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왜 1발은 놓쳤을까
그런데 <정조실록>과 이 오재순의 ‘고풍’지, 박제가의 ‘어사기(御射記)’에 기록된 정조의 활쏘기 성적을 보면 궁금증이 생긴다.
정조는 1792년 10~12월 사이 춘당대로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을 쏘았는데 50발중 49발을 맞춘 회수가 10회나 된다. 특히 12월27일에는 화살 100발을 쏘아 98발을 맞히는 기염을 토한다. 왜 만점(50발 명중)은 없는 것일까. 김문웅씨가 공개한 오재순의 ‘고풍’지에도 정조의 마지막 발(50번째) 점수가 공란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즉 정조는 “활쏘기는 군자의 경쟁이니 남보다 앞서려고도 하지 않고, 사물을 모두 차지하려 기를 쓰지도 않는다”(<홍재전서>)고 했다. 박제가(1750~1805)는 “당시 사람들은 ‘하늘이 내린 임금의 활쏘기 솜씨에서 50대 중 1대를 빠뜨린 것은 겸양의 미덕’이라 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에서 박제가는 “문무를 겸비한 우리 성상(정조)은 백왕을 뛰어넘으셨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랬다. 정조가 밤새도록 책만 읽고, 보고서만 읽은 공부중독, 일중독의 군주로 알기 쉽지만 절대 문약(文弱)에 빠진 임금이 아니었다.
실록에 실려있는거 보면 찐이겠지?
왕이 활쏘기 못하면 신하들이 또 꼽주거든 ㅋㅋ
왕이 전쟁나가지도 않는데 뭐 - dc App
실록에 써있는거 굳이 의심은 안하는데 저건 진짜 빗나간거일듯
조선은 진짜 활 스포츠에 진심인 나라라서 ㅋㅋ
저거 다른 왕들도 마찬가지로 1발은 예의상 빗맞춘게 많다보니까 진짜라고 봐야 됨
너무 잘해도 꼽주는 나라가 조선이라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