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3492178
삭제된 념글 부관참시하기 1 (다부동 전투)아까 갤에 백선엽 다부동 전투 관련으로 엉망진창 념글 하나 가 있던데완장이 삭제해 버렸지만 내 부관참시 하고 싶은 마음이라 차단당할 각오하고 저격 날린다념글 쓴 새끼 이미 댓글에서 빤스런쳤는데 여기서도 빤스런쳤으면 7gall.dcinside.com이거 이어서 씀.
https://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chLHDustIyEJ:https://m.dcinside.com/board/war/3491284%3Frecommend%3D1&cd=9&hl=ko&ct=clnk&gl=kr
저격 대상 념글 (현재 삭제됨)
이전 글에서 까먹고 못 쓴 것부터 일단 마저 쓰자면,
Q) 수암산, 유학산 일대를 조기에 점령했으면 다부동 전투도 여유롭게 싸울 수 있지 않았음? (실제 그 념글 쓴 새끼가 읊어대던 주장)
A) 15연대는 12연대가 수암산, 유학산 상실하고 덩달아 517고지까지 잃는 바람에 후방 보급로가 잠시 차단되기도 했으니 영향을 받은 건 맞음. 하지만 12연대 방어전면이 15연대나 11연대보다 넒은 상황에서 누굴 직접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으리라 보임? 그리고 신주막 방면의 11연대에게 필요했던 건 병력 뿐만 아니라 북한군의 보전협동을 저지할 기갑과 포병이었음. 국군 1사단은 당시 소총부터 사단 포병까지 장비 부족에 시달려 적 무기 수거해서 쓸 지경이었는데 몸으로 떼우면 적이 탄복해서 물러가나?
위와 같은 식으로 따져 물었더니 화염병, 수류탄으로 대전차공격 하라고 응수하는 념글 그 새끼 인성 보소?
여튼, 신주막에서 벌어지는 위기에 대해 미 8군에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니 미군 2개 연대를 증파하면서 기갑부대와 1개 포병연대를 붙였고, 볼링앨리 전투 등을 치르며 1사단 우일선을 안정화시켰던 것임. 념글 그 새끼는 11연대 문제도 백선엽 탓으로 돌릴지 모르겠는데 후술하겠다만 당시 국군 1사단의 방어정면 문제는 (그 새끼가 참고했다고 하지만 실제론 쳐보지 않았을) 구 공간사와 전투사에서도 언급된다.
그리고... 그 새끼는 지도 하나 안 보고 유학산이 남쪽에서 공격하기 어렵고, 북쪽은 한결 수월하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거 실화? 북한군이 요충지인 유학산 잘도 놔두겠다 그치?
Q) 왜 백선엽과 1사단은 수암산과 유학산을 어이없이 상실했나?
누가 꺼라위키 다부동 전투 항목에다 구 공간사와 전투사, 그리고 논문 몇 개를 박아버리는 수고를 해서 사실 그 항목을 봐도 상관없음. 오히려 내용이 진짜 알차다고 생각하는 항목 중 하나임.
문제는 념글 그 새끼가 꺼라위키 다부동 전투 항목을 보고 지 좆대로 왜곡해서 글을 쓴 탓에 이를 되짚는 겸, 그리고 당시 국군 1사단의 다른 문제도 하나 짚고 넘어가는 겸 쓰겠음.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 위 지도를 올림. 8월부터 9월까지의 전투를 모두 담아서 방어선이나 전투지경선이 보기에 지저분할 수 있는데
1) 8월 초, 1사단이 낙동강 연안에서 도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할 때 : 낙정리부터 왜관까지의 구간을 담당
2) 주저항선 전투 : 다부동 북쪽에 그려진 방어선(푸른색, 2차방어선, 이름하여 Y선)
3) 9월에 미 1기병사단과 구역 교대 : 1사단은 우측의 가산, 팔공산 방면으로 이동
이렇게 구분하고 보면 됨)
념글 그 새끼는 "12연대 1대대와 3대대가 유학산을 점령했는데 백선엽이 8월 13일에 철수시켰다"라고 썼으나 실제 12연대 1대대는 12일과 13일 사이 유학산 2봉을 점령한 적 없음. 아마 13일에 계획대로 유학산 주봉에 배치된 12연대 3대대의 경우와 섞어서 사실을 왜곡하려는 심산 같은데 12연대 1대대가 개좆되는 과정을 서술하면 아래와 같음.
