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외로 당시 러시아의 곡물 생산량 자체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음.
독일 해군에 러시아로 가는 항로가 봉쇄되면서,
수입이 막혔지만 동시에 수출도 막혔기 때문.
노동력을 전선에 투입해야 해서 노동력 부족이 일어났지만,
러시아가 곡물을 수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국내에 잉여 곡물은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됨.
- 유럽 지역 러시아의 모든 항로가 봉쇄되버림.
발트 항로는 독일에, 흑해 항로는 터키에.
발트해에서 해외 물자를 수입해서 유지되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가장 심각한 곤경에 처함.
카이저마리네는 발트해에 갇힌 죄수였지만,
그 뒷방에 있는 러시아는 막을 수 있었고,
흑해는 처칠이 무리하게 뚫으려다 '갈리폴리' 터짐.
열려있는 항구는 블라디보스토크, 아르한겔스크, 무르만스크 이런데 뿐.
당연히 시베리아 너머에서 물자를 운반해오는건 너무 벅찼다.
- 또 다른 문제는 러시아가 국내의 곡물과 식량을,
효율적으로 조달해서 분배하지 못했다는 것임.
당시 러시아는 국내의 철도 시설이 미비해서,
지방에 있는 자원들을 도시로 효과적으로 끌어오지 못했음.
유럽 러시아의 철도 시설은 다른 열강과 크게 차이 없는 수준이긴 했지만,
군수 수송에 투입되면서 도시가 운송량 부족으로 허덕거리게 됨.
노후화 된 증기 기관차들은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터져나갔고,
급히 수입한 기관차들도 수입 항구가 너무 멀어서,
제때 철도에 투입되지 못함.
극심한 추위에 증기 기관차의 파이프가 터져나갔지만,
예비 파이프가 없어서 수리도 제때 못하는 상황이 벌어짐.
- 전시였기 때문에 루블의 태환이 중지되었고,
신용화폐로 전환된 루블을 마구 찍어내면서,
전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기 때문에,
도시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감소하게 됨.
반면에 농촌에서는 충분한 곡물이 있었지만,
인플레 때문에 가격이 점점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농민들은 곡물을 저장해두는 쪽을 선택하였고,
이것이 도시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는 주요한 원인이 됐음.
도시 인구가 전시에 자꾸 증가한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킴.
-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배급제가 필요했지만,
배급제 논의는 있었는데 실제로 도입되지는 않았음.
짜르 정부나 임시 정부는 고정가격제를 도입하고,
농민들의 곡물을 '압수'하려 조달하려 했지만,
당연히 저항에 부딧쳐서 성공하지 못함.
결국 볼셰비키가 나타나서 '홀로도모르' 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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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모스크바 만은 필사적으로 공급을 유지하는 이유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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