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갤에 백선엽 다부동 전투 관련으로 엉망진창 념글 하나 가 있던데


완장이 삭제해 버렸지만 내 부관참시 하고 싶은 마음이라 차단당할 각오하고 저격 날린다


념글 쓴 새끼 이미 댓글에서 빤스런쳤는데 여기서도 빤스런쳤으면 720 날려다오 (그 새끼 아이디 gwshark1234)



글 이상하게 읽을 놈들 위해 미리 요약하면, 다부동 전투 당시 1사단 12연대가 수암산~유학산 일대에서 불필요한 피해를 입은 건 낙동강 연안에서 주저항선으로 이동 과정에서 육본, 군단, 사단, 연대 모두 사이좋게 지휘를 개좆박았기 때문인 거 맞음. 백선엽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 하지만 념글 쓴 새끼는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생략하여 모든 책임을 백선엽에게 떠넘기고 있으며 다부동 전투의 의의를 필요 이하로 격하하고 있음.


그리고 그 새끼가 구판 한국전쟁사 참고한 것 같은데 당연히 나도 신판 6.25 전쟁사 뿐만 아니라 그 구판 공간사, 한국전쟁전투사 다부동 전투편 참고했다.


아래 캡쳐는 부관참시할 념글 캡쳐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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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암산과 유학산 전투가 다부동 전투의 알파요, 오메가인가?


좆까고 당시 전투 지도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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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동 전투 당시, 1사단은 왜관 방면, 328고지 일대에 15연대(좌측)를, 수암산과 유학산 일대에 12연대(중앙)를, 다부동으로 진입할 수 있는 신주막 방면에 11연대(우측)을 배치하고 싸웠음.


념글 그 새끼는 12연대만 엄청나게 싸운 걸로 묘사하지만 실제 3개 연대 모두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 15연대는 북한군 3사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았고 12연대는 북한군 15사단, 11연대는 북한군 13사단의 공격을 받았음.


다시 쓰지만 1사단은 수암산과 유학산에서 불필요한 희생을 너무 많이 치렀음. 허나 사단 좌우측의 15, 11연대는 손가락만 빨고 있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절대 아니올시다.


1사단 15연대의 경우 328고지에서 공방전 중이었는데 국군 12연대가 무용한 정면공격을 반복한 것처럼 북한군도 15연대를 상대로 똑같은 행위를 하는 중이었음. 다부동 전투에서 육군본부의 장교들이 사상자 보고를 받겠다고 왔다가 시체 썩는 냄새에 놀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에피소드가 바로 이 연대에서 있었음. (증언자: 당시 15연대 3대대장 최병순) 미 1기병사단이 328고지 넘겨 받을 때 시체 정리 안 하면 인수 안 한는다고 한 것도 이 연대에서 벌어졌음. (증언자: 15연대 2대대 작전참모 이종정)


참고로 15연대는 사단 예비로 1개 대대를 넘겼기 때문에 2개 대대만으로 328고지 등에서 싸웠음.


그리고 1사단 11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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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연대가 담당한 신주막 일대는 상주와 안동의 도로가 합쳐지고 다부동을 거쳐 대구로 가는 중요 기동로였음. 이걸 북한이 가만 놔뒀겠음?


북한군 13사단은 전차 집중 보급으로 전투력을 회복한 전차연대를 동원해 보전 협동 공격으로 국군 11연대를 밀어냈음. 이 과정에서 일부 부대가 고립되기까지 하였으며 다부동으로 가는 길이 열릴 뻔 했음. 또한 8월 18일에는 이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이 대구역에 박격포 공격을 가했고 20일에는 국군 1사단사령부를 습격하기도 했음.


이 구멍은 백선엽 혼자 못 막았음. 국군 11연대는 사단 유일 예비인 이미 15연대 2대대를 받은 상태였지만, 이들은 고립된 국군 부대를 구원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음. 지원받은 포병은 105mm 1개 포대가 전부였고, 대전차전 수단은 새로 지급받은 3.5인치 로켓포 뿐.


결국 해당 방면으로 미 8군이 미 23연대와 27연대를 급파하고 천평계곡에서 북한군 전차들과 교전해 격파하는 것으로 위기를 해결했음. 육본에서도 8사단 10연대를 파견하여 1사단의 우측방을 보강해주었음.


그러고도 8월 내내 11연대는 북한군에게 두들겨 맞았는데, 15연대가 시신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11연대에선 사단장 돌격 에피소드가 있음.


념글 쓴 새끼는 낙동강 방어전 기간 모든 전투가 위급했고 의의가 큰데, 정작 다부동 전투만 부각받는다고 비판하였으나 정작 자기야말로 다부동 전투에서 12연대의 수암산, 유학산 전투만 부각하고 11연대와 15연대의 분전과 전공은 싸그리 무시하고 있음.


그리고 사상자에 대해서도 그 새끼 주장은 유학산에서 최소 2,300명이 전사했다고 하는데, 빼박 뇌피셜인 것이 구판 한국전쟁사, 한국전쟁 전투사, 신판 6.25 전쟁사 모두 그런 수치가 적혀있지 않음.


https://www.google.com/search?q=%EB%8B%A4%EB%B6%80%EB%8F%99+%EC%A0%84%ED%88%AC+2300%EB%AA%85&bih=912&biw=1920&hl=ko&ei=TUTCZKOkI5eH-Qal1JyYAQ&ved=0ahUKEwjj_uK11K6AAxWXQ94KHSUqBxMQ4dUDCA8&uact=5&oq=%EB%8B%A4%EB%B6%80%EB%8F%99+%EC%A0%84%ED%88%AC+2300%EB%AA%85&gs_lp=Egxnd3Mtd2l6LXNlcnAiGOuLpOu2gOuPmSDsoITtiKwgMjMwMOuqhTIIECEYoAEYwwRIjQNQLlgucAF4AZABAJgBlAGgAZQBqgEDMC4xuAEDyAEA-AEBwgIKEAAYRxjWBBiwA-IDBBgAIEGIBgGQBgo&sclient=gws-wiz-serp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30627/119969471/1

죽미령에서 다부동까지 ‘피(血)로 버틴 지연작전’[정전 70년, 끝나지 않은 6·25]

경기 오산시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전투가 벌어진 1950년 7월 5일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15분까지를 표시한 시계 조형물이다. 당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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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2,300명 전사 운운은 다부동 전투 전체 전사자에 대한 수치였는데 인터넷에서 유학산 전투에 관한 것으로 바꿔치기 당한 걸 념글 그 새끼가 무지성으로 우라까이했다 추정됨.


다만 유학산 전투 관련 증언을 보면 실제 전사자 수치는 그 새끼 주장보다 더 암울함. 12연대 부연대장 김점곤은 유학산 일대 전투로 연대에서 3,000명의 손실이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거든.


1사단이 낙동강 연안에서부터 다부동까지 입은 손실은 기록의 미비로 정확한 산정이 되지 않으나 추정상 10,000명의 손실이 있었다고 신판 6.25 전쟁사에서 추정하고 있음. 이마저도 배속부대의 손실이나 노무자 및 현재 입대한 무명용사의 희생은 제외되어 있으니 더 클 것으로 보임.


그 새끼가 말한 '유학산에서 다부동 전투 사상자의 대부분이 발생했다' 또한 뇌피셜이라 보면 됨.





씻팔 밥 먹고 2탄 마저 쓸테니까 그때까지 글 살려줘 완장들아 제발


그 ㅈ같은 놈 부관참시는 완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