8월 초 ~ 12일 사이, 12연대 1대대는 해평(위 지도 1)의 방어선 중 가운데)에 배치, 낙동강을 도하하려는 북한군을 상대로 하천방어를 실시.
8월 12일 20시 경, 작전명령에 따라 사단 주저항선으로 후퇴하기 시작함.
8월 13일 아침, 유학산 근처를 지나 사단사령부가 있는 동명국민학교로 향함. 이때 유학산을 바로 점령하자는 부연대장의 제안에도 사단은 엄호부대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하였음. (대대장의 제안도 마찬가지로 각하됨)
(*이 사이 북한군이 유학산 2봉을 점령)
8월 13일 12시 경, 12연대 1대대는 사단사령부에 도착.
8월 13일 14시 경, 북한군이 유학산 2봉(837고지)을 점령한 사실을 안 사단장 백선엽이 대대장에게 고지 점령을 지시. 대대장은 "아침에 행군할 때 직접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에는 못하게 하고 이제 와서 공격하라면 어떻게 됩니까"라며 사단장에게 분통을 터뜨림.
그 새끼 주장만큼은 아니여도 12연대 1대대가 굳이 사단사령부까지 남하했다가 다시 재정비하고 유학산으로 가는 과정은 구 공간사와 전투사 모두 아낌없이 비판하고 있는 부분임.
그럼 백선엽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건 좆까쇼.
육군본부: "1사단은 8월 12일, 13일 야음에 동지구 X선으로 전진하라. 13, 14일 야간에 Y선(사단 주저항선, 유학산 등이 있는 곳)으로 전진할 준비를 한다." (육본 작전명령 119호)
2군단: "당군단은 인접부대와 밀접한 협조하에 강력한 엄호부대에 의하여 Y선에 진지를 점령하려 함.", "사단장은 미 1기병사단과 긴밀한 협조하에 X일(12일) 22:00 행동개시. 상림동~다부동을 거쳐 Y선에 진주하라." (2군단 작전명령 12호)
구 공간사는 단지 1사단장 백선엽이 무지성으로 12연대 1대대를 뺑뺑이 돌렸다고 까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배경에 육본과 2군단이 작전명령을 개좆같이 내렸다는 사실도 지적함.
육본 명령대로 하면 13일과 14일 사이에 Y선을 점령하라는 건데 북한군은 이미 13일 정오 전후로 Y선까지 진출한 상태였음. 백선엽이 이 작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12연대 1대대를 일단 사단사령부까지 이동시켜 재편성하려던 거 아니냐고 구 공간사는 추측하고 있음. (한국전쟁사 3권 p169~170)
그리고 2군단장 유재흥도 할 말이 없는 게 군단이 사단의 철수로를 불필요하게 통제해 버렸음. 12연대 1대대가 굳이 사단사령부까지 내려간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군단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임. 거기다 유재흥은 Y선 점령을 위해 엄호부대를 운용하겠다고 작명에 써놨으나, 실제 파견된 부대는 없었음. (위와 같은 책 p169~170) 물론 해당 작명에선 각 연대별로 1개 대대씩 엄호부대로 삼아 전선에 잔치하라 했다만, 1사단은 철수 엄호를 위해 사단 유일 예비인 15연대 2대대만을 투입한 상황이었음.
백선엽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음. 구 공간사의 비판은 정리하면, "하란다고 진짜 하냐?" "(엄호부대)보내준다는 걸 진짜 믿었냐?"로 정리할 수 있음. 12연대 부연대장이 1대대를 유학산으로 바로 보내겠다 건의하였음에도 육본의 작명을 따르느라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혹은 2군단의 엄호부대 지원을 곧이곧대로 믿고 사단 예비를 1개 대대만 놔두고 저지진지는 구축하지 않는 바람에 12연대 1대대를 위한 엄호가 불가능해졌거나, 이 둘 중 하나는 피할 수 없는 그의 실책임.
