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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의 노골적인 간섭을 보고 듣지 못한 사람은 물론 하나도 없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국민 투표(1991년)를 앞두고 우크라이나 지역에 힘을 복돋아 주어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언을 어떻게 잊을 수 있는가? “세바스토폴리는 우크라이나에 예속된다!”는 일등 국가들의 목소리들 가운데 키예프 주재 미국 대사의 목소리는 물론 그 후 아주 어리석은 국가 의회 목소리들도 수차례 들려 왔다는 것을 어떻게 눈치채지 못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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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범슬라브주의’를 확고하게 반대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는 늘 아무런 힘도 없는 러시아를 부추겨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애절한 아픔 없이는 동부 슬라브 민족을 인위적으로 잘라 버린 사태를 접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순간적으로 수백, 수천만의 우리 가족, 친척, 친지들의 관계들이 잘려 나가 버리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오늘날 러시아 국민들이 숙명적이고 소극적 자세로만 일관했었기에 기인된 것이다. 그 국민들은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1천2백만 명의 운명들과 모국어로 쓴 마지막 편지(1989년) 속에다 자기들은 러시아인이라고 선언했던 그보다 두 배 가량 되었던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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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70년대에 순진하게도 대규모 우크라이나 이민 집단이 형성되어 있는 캐나다와 미국에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들을 그들에게 던져 보았다. 왜 그들은 공산주의에 전혀 대항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그 사상에 대항하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는가? 왜 그들은 그러면서도 그처럼 예리하게 반러시아적인 말들을 하고 있는가?
이는 매우 순진한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몇 년 지나 ‘예속 민족’에 관한 미국의 악명 높은 1986년 ~ 1990년 법안이 반러시아적으로 왜곡되어 만들어졌고, 이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민족주의자로 인하여 미국 의회에 제출되게 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도브란스키 의원이었다.)
이 법안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사상을 전개시킨 골자대로 가장 극단적이고 조잡한 해석들과 호소들로 그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우리는 곧 우크라이나 민족은 ‘초월된 민족’이며 그들이 수천 년이나 되는 심오한 시대를 넘나드니만큼 블라디미르 스뱌토이는 물론 호머도 우크라이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와 같이 흡사한 사상 속에서 우크라이나 학교 교과서들도 코믹하게 개편되었다. 이 민족주의자들은 분명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사상을 고양시키고 있었다.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 인들을 위한 우크라이나’ 사상이라는 것은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다. (비록 우크라이나 내에 10여 개나 되는 민족들이 살고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는 ‘키예프 루시는 우랄까지!’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러시아인들은 ‘몽고-핀란드 잡종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슬라브 민족 속에서 제명되었다. 지금 오데사에 설립된 민족 지정학 연구소는 ‘러시아를 축소시키는 것은 단지 우크라이나와 카프카스 그리고 자카프카지예가 동맹하는 방법밖에는 없다’라는 계획안을 이미 1941년에 제안했던 <<러시아 분할>>이라는 책의 저자 유리 리나 이름으로 설립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정신 내면 속에서 1992년에 구소련 ‘갈리치아’를 히틀러 사단이 침공했던 기념 축제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리보프에서 거행되었다. (이것은 미국으로부터 비난은 물론 아무런 분개도 일으키지 않았다.)
1990년에 그들은 대표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 바 있다.
“우리는 힘만을 숭배한다, 힘이 전부이다!”
이러한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족 동맹은 자체적인 비행 공습 부대와 ‘우크라이나 민족 동맹을 권력으로(즉 정부로), 비행 공습 부대는 돌격으로’라는 슬로건을 비치하기도 했다. 1994년 의회에서는 ‘러시아에서 붕괴를 조장하는 지역 분리주의자들을 지지할 것’을 선언한 바 있다.
그와 같은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정부 활동은 때마침 미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했다. 크라프추크와 쿠치마 대통령이 통치하던 때에도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를 무력하게 만들려는 미국의 책동과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그로 인해 곧바로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특별 관계’ 및 1997년 흑해에서의 미국 해병 훈련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러시아를 부득이하게 성공적으로 붕괴시키려는 목적으로 우크라이나 분리주의자들을 이용할 것을 1915년에 주장한 바 있는 파르브스의 불멸의 계획이 상기되고 있다.
