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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의 사용은 중요하다. Weapons of war에 있어서도 예외는 없다.




며칠 전의 일이다.


로스앤젤레스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시대 이후로 약속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예전 만큼은 못하게들 됐는지...느닷없이 미팅의 호스트에게 바람을 맞아버리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거, 미안하게 됐다며 이따 보자는 호스트와의 통화를 마치고, 시간도 때울 겸하여 그동안의 숙원사업이나 하나 해치우겠노라고 마음먹고는 미련 없이 장거리 Lyft를 잡았다.


목적지는 Greater Los Angeles의 남쪽 끝에 있는 산페드로(San Pedro).


LA 광역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인구 수가 10만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인 산페드로에서 굳이 이름이 난 것을 하나 꼽자면 터미널 섬(Terminal Islands)이 있지 않을까 싶다.


터미널 섬은 20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USS 뉴저지, USS 네바다 등을 건조한 롱비치 해군 공창(Long Beach Naval Shipyard)이나, 독일의 해상 봉쇄를 뚫고 영국을 구원할 천조국의 비밀병기인 리버티함/빅토리함을 찍어내던 캘리포니아 조선(California Shipbuilding Corporation)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공창들과 드라이독이 있던 미 서부 건함 사업의 핵심지였다.


지금이야 해안경비대가 일부 구역에서 주둔중이라고는 해도, 군바리 물 쫙 빠진 거대한 물류항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덕분에, 그런 역사가 있었는 줄은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를 일이겠다.


소싯적부터 가슴에 품고 있던 먼 바다에 대한 로망을 아직 잊지는 않았지만...딱히 항구가 보고싶어서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었다.


그야, 컨테이너와 크레인의 정글은 부산항에 가도 볼 수 있으니까...

(아마 사이즈도 거기가 한참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구태여 LA의 한 구석에 자리한 별 볼일 없는 항구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USS 아이오와 박물관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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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Drop-off에서 내려, 입구를 찾아 올라가는 길, 선미쪽에서 찍은 상부구조(Superstructure)의 사진.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직업이 되면 흥미가 식기 마련. 밀리터리 전반에 대한 열망은 내가 지금보다 더욱 어리고 감수성도 예민했을 시절과 비교하면 꽤나 식은 편이었지만, 군함에 대한 경외심만큼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함에 다가갈수록 점점 더 어린아이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


USS 아이오와(BB-61)는 아이오와급 전함의 네임십으로, 1942년 취역 이래 반세기 동안 몇 번의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하며 자매들과 함께 명실공한 미 해군의 상징으로써 복무한 역전의 노장이다.


'90년의 소련 붕괴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대에서 전례없던 대대적인 군축 계획으로 이어졌으며, 당연하게도 아이오와와 그녀의 자매들은 나란히 퇴역길에 오르게 되었다.

(걸프 전쟁에서 함포지원사격 임무를 수행중이던 자매함들은 USS 미주리(BB-63)를 끝으로, '92년까지 순차적으로 퇴역한다.)


물론, 모두가 이러한 결정을 마음에 들어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시대가 항공모함과 유도미사일을 선택한지 오래 되었다고는 하지만, 만재배수량 6만 톤에 근접한 강철 괴물들이 뱉어내는 유황불이 미국의 적들에게 가져다주는 공포가 어떠한 것인지, 또한 그것이 상륙 작전에 얼마나 큰 가치를 가져다 주는지는 누구보다 미 해병대가 제일 잘 알았다.


미 해병대는 의회를 설득, 항상 2척의 아이오와급 전함을 예편한 장기보존 함선들의 그룹인 "좀약 함대"(mothball fleet)에 배속하여, 언제든지 국가가 부르면 현역으로 전환하여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원조할 수 있도록 명시한 내용이 포함된 법안(1996년 국방수권법,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 of 1996)이 통과된다.


자매들 중 두 척의 행방은 즉시 확실하게 되었다: 태평양전쟁 승전의 상징인 미주리가 은퇴를 맞는 것에 반대를 하는 이는 없었고, 함의 상태도 괜찮고, 이렇다할 이슈도 없던 USS 위스콘신(BB-64)이 보존함대에 징집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도 없었다.


