프 지협을 건너 독일군을 타격했다.


4월 11일에는 페레코프에 이목이 집중된 틈을 타 케르치에 대규모 부대가 상륙했다.


독일군은 계획대로 세바스토폴로 철퇴를 감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자의 입장은 41~42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시의 소련군이 크림 전체를 잃고 세바스토폴에서 외롭게 항전했듯 독일군도 그래야 할 처지였다.


해상으로 달아나야 한다는 점도 똑같았다.


차이가 있다면 당시나 지금이나 공격자의 해군력이 우세하다는 것뿐이었다.


하늘도, 바다도 모두 붉은 군대의 손에 있었다.


독일군의 철수는 실로 운에 달려 있었다.


붉은 군대에겐 불운하게도 소련은 자신들의 전력을 제대로 쓸 줄 몰랐다.


동시기 발트해에서도 반복된 일이지만, 소련군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갖고도 이를 쓰지 않았다.


출격만 했다면 빈약하기 짝이 없는(최대함이 구축함) 추축군의 호송선단을 간단히 으스러트렸을 대형함들이 닻을 내린 채 하릴없이 시간만 보냈다.


이 시기 가장 활약한 것은 부차적으로 치부된 잠수함이었다.


붉은 군대의 공군 역시 실력이 모자랐다.


경험이 쌓이고 교리가 개선되긴 했지만, 그들의 작전은 비효율적이었다.


반면, 추축군은 가용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해상 철퇴를 진행했다.


루마니아 해군은 압도적으로 강한 붉은 군대의 위험을 감수하며 해안까지 다가와 함포를 퍼부었고, 멀리 루마니아에서 날아온 독일기들은 필사적으로 선단을 엄호했다.


이 같은 추축군의 철퇴 작전은 결국 성공했다.


3만에 달하는 전사자와 행방불명자를 제외하면 20만에 달하는 추축군 병력이 소련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간 것이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에서의 제 1기갑군 탈출과 함께 소련군이 성공하지 못한 44년의 몇 안 되는 대규모 작전이기도 했다.



3줄 요약) 히틀러는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 크림 반도를 유지하길 원했다.

히틀러의 고집으로 제 17군은 크림반도에 갇힌 채 5개월을 포로수용소 비슷한 생활을 했다.

다 죽을 뻔했지만 소련군의 찐빠로 철수에 성공했다.


역시 전투는 잘하지만(애초에 할 필요가 없었던) 전쟁은 못하는(그 군대 건져서 우크라에 박았으면) 게르만의 자화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