1991년에 발생한 대규모 소동과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을 이용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반러시아주의’를 재빨리 지향하여 부끄러운 공산주의의 오명을 씻어 내려고 동요하는 사람들을 이용함으로써, 수세기 동안 우크라이나와 단절된 채 남겨져 있던 서부 우크라이나 출신 민족주의자들이 모든 우크라이나의 잘못된 역사적 과정들을 떠맡아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독립도 아니고 자기 민족 역량 속에 존재하고 있는 국가와 문화의 인위적인 발전도 아니다. 더욱 많은 영토와 주민들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이며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라는 ‘위대한 국가’임을 표방하려는 것이다. 모든 소련의 합법적인 주민들마저, 말하자면 이 단 하나의 선물마저도 폐기 통보한 우크라이나는 왠지 거짓으로 날조된 레닌식 국경들만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흐멜니츠키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로 병합시켜 놓았을 때 우크라이나는 단지 지금 영토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독자적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다행히 만사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저지른 엄청난 실수는 돈 강 유역 2개 주, 신러시아 남부의 모든 지역(멜라토폴리-헤르손-오데사), 크림 지역 등과 같은 바로 레닌 이전 한 번도 우크라이나에 예속된 유래가 없었던 땅들로 지나치게 확장했다는 것에 있다. (흐루시초프의 선물을 받아들인 것은 적어도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러시아 사람들이 그처럼 희생당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에 반하여 세바스토폴리를 약탈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 자체가 구소련 법률 문서 조항에 위반되는 국가적인 약탈 행위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인 과제 선택 속에서 발생한 전략적인 실수는 우크라이나가 정상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지속적으로 저촉되게끔 만들 것이다. 애초부터 야기된 이 같은 심리적인 실수는 서쪽 주들과 동쪽 주들을 무모하게 결합시키고, 이중 종교 분할(지금은 이미 삼중 종교이다)을 야기시키며, 그리고 주민 63퍼센트가 지금까지 모국어로 여겨 온 그 러시아어를 탄압하는 탄력 속에 명백한 독소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런 반목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비효율적이며 유익하지 않은 노력들을 해야만 하는가? 속담대로 ‘포획된 것은 뼈가 썩는 법’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미 러시아어를 매우 강력하게 억압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러시아어가 제2의 국가 공식 언어로 지정되는 것을 거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서 사용되고 있는 그 언어에 대한 적극적인 압력도 행사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 출판물에 대한 예약 가격을 10배나 올려 놓았다. 우크라이나를 모르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직장에서 해직되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고등 전문 대학에서는 입학 시험 때부터 졸업 논문에 이르기까지 전부 우크라이나어로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전문 용어가 부족한 사례들이 있게 되는데, 그러한 경우에만 겨우 예외를 두고 있다. 학교 교육 프로그램에서 러시아어는 완전히 제외되었고, 소위 ‘외국어’나 학부 언어로 정리했다.
또한 그들은 완전히 러시아 국사 강의를 폐지시켜 버렸고 문학 수업 계획에도 전체 러시아 고전 가운데 단지 몇 개만을 남겨 놓았다. ‘언어학적인 러시아 침략 행위’와 ‘러시아적인 우크라이나인들’은 쓸모없는 것들이라는 비난의 소리들이 울려 퍼지고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 문화를 계획적으로 고양시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문화를 박해하는 것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는 언어들을 스스로 퇴각시키는 사태까지 이르게 만들어 버렸다. 말하자면 우크라이나어를 라틴어 문자로 번역하는 것인데 이는 우크라이나의 역사 속에서 비웃음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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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그처럼 무모하고 대범하게 러시아에서 채택된 연방 조직에 관한 목소리를 높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크림과 돈바스라는 자치 망령이 즉각 나서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든든한 러시아 혈통들은 물론이고 카르바치야 산맥 저 멀리 러시아인들을 생각하는 것조차 잊고 있다.) 만일 체첸이라는 피의 올가미가 아니었다면 크림이 날카로운 위기에 처해 있던 해에 모스크바는 아마(아마?) 크림 사람들이 주장하던 합법적인 요구들을 지지하려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80퍼센트가 크림 반도 독립을 찬성하는 투표를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으로 인하여 크림 반도에서 불고 있는 바람에 손도 대지 못하고 등지고 말았다. 우크라이나 민족 동맹은 크림 반도 주민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크림은 우크라이나 땅이 되거나 무인도가 될 것이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분노와 공포를 삼키면서 그 당시 우리 외.교의 안일한 태도와 우유부단, 그리고 독선으로 24시간 동안 크림 반도를 반환했던 작태와 그 후 크림 분쟁 때마다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변질적인 행동들을 참고만 있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최소한의 정치적인 양보도 없이 러시아의 군사 요충지인 세바스토폴리를 절대적으로 반환하겠다는 것을 참고만 있었다. 이 간악한 작태들은 우리들이 선택했던 정부로 인하여 이행되어졌다. 그러나 우리 시민들은 제때에 저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주시만 하고 있는 지금 이와 가장 근접한 세대들에게 화해가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무섭게 위협과 증오를 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절대로 모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작열하는 ‘반러시아 운동’에 아무런 대답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정신병’이라고 치부해 버려야만 한다. 우리 쪽에서 무모한 위협을 가하는 선언을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그들을 위한 뜨거운 양식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변화를 포용하고 있는 역사적인 과정 그 자체가 그들을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게 할 것이다. 가장 위대한 러시아 본원인 키예프로부터, 다시 말해 러시아어가 괴멸되지 않고 소리내어 울려 퍼지고 있는 키예프로부터 야기되고 있는 그들의 어떠한 저주도 우리 가슴을 달리 돌리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백러시아 사람들처럼 어쨌든 우리들의 형제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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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는 공산단 청년 동맹 젊은이들을 수반으로 보존되던 볼셰비키 사상, 즉 국제주의를 작열시키고 있었다. 레닌 시대부터 러시아 영토를 아무런 선견지명도 없이 체첸, 다게스탄,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크라이나에 넘겨주려고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크림’이라는 선물을 생각해 냈다. 바로 그 선물은 마음을 일치하려는, 즉 우크라이나 국가 의식을 일치하려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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