나머지 두 척 중에서 한 척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USS 뉴저지(BB-62)는 주포 시스템을 용접하여 기능 상실, 아이오와는 '89년 훈련중 2번 주포탑의 유폭으로 중파한 탓에, 그들의 존치 이유였던 16인치 함포 화력의 제공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복잡한 셈법 끝에, 유사 시 아이오와의 수복보다는 뉴저지의 주포 시스템을 재생시키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아이오와는 퇴역, 뉴저지는 보존이라는 방향으로 가닥이 나게 되었다.


...고 생각되었으나, 돌연 1999년, 새로운 법안이 입안되어 뉴저지의 퇴역이 결정되고, 머잖아 그녀는 미주리의 뒤를 이어 박물관함으로써의 함생 2막을 시작하게 된다.

(이건 순전한 상상의 영역이지만, 바닷가에 접한 뉴저지 주에서 함의 인도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머지 3척이 이름을 따온 주들은 내륙주인 덕분에, 동형함들이 모두 박물관함이 된 지금도 뉴저지만 함명과 같은 주에 정박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96년 국방수권법의 "2척의 아이오와급 전함이 항상 준비되어있어야 한다"는 조항은 여전히 유효했고, 뉴저지의 빈 자리는 박살나고, 소금기를 잔뜩 먹은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아이오와가 채워야만 했다.

(물론 수사적인 표현이다. 아이오와급 자매들은 보존함대 중에서도 나름 특급의 관리를 받으며 음극 처리를 비롯한 풀패키지의 에스테를 잘만 받았다.)


차라리 언젠가는 수복-재취역의 희망이라도 생긴 편이 좀 더 희망적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펜실베이니아의 공창 도크나, 사순 베이의 모스볼이나 함선의 입장에서는 이름만 달랐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스크랩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할 뿐인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점은 매한가지였다.


그렇게 하릴없이 바다에 둥둥 떠서 시간이나 보내던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은 지난 2006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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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 이대로 그냥 승선하기에는 뭔가 아쉬운게 있어서 주차장을 서성거리며 몇 장인가 사진을 더 찍었다. 개장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지만, 벌써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초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이 단체관광객이 제법 있었다는 점. 나도 어릴 적에 안보공원으로 견학을 갔던 일을 생각하면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잖나 싶다. 사진을 찍을때 바람이 적당히 좋게 불어준 덕분에 미 해군기가 이쁘게 펄럭였다.




새로운 국방수권법이 통과되어, 두 척 모두 완전히 퇴역하여 박물관함으로 개장/이관할 수 있는 길이 트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20여년 간 지속된 미 해군의 차세대 수상함 체계개발 사업이 빛을...보지 못하고 처참하게 망해버린 덕분이었다.


미 해군은 당시 줌왈트급의 체계개발사업인 DD(X)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들은 줌왈트에서 투사하는 AGS의 155mm 함포사격과, 벌집같이 빽빽히 들어찬 VLS, 그리고 거기에 꼭꼭 쟁여둔 토마호크의 위력만으로도 미 해병대가 요구하는 상륙작전 화력보조임무에 충분하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었고, 이는 이해 당사자인 미 해병대 역시 어느정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더욱이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며, 전쟁수행의 패러다임에 변화가 찾아오고, 과거같은 대규모의 상륙작전보다는 더욱 소규모의, 훨씬 유연한 형태의 작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시점이었던 덕분에, 이러한 임무에는 구형 전함보다는 연안전투함(!)이나 줌왈트급 같은 신형 함선이 더욱 적합하다는 주장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어차피 돈 쓰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미군이라면, 전함도 굴리고 신규 함급도 굴리면 될 노릇이었을 테지만, 문제는 그 미군에게조차 두가지 옵션을 모두 선택하기에는 충분한 예산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이미 돈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줌왈트급의 척당(!!) 건조 비용은 10여년 간 해상에서 보존되던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을 완전 수복하여 작전 투입 가능 상태로 되돌리는 데에 예상하는 비용인 5억 달러에 근접하는 수준으로 불어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무사귀환점을 넘긴 지는 한참 오래된 터, 미 해군은 DD(X) 프로젝트마저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릴 때의 후폭풍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의회는 해군이 단기의 개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는 낙관주의로 뚜렷한 근거 없이 전함의 장거리 화력지원 능력을 포기하는 한편, 중기적인 원정 전투 보조에 있어서도 비현실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바이다..."


