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4월 4일, 스베르들롭스크.
20호 병원의 수석 의사 야코프 클리프니처는
24호 병원 환자들 중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지
24호 병원의 마르가리타 일리옌코에게 전화를 한다.
일리옌코의 24호 병원은 규모가 더 큰 20호 병원에
환자를 전원시키콘했다.
24호 병원에서 20호 병원으로 전원된 환자들 중
중증 폐렴과 흡사한 병에 걸려 사망한 특이한 환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음날도 20호 병원에서 폐렴과 유사한 증상으로 또 다른 환자가 사망했고, 다시금 클리프니처는 일리옌코에게
죽어가는 환자가 없는지 물었지만 일리옌코는
"누가 요즘 폐렴으로 죽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리옌코의 24호 병원에서도 환자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앰뷸런스와 자동차에 실려온 환자들은 고열과 두통, 기침, 구토, 오한, 가슴 통증을 호소했다.
20호 병원의 입원 책임자가 회고하길,
응급처치를 받고 몸이 나아진 사람들 중
일부는 집으로 가려 했지만,
그들은 의식을 잃은 상태로 길거리에서 발견되었다고 회고했다.
순식간에 환자들에게 죽음이 닥쳐왔다.
일리옌코는 지역 공공의료 위원회에 위급 상황이 발생했다 보고했고, 40호 병원에서 모든 환자를 전염병 병동에 수용할 준비를 했다.
전염병이 발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일부 직원은 출근하지 않거나,
가족들에게 전염시키지 않도록 퇴근하지 않았고,
스베르들롭스크 남쪽의 여러 마을에서
양과 소가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사건에서 이상한 점은 주로 남자들이 죽어갔다는 것이다.
여자는 많지 않았고, 아이는 한명도 없었다.
24호 병원의 일리옌코는
사망자들의 이름, 나이, 주소,
추정 사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파이바 아브라모바)
비상사태가 심각해지자, 40호 병원은 은퇴한 병리학자
파이나 아브라모바를 불러 한 남자를 부검해달라 요청했다.
이 남자는 전차사단이 있던 32호 기지에서
예비군 업무를 보다 집으로 돌아간 뒤 갑자기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했다.
이 남자에겐 독감이나 폐렴의 전형적 증상이 없었지만,
부검 결과는 림프절과 폐의 감염을 나타냈다.
거기에 뇌출혈이 있었는데,
뇌를 삥 두른 뚜렷한 붉은 띠가 있었다.
(탄저균 환자의 뇌, 출혈 흔적이 보인다.
만약 이 사진 때문에 짤린다면
"cardinal hat anthrax"로
구글 검색을 해보라, 혐짤이니 조심하자.)
이는 전형적인 탄저병의 증상이었다.
질병 발생소식은 모스크바에도 전해져
모스크바 중앙대학원 전염병학과장
블라디미르 니키포로프,
보건부 차관 표트르 부르가소프가
스베르들롭스크를 찾았다.
니키로포프는 관련된 모든 의사들을 모아놓고
관찰하고 부검한 내용에 대해 물었고,
아브라모바는 탄저병이라고 결론내렸다.
평생을 탄저병을 연구한 니키포로프도 동의했다.
보건부 차관인 부르가소프는 오염된 고기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단언하듯 말했다.
아무도 그에 대해 반박하는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탄저병의 형태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피부 탄저, 장 탄저, 흡입 탄저가 있다.
피부 탄저는 탄저균을 피부로 접촉했을때 생기고
피부 탄저병의 경우 치료하지 않으
중증 패혈증과 뇌수막염이 발생할 수 있으며,
사망률은 5~20%다.
위장관 탄저는 탄저균에 오염된 고기를 섭취했을때
발생하고 이 경우 발열 및 심한 복통이 나타난다.
위장 감염 시 사망률이 25~60%에 달한다.
흡입 탄저는
탄저균 포자를 호흡기를 통해 흡입하면 생긴다.
이 경우 가슴 불편, 호흡 곤란, 발열, 구토, 오한 등이 나타나며
흡입 탄저의 사망률은 거의 100%에 달하며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
스베르들롭스크의 환자들은 오염된 고기를 먹거나 만졌을 때
발생하는 위장관 탄저, 혹은 피부탄저의 증상이 아니라,
흡입 탄저의 증상을 보였다.
