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계기 ‘한·소 수교’ 역제안
오히려 크리울린 대사는 10·26을 계기로 남한과의 수교를 앞당길 것을 역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크리울린 대사는 “객관적으로 보면 조선반도에서 양국 체제가 유지될 경향이 더욱 강해지고 있고 조선 문제의 군사적 해결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며 “상기한 상황들을 고려하면 남조선과 미래 가능한 접촉 문제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제안한다. 스포츠, 도서교환, 국제기구 소속 소련 국민의 남한 방문, 제3국을 통한 무,역 등을 통해 남한과 접촉하자는 제안이다.
크리울린 대사는 “북조선과의 관계에서 일시적 불이익은 우리가 전체 조선반도에서 받을 이익보다 작을 것”이라며 “미군이 주둔한 남조선에 대한 직접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1980년 7월 모스크바올림픽 개최를 약 8개월가량 앞두고 나온 파격적 제안이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소련 내에서 한·소 수교를 공식 제안한 사람은 크리울린 대사가 최초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크리울린 대사가 본국에 보낸 해당 전문에 소련공산당 중앙위 부부장으로 있던 미하일 스미르놉스키는 1980년 3월 25일 자로, “주북한 소련대사관의 ‘정치 요지’에 포함된 제안들은 고려 중이며, 앞으로 소련 외,교부와 소련공산당 중앙위가 할 사업에 이용될 것”이라는 회신을 달았다. 미하일 스미르놉스키는 주영(駐英) 소련대사, 소련공산당 대외연락부 부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10·26사건이 도리어 한·소 수교를 앞당길 뻔했던 셈이다.
하지만 크리울린 대사가 본국에 최초 제안했던 남한과의 점진적 접촉을 통한 한·소 수교는 JDH 정부 때인 1983년 9월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KAL) 007편이 소련공군기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끝내 무산됐다. 269명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당시 사고로 한·소 수교는 북방정책을 추진했던 NTU 정부 때인 1990년에야 성사된다. 1991년 구소련 해체 바로 직전이다. 째르치즈스키 연구원은 “크리울린 대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북한을 바꿀 수 없으며, 소련이 무엇을 해도 북한이 중·소 분쟁에서 중립노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느낀 것 같다”며 “그래서 남한과 관계를 발전시키고 나중에 한·소 수교까지 하면 낫지 않을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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