이런 신랄한 표현까지 써가며 해군의 삽질에 상당한 불만을 표했던 미 의회였지만, 결국 과거의 유산과 미래로의 진보 사이 저울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그들도 잘 알고 있었던 바, 전함전력의 유지를 포기, 한정된 예산과 역량을 DD(X)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미 해군의 수상전력 아젠다를 승인하는 것 외에 별다른 뾰족한 수를 낼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이 아이오와의 즉각적인 박물관함으로의 개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상태가 매우 양호했던 위스콘신의 복원도 수백만 달러가 드는 판국에, 아이오와의 복원에 필요한 예산은 그 갑절을 한참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주정부, 해군 차원에서의 지원이 확정되었다 한들, 민간 사업자들 중에서 이러한 규모의 펀딩을 감당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았고, 아이오와의 인수 및 복원 사업은 대상자를 찾지 못한채 여러 해를 넘기며 질질 끌게 되었다.


그 사이 위스콘신 박물관이 2009년 개관하며, 동형함들 중 박물관함으로써 개장되지 못한 함선은 아이오와만이 남았다.


결국 2010년 말, 치열한 경합 끝에 로스앤젤레스를 등에 업은 Pacific Battleship Center(PBC)가 경쟁자인 Historic Ship Memorial at Pacific Square(HSMPS)와의 인수전에서 승리하며 아이오와의 박물관함 전환이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리치몬드 항에서 수복을 완료한 아이오와는 2012년, 박물관함으로써의 새 임무를 받고 이곳, 터미널 섬이 내려다 보이는 산페드로의 바닷가에 영구히 닻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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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함의 상부구조가 원근법을 무시하면서 점점 커진다. 화려한 신호기와 데코레이션의 조합이 무슨 축제라도 하는 것 같다. 내가 오래된 대형함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


어쩌다 아이오와가 박물관함이 되었는지 정말 간단하게 얘기하고 넘어갈 참이었는데, 예상보다 말이 길어졌다.


재미없는 역사의 이야기는 이쯤 하자.


저 유명한 일본 해군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연합함대사령장관은 일찌기 전함더러 부잣집의 토코노마(床の間) 같은 물건이라고 칭했던 적이 있다.


장엄한 크기의 상부 구조에 빽빽하게 들어찬 병장들과 화려하게 수놓여진 데코레이션들을 보고 있노라면, 물론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과연 틀린 말은 아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함을 장식하는 요소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양현에 걸린 2 세트의 신호기이다.


우현에 걸린 신호기의 조합은 (BRAVO)-(ZULU) / (INDIA)-(OSCAR)-(WHISKEY)-(ALPHA)이다.


미 해군, 그리고 NATO에서 신호기 코드 BZ는 "Well done."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코드 BZ의 유래로는 윌리엄 '킬모어잽스' 홀시가 태스크포스38의 전공을 치하하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설이 제일 유명하지 않나 싶다.


어쩐지 츠시마 해전에서 토고 헤이아치로가 Z 깃발을 게양하며 연합함대를 독전했던 일화가 생각나는 야사지만, 실제로 코드 BZ는 홀시가 남방전역을 들쑤시던 시절의 한참 뒤인 1949년, NATO를 창설에 따라 제 1세계의 해상 신호기 코드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새로 정립된 부호이다.


본디 기함이 휘하의 함에 지시한 내용에 대하여 온전히 수행되었음을 확인/치하하는 의미의 메시지이건만, 바다 사나이들 특유의 로망 덕분인지, 신호기의 실전적 사용이 사실상 사장된 현대에 들어서는 복무와 헌신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예식적인 표현으로 사용되는 빈도가 훨씬 잦은 편이다.


나머지 4 글자의 코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종합적으로,"수고했어, 아이짱!"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겨우 알록달록한 깃발을 걸어놓았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함이 살아왔던 우여곡절 가득한 역사를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진다.


§


신호기에서 조금만 눈을 돌리면 부포와 CIWS 사이, 함교 3층 난간에 경고 없이 불쑥 등장한 SEX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주력전함이 물에 띄워놓은 SEX라는 것은 이견의 여지없는 사실이지만, 사실 저 SEX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섹1스가 아니다.