보건부 차관의 위장관 탄저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아브라모바가 후에 말하길,
"이 연구에 참여한 모든 의사들은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부검 후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흡입 탄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말일 뿐이었고 빠르게 묻혀졌습니다."
그들은 가능한 한 말을 적게 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무언가 소련 당국이 숨기려 하는 것이 있는 것이었다.
이 사건이 수상한 점은 한가지 더 있었는데,
탄저균의 잠복기 2~7일을 감안할 때,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7주간 비상사태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니키포로프는 탄저균에 의한 사망자는
부검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망자를 부검하라는
이상한 지시를 내렸다.
아브라모바와 그의 후배 그린베르크는
이 사건에 대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지역 보건부장은 그들을 찾아와
"이 일에 대해 말을 아끼고, 전화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린베르크는 금지된 일이었지만, KGB의 감시를 피해
부검 현장을 컬러 사진으로 찍어 몰래 보관해두었고,
아브라모바도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질 미래를 위해
KGB의 감시를 피해 사망자들의
조직 샘플을 몰래 보관해두었다.
이러한 큰 사건은 제아무리 소련이라도 다 덮지 못했고,
미국의 귀에도 이 소식이 들어가게 된다.
미국은 생물학 무기로 인한 탄저병 발병이 아닌지 의심했고,
소련 외무부는 오염된 고기로 인한
탄저병 발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고,
이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소련이 붕괴한 이후
하버드 대학교 미생물학자 매튜 메젤슨에 의해 밝혀졌다.
스베르들롭스크에는 미국이 의심한 대로
소련의 비밀 생물학무기 시설인
19호 기지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1956년 블라디미르 시조프(Vladimir Sizov)
키로프의 야생 설치류 중 한 마리에서 발견한
독성이 높은 새로운 탄저병 변종, 탄저균 836(Anthrax 836)을
대량으로 배양하고 분리, 건조하여 탄저균 분말을 무기화한 것을
대량 생산할 뿐 아니라, 탄저균의 무기화를 연구하는 곳이었다.
이 19호 기지와 32호 기지가 위치한 치칼롭스키 지역에는
도자기 공장, 아파트 건물들, 상점, 학교들이 들어서 있었다,
이 19호 기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지만,
한 설명에 따르면 19호 기지의 특별 구역에 위치한
Nikolai Chernyshov 중령이 지휘하는
4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 이 부대의 4층 건물에서
다량의 탄저균 836 포자가 방출되었다고 한다.
건물에는 무기를 위한 건조 탄저균 분말을 생산하는
생산 시설이 있었다.
4월 2~3일 저녁, 탄저균을 분말 상태로 만들어 건조하는
분무 건조기에서 나온 탄저균에 오염된 배기 가스를 걸러내는
공기 정화장치의 배기 필터를 교체하기 위해
건조기의 전원을 끈 후
필터를 제거한 후 작업자 교대가 일어났고,
다음 교대조가 새 필터를 다시 끼우지 않고
건조기를 다시 작동시켜서
탄저균이 유출되었다고 추정된다.
이 탄저균 유출은 19호 기지 남쪽에 있는 도자기 공장을 강타했다.
2,18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 공장은 외부 공기를 흡입하는
환기 시스템을 통해 외부 공기의 일부는 용광로로,
나머지는 작업자에게로 향하게 했던 탓에,
몇 주 동안 공장에서 최소 18명의 근로자가 사망했다.
또한 19호 기지가 있는 곳으로부터 50km 떨어진 곳에서도
소들이 탄저병으로 죽어나가기도 했다.
이 사고로 “최소한” 95명이 감염되었고 68명(71.5%)이 사망했다.
당시 소련은 생물학무기 금지 협약에 가입하고 비준한지 5년이 넘어가던 해였고,
이때문에 이 사건을 더더욱 은폐해야 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KGB가 모든 의료기록을 압수하고 사망원인을 변경하는 등 기록 조작이 이뤄져
실제 감염자와 사망자 수는 훨씬 많았을 것이다.
출처:데드 핸드,
https://www.theatlantic.com/health/archive/2016/11/sverdlovsk-russia-anthrax/50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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