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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월북한 미군일 가능성이 있음

1982년 3월 국내에 배치된 미 육군 일병 조지프 t 화이트는 1982년 8월 동두천의 미군 2사단 캠프 호비 부대에서 복무하던 중 부대 창고 자물쇠를 끊고 유탄발사기가 달린 m16 소총 한자루와 탄창 여러개, 야투경을 탈취해, 지뢰지대 지도 등의 문서가 담긴 크로스백을 휴대하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함

화이트가 북한 군인들에게 항복의사를 밝히고 그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을 본 군목이 돌아오라고 소리쳤지만 화이트는 씹고 계속 발걸음을 옮겼음

며칠후 화이트는 평양방송에 나와 다음과 같은 입장문을 발표함


저는 남한에 주둔한 미 육군 2사단 31연대 1대대 3분대 3소대에서 일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저는 미국 미주리주 출신이며 집에 부모님과 두 형제, 두 자매가 있습니다. 저는 8년제 학교와 4년제 고등학교를 마치고 1학년 때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저는 1981년 10월 27일에 입대하여 1982년 3월 남한에 파견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8월 28일 정치적 망명을 신청하기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에 왔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북조선으로 오라고 부추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깊은 신념으로 정치적 도피처를 찾았습니다. 이제 제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미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한국에 파병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고위 간부들은 올해 3월 우리가 한국에 파병됐을 때 우리에게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도록 미군이 한국에 파병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에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주한미군의 임무에 대해 약간의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저는 미국에 있을 때 텔레비전을 통해 남한의 (정떡)에서 일어난.. (정떡)

(정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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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북한이 화이트를 주제로 전방에 뿌린 삐라




지난해 7월부터 군사분계선에서 근무하면서 저는 그들이 말하는 "북한의 침략 위협"이 순전히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망원경으로 북한의 평화로운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것은 넓은 들판과 아름다운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와 뜨락또르였습니다. 나는 왜 우리 미군들이 다른 나라를 둘로 나누는 분계선에 있어야 하느냐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럽고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남한의 거리를 걷고 있는 저를 바라보는 남한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향한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화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생각이 더 확고해졌고, 하루빨리 이런 굴욕적인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저는 미 행정부가 제게 강요한 그릇된 일에 청춘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 행정부가 추구하는 부당한 정책에 반대합니다. 또한 미국 사회와 정부의 부패, 범죄, 부도덕, 나약함, 쾌락주의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북한에 온 것은 미국 정부의 부패한 대내외 정책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는 우리 가족은 노동계급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공장에서 일하시고 두 형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합니다. 대학은 서민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되어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는 미국이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낙원'이지만, 사람들이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려야 하는 지옥이라는 것을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군대에서 제대하고 미국에서 희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착취와 억압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늘 생각해 왔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복무하면서 북한에 눈을 돌리니 참으로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찍이 학창시절에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20세기의 영웅이신 김일성 원수님에 대한 글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일성 원수님은 일본제국주의와 싸워 영웅적무장투쟁을 승리로 이끄시고 미제국주의를 무찌른 유명한 장군이십니다.

또한 김일성 원수는 미국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북한에 강력한 산업국가를 건설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의식주의 걱정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했습니다.

지난 달 우연히 미국 잡지 LIFE 7월호에 실린 김일성 원수님의 70회 생일 축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진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는 수집한 사진과 기타 정보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 아래 북한 주민들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게 했습니다.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이 있는 북한이 제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땅에서 인민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 확고한 믿음은 저로 하여금 용감하고 단호한 행동을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나는 8월 28일 자정에 근무 중일 때 기회를 잡고 북한을 향해 초소를 떠났습니다.

위험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아 북한에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마침내 북한에 오는 데 성공했다. 밝고 새로운 사회로 오게 된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그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나를 여기 북한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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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83년 화이트는 고향 미주리의 부모 앞으로 자신이 평양의 외국어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며 산다는 자필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1985년 북한 정권은 화이트의 부모에게 화이트가 청천강에서 수영을 하던 도중 익사했다는 통보를 함

물론 시신은 떠내려가 건지지 못했다고 해명함

2008년 북한을 탈출한 월북 미군 젠킨스는 미군 방첩부와의 조사에서 화이트를 목격했냐는 질문에 텔레비전으로만 보았다는 대답과 함께, 보위지도원에게 "동무, 화이트를 우리와 함께 지내게 해달라"는 제안을 했지만 "화이트는 발작을 일으켜 반신불수의 폐인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 된다"라는 거절을 들었다고 진술함

그렇게 화이트는 남과 북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짐

주한미군 군사법원이 화이트를 무단 이탈, 군용물 절도, 군용물 파손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는 탈영병이나 월북자가 나타났을때 취하는 행정상의 조치일 뿐 화이트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그저 공소가 보류된 서류상의 조치가 되어버림

화이트는 어떻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