'SEX'를 포함하여 난간에 아로새겨진 몇 개의 레터링들은 아이오와가 복무기간동안 수령한 Commnad Excellence Awards의 일람이다.


Command Excellence Awards는 매년 종합적인 전투 수행 역량을 포함한 함의 운용 능력 전반에 대한 평가를 요소 단위로 수행, 가장 우수한 역량을 보유한 함에게 수여하는 상의 일체로, Battle Star와 함께 미 해군의 군함에게 주어지는 가장 핵심적인 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CEA에서 가장 중요한 상은 역시 Battle E일 것이다.


전략전술부터 조함, 타격까지, 전투의 모든 면면에서 가장 효율적인 최고의 전쟁병기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얻을 수 있는 Battle E는 미 해군 엘리트 전투함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전쟁이란 언제나 예측불허한 것이어서, 모든 전설적인 수훈함들이 Battle E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Battle E를 받은 함들은 하나같이 미국이 수행한 해상의 전쟁에서 한 가닥 씩은 했다.


아이오와는 복무기간 동안 총 4번의 Battle E를 받았다.


이를 포함하여, 좌측부터 작성 순서대로, 함이 받은 CEA 수상 목록은 아래와 같다:

Strategic Operations

Logistics Management

Electronic Warfare (3회 수상)

Gunnery

Communications (3회 수상)

Navigation (3회 수상)

Damage Control (3회 수상)

Battle E (4회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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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5.) 큰 힘에는 큰 구경이 따른다. 실제로 이 밑에 서 있노라면, 어째서 미 의회가 이 함급의 실전 배치를 그렇게 고집했는지 저절로 이해가 된다.


§


본격적인 입장에 앞서, 직원에게 함내에서 준수해야할 주의사항(해치에 머리를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라거나, 언제나 계단을 보는 방향으로 오르내리라거나 그런 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나면 자유롭게 투어를 진행할 수 있다.


승선하고 제일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구조물은 이 함급의 상징과도 같은 두 개의 Mk.7 16-인치 3연장주포다.


포신 길이만 20m에 육박하는 괴물 대포 다발들의 진정한 가치란, 모든 군함의 죽음인 Mk.8 "Super Heavy Shell" 철갑탄을 뱉어낸다는 점에 있지는 않다.


상부 구조에 셀 수 없이 들어찬 Mk.38 GFCS, Mk.8/13 레이다, 그리고 온갖 센서들로부터 획득한 정보들을 바탕으로 Mk.8 Rangkeeper가 산출하는 아날로그 시대 최고 정확도의 화력 통제 역량은, "전함의 주포란 눈먼 대포"라는 당대의 상식을 가볍게 무시하며, 적들에게 영문도 모른채 시계 밖에서 날아든 트럭 한 대 질량의 철갑탄에 두들겨맞는다는 공포를 안겨줄 수 있었다.

(미 해군 전함의 FCS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상세히 설명하고 싶다.)


Mk.7 16-인치포의 최장거리 명중 기록은 '89년, 2번 주포탑 유폭의 직전에 있었던 훈련중, 아이오와가 비스케이 만 앞바다에서 무려 43.3km의 사거리를 기록한 것인데, 155mm 자주포의 포탄이 40km 쯤 날아가는 것은 당연한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게 뭐가 대단한가 싶겠지만, 저 기록을 수립할 때에도 아이오와의 주포 화력 관제는 기계태엽 아날로그 컴퓨터인 Mk.8 Rangekeeper가 수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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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6.) 주포의 사진을 찍고 바로 뒤를 돌아 선수 쪽의 사진을 찍었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날씨가 주는 청량감은 정말 대단해서, 지금 당장이라도 항해를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함은 뚱뚱한게 상식이지만, 아이오와급은 대서양으로의 신속한 배치를 위해 파나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도록 파나맥스 규격을 준수하여 설계되었다. 덕분에 날렵하고 잘 빠진 아이오와급의 선체는 '같은 체급'의 주력 전함들과 비교하면 일반인 옆에 세워둔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과 같은 그런 조형미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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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7-8.) Mk.7 16-인치포의 사진을 몇 장 더 찍었다. 저 '귀'는 항상 귀엽다고 생각하는 요소. 사실은 주포탑의 컴퓨터(아날로그)와 연동되는 광학식 스테레오스코피 레인지파인더의 후드다. 여태껏 귀인줄 알았는데, 사실은 눈이었던 셈이다...아무도 나를 배신한 적이 없지만, 조금 배신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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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9.) 함교로 오르기 전에 아쉬워서 한번 더 찍었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제대로된 촬영 장비를 가지고 왔더라면, 진작에 사진술을 연마해 놓았더라면 더 인상적인 기록을 남길 수 있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을 투어 내내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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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0.) 아이오와의 약장 사진을 찍으려다, 팰렁스 위에 앉아있는 갈매기의 모습이 인상적이라 그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약장에는 다수의 Battle E와 9개의 Battle Star가 선명하게 보인다.


§


우현에서 봤던 데코레이션과 신호기는 좌현에서도 볼 수 있다.


데코레이션이야 다를 것이 없지만, 좌현의 신호기는 우현의 그것과는 다르게 (Nobemver)-(Echo)-(Papa)-(Mike)의 4-letter 부호로 이루어져있다.


이것은 함의 고유한 무선 호출부호이다.


아이오와의 호출 부호는 본디 함이 퇴역하고, 미 해안경비대의 Cutter Heron함으로 이전된 역사가 있다.


그러나 아이오와가 박물관함으로 다시 수복되자, 미국의 상징같은 배가 자신이 반세기간 사용하던 호출부호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던 지역의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 Bob Burchett씨가 USCG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발품을 뛰며 노력한 끝에 호출부호 NEPM은 아이오와의 품으로 돌아온다.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은 이해하겠지만, 호출부호는 제 2의 이름이자 아이덴티티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일화이지만, Burchett 씨와 같은 전함 애호가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오와가 고철더미가 되어 스크랩되지 않고, 박물관함이 되어 우리 곁에 남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아직 대한민국의 일선급 전투함들이 퇴역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남았을테지만, 그러한 때는 분명히 찾아올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쉽덕들도 저들의 사례를 본받아야하지 않겠나 하는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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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 함교에서 어슬렁거리는 도중, 아래를 내려보고 찍은 5인치부포. 옆에 파란 천막에 BB-61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BB는 전함의 Hull Classification Code이다. 미 해군이 USS 인디애나 이후로 건조한 61번째 전함이라는 뜻이다. HCC와 관련하여 왜 두 글자를 반복하는가? 왜 항공모함은 CV인가? 와 같은 영원한 논쟁거리들이 있지만, 아무도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누군가 이유를 말한다면 거짓말일테니 귀담아 듣지는 말자.


§


이후에는 함내에 찍혀있는 금색 화살표를 따라 데크에서 함교로, 함교에서 데크로 왔다갔다하며 상부 구조를 탐색할 수 있다.


길이 너무 복잡해서, 솔직히 제대로 된 방문 순서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저, 원숭이 새끼들처럼 펄럭펄럭 거리며 선체의 좁은 통로를 날아다니는 아이들이 조금 부러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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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2.) 화력관제소. 암실을 연상케하는 새빨간 조명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저 구석 어딘가에 있을 Mk.8. Rangekeeper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해치 넘어서는 출입금지구역이라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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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3.) 조타실. 전체적으로는 전형적인 대전기 군함의 그 구조지만, 구석에서 볼 수 있는 AN/SPA-25G 레이다-리피터의 스코프처럼 현대화 개수의 흔적들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50년 복무한 군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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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4.) 함교의 최상층에 올라가면 이렇게 FCS와 마스트를 한 눈에 구경할 수 있는 탁 트인 장소가 나온다. 상부구조와 마스트의 형상에 대한 취향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음을 존중하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후기형 미국 전함의 그것이 가장 아름다우며, 영국 전함을 추종하는 사람들과는 겸상조차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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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5.) 함교에서 내려와 후방 상부 구조로 향하는 길에 근접하여 찍은 Mk.28. 5-인치 부포. 여기서는 부포 따위로 사용되는 5-인치/38cal. 함포지만, 구축함/경순양함에서는 엄연히 주포로 사용되는 물건이다. 때문에, 가까이에서 보면 16-인치 포만큼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위압적인 인상이 있다. 해치를 통해 포탑 내부의 로딩 메커니즘을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들어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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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6.) 상부 구조는 두 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사진에 찍히는 구획이 상부 구조를 분할하는 기준이 된다. 뒤로 후방 섹션의 2번 연돌이 보인다. 원래 보포스 대공기총과 그 사통장치들이 얹혀있던 자리에는 지금 팰렁스 2대 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조금은 허전한 인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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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7.) 팰렁스의 최신식 사통장치와 아이오와의 구식 화력 관제 시스템 사이의 호환성 문제로, 본함의 CIWS들은 훈련받은 갈매기들이 운용한다. 모든 팰렁스마다 갈매기가 한 마리씩 앉아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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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8.) 후방으로 넘어가는 길은 작살꽂이 뒤에 난 작은 통로를 통해 기어들어가야 해서 조금 불편한 감이 있다. 아이오와의 기관실 크루들이 받은 E가 연돌에 장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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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 방금 지나온 길을 뒤돌아서 돌아보았다. 올때는 몰랐는데, 하푼 미사일 발사관을 마주치기 전에 토마호크 포대도 지나쳤다는걸 이제서야 알았다. 그래도 병기 느낌이 나는 하푼의 마운트랑은 다르게, 토마호크의 발사관은 앞뚜껑 열리기 전까지는 심심한 박스라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 원래 2번 연돌을 전후로 상부 구조물의 후방에는 보포스가 벌집처럼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지만, 1984년 현대화 개수를 거치며 이 구역은 다수의 하푼과 더 많은 토마호크의 발사관들이 들어차게 되어, 어떻게 보면 16인치 주포보다 더욱 무시무시한 구역이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다. 물론 화력의 지속적인 측면에서는 배에 한가득 실리는 슈퍼 헤비 쉘에 비할 수가 없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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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 함의 후방에도 Mk.38이 하나 더 붙어있다. 앞쪽에는 마스트 최상단에 있어서 사진을 찍기 어려웠는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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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부 구조의 투어가 끝나는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장갑 해치를 내려가면 선실을 구경할 수 있다.


현대의 항공모함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수준급의 시설과 함께, 동작하지 않는 음료수 자판기를 포함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차 있으며, 가장 아랫쪽은 박물관함이라는 이름 답게 이런저런 전시 구획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것저것 괜찮은 사진을 찍어보려고 했지만, 썩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던 관계로, 아쉽지만 선실과 관련한 내용은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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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1.) 선미 쪽의 데크는 철제 갑판을 싸구려 합판으로 덮은 선수 쪽과는 다르게, 고전적인 나무 플랭크로 되어있어서 제법 느낌이 난다. 저 의자랑 쓰레기통들을 어쩔 수 없는게 천추의 한이다. 사진에 미친 암흑타락한 작가들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인간 미만의 행위를 저지르는 이유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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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2.) 함의 마스코트 빅토리 "빅키" 도그의 플라스틱 동상. 스모키 상병같이 군견이 아님에도 실제로 작전을 뛰었던 대전기의 워-도그들과 비교하면 빅키는 마스코트의 역할에만 충실한 편이었다. 역시 주인을 잘 만나고 볼 일이 아닌가 싶다. 어쩐지 Fortunate Son의 노랫가사가 연상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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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품점을 마지막으로, 선실 투어를 종료하면 선미 쪽의 데크로 기어올라올 수 있다.


웬 플라스틱 동상 하나가 반겨주는데, 바로, 함의 마스코트인 빅키(Vicky)다.


약간의 스핏츠 계열, 약간의 리트리버 계열이 섞인 것 같은 장모종 똥개 빅키는 1943년 아이오와의 함장으로 영전한 John. C. McCrea 대령의 애완견이었다.


잠시 맥크리 함장의 아내가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어느날 밤, 술에 얼큰하게 취한 남편이 웬 잡종개를 한 마리 집에 데리고 들어온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나?


당연히 내쫓아야지...남편도, 개새끼도.


집에 개를 들일 수 없게된 맥크리 함장이 이 가여운 똥개를 키울 수 있는 장소는 그의 근무지인 아이오와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선원들은 아내와는 다르게 빅키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었고, 빅키는 미 해군 수병의 입대 자격시험을 모두 통과하며 당당히 함의 승조원(Mascot First Class)이 될 수 있었다.


빅키는 출신도 미천했고, 전투원으로써의 역량도 낙제점이었지만, 탁월한 감각을 지닌 정치군인이었다.


맥크리 함장과 빅키가 아이오와에 편입한 바로 그해, 아이오와는 대통령 FDR의 테헤란 회담 운송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루즈벨트는 상당한 애견가로, 당시에는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었는데, 빅키는 바로 이 점을 간파, 대통령의 벙크에서 동침(!)하며 침대 위에서 대통령을 구워삶았다.


테헤란으로 향하는 2주 남짓한 여정에서, 빅키는 대통령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주인도 좀체 보기 힘든 어니스트 킹, 조지 마셜 등 미군의 기라성같은 원수들과 같은 테이블에 동석하며 정치 군인으로써의 커리어를 매우 빠르고 훌륭하게 갈고닦을 수 있었다.


빅키도 엄연한 아이오와의 승조원이었기 때문에, 1943년 이후, 아이오와의 승조원들이 받았던 Battle Star, Domain of the Golden Dragon 등 온갖 공식적/비공식적 수훈을 받을 수 있었고, 이는 정치를 통해 쌓아올린 입지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훌륭한 밑받침이 되었다.


주인과 맞먹는 해군의 거물이 된 빅키의 입김은 전쟁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한 것이 되어있었기 때문에, 퇴역 후, 빅키는 최초에 거부당했던 맥크리 소장의 집에서 안락한 은퇴 생활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빅키의 동상 바로 맞은 편에는 그의 이름을 딴 핫도그 스탠드 Vicky's Doghouse가 있다.


스탠드에서 파는 미국식 핫도그들은 제법 훌륭한 맛을 자랑했지만, 어트랙션 다운 흉악한 물가가 단점이라면 단점.


그래도 세기의 전함의 데크 위, 천막 그늘에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는 핫도그의 맛은 기꺼이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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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3.) 핫도그 스탠드와 천막을 지나 퇴함하는 길에는 Piasecki HUP Retriever 헬리콥터가 전시되어있다. 아이오와급에서도 헬리콥터를 운용하기는 했지만 본 기종을 운용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멋있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


7월의 캘리포니아에 내리쬐는 햇볕이란, 흐리고 축축한 여름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제법 치명적인 물건이라 퇴함하는 시점의 나는 보기 좋게 익어있었다.


가벼운 탈수는 덤.


하지만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를 해치우고, 양손에 기념품도 잔뜩 끌어안고 나온 당시의 나는 상당히 행복한 짐승이었다.


이대로 오늘의 일정이 텅 비어버리면, 다저스 스태디움이라던가 가볼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마침 타이밍 좋게 호스트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덕분에, 숙소에 전리품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미팅 장소로 향하게 되어버렸다.


이상으로 나의 예정에도 없던 아이오와 투어는 끝이 났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벌써부터 여행의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뉴욕의 USS 인트레피드 박물관의 정보를 검색하고 있었던 모습을 돌아보면, 역시 보통 만족스러운 경험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글을 마무리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서, 무어라 쓰며 퇴장하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민된다.

이럴 때는 유명인을 인용하는 것이 언제나 상책일 것이다.

'86년의 독립기념일, 자유의 여신상의 100주년 및 복원사업의 종료를 축하하며, 당해의 관함식은 뉴욕에서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낸시 레이건 당시 영부인이 아이오와의 함상에서 읊은 연설문의 일부로 두서없는 수기와 난잡한 잡설의 모음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아마도 이 군함들은,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구체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어떠한 장애물도 그 앞을 가로막을 수 없으며, 그 앞에는 오로지 너른 공간만이 펼쳐져 있다는 것. 자신의 항로를 스스로 설정하고, 삶이 제시하는 모험을 받아들이는 것. 바람과 같이 자유로워지는 것 - 마치 이 거대한 군함들과 같이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Perhaps, indeed, these vessels embody our conception of liberty itself: to have before one no impediments, only open spaces; to chart one’s own course and take the adventure of life as it comes; to be free as the wind – as free as the tall ships themselves....)


자유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