만약 백선엽이 각 연대별로 철수작전에 대해 부대 엄호를 세분화하여 12연대의 대대들이 먼저 철수하여 유학산 일대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이후 11연대와 15연대를 철수시키는 식으로 축차적 진지 변환을 대안으로 내놓는 의견도 전에 본 적 있었는데...
위 지도를 다시 보자.
낙동강 연안 전투 당시 1사단의 방어선은 남북으로 조오오온나 길다. 길이만 해도 대략 40km. 원래는 이렇게까지 길지 않았지만, 미 25사단이 마산 방면으로 치고 들어온 북한군 막는다고 책임구역을 1사단에 떠넘긴 통에 이 따위로 늘어난 거.
참고로 2차대전 미군 사단의 방어정면은 8~13km, 미군 사단 정원은 대략 15,000명. 그리고 8월 초 국군 1사단의 병력은 7,300여 명.
막을 곳은 존나 길고 병력은 적고 심지어 장비도 후달리는 상황에서 아무리 전과를 세워봤자 북한군은 일부 도하에 성공해버렸고, 다른 일부는 우회해서 1사단 측후방을 위협하려 하고 있었음. 이 상황에서 방어정면을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주저항선으로의 후퇴는 필수불가결이었지만 접적을 끊고 무사히 안착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봐야 함.
결과가 처참하고 실책이 분명하기에 백선엽이든 누구든 비판을 피할 수 없음. 그런데 념글 그 새끼가 떠들듯 쉽게 케이크 잘라먹듯 할 수 있었던 걸 못했다고 까는 건 좆같아서 못 봐주겠다 이겁니다.
아 맞다. 념글 그 새끼는 지가 구 공간사(한국전쟁사) 참고했다고 했지만 ㅈㄴ 괘씸한 게 애초에 씨이이이발 구 공간사에선 12연대 1대대장이 부연대장에게 유학산으로 바로 가자고 건의한 내용이 안 나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한국전쟁 전투사 다부동 전투편에 나오는데 그럼 그것까지 참고한 꺼라위키 보고 베낀 거지 암
("후퇴작전계획의 모순: (전략) 연대장의 건의대로 다부동으로 돌지 않고 즉시 동진하여 유학산(제1, 3대대)을 점령하였더라면...." 한국전쟁사 3권 p197)
("이 문제에 있어서 제12연대 부연대장 김점곤 중령은 상황을 판단한 결과 지역내의 중요 감제 고지인 수암산과 유학산을 먼저 점령하여야 한다고 사단에 건의하였으나 이를 먼저 점령할 병력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사 3권 p170)
("대대장은 행군상황을 확인하러 나온 부연대장에게 "이곳에서 곧장 유학산으로 올라가 방어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건의하니..." 한국전쟁 전투사 다부동전투편 p169)
그리고 분량 조절 실패해서 3편도 쓸테니 완장들 제발 한 번만 저격 더 하게 해주십쇼...
간만에 키배 개꿀잼이노 - dc App
밤중에 재밌는 글 읽었다 이 자는 갤의 보배인데수
한번만 더 고생하슈ㅋㅋㅋ
대물 저격총을 들고와서 쏴버리노ㅋㅋ
니가 썼듯이 거기가 방어에 유리한 상황도 아니고 병력이나 장비상황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고지였지만 내주고 후퇴한걸 무조건 오판이었다고 깔 수 없음. 지금같이 위성사진 항공정찰사진 반실시간으로 받아보는 시절도 아니고.
내주고 후퇴한 게 아니라 주저항선으로 빠지는 과정에서 선점해야 할 고지 하나 날리는 바람에 스노우볼 안 좋게 굴러간 거임. 아무리 철수작전이 어렵고, 당시 1사단이 처한 상황이 불리하긴 했어도 어찌됐건 육본부터 2군단장, 1사단장 죄다 까여야 할 사안임. 그렇다고 내가 저격한 그 새끼 마냥 이게 다 백선엽이 지휘 좆같이 해서 그렇다! 이따위로 사실관계 왜곡하면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임.
그냥 상식적으로 저 정도 범위를 저 병력으로 막았으면 무조건 대단한 거임....전투나 전술적으로 실수나 아쉬운 게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무슨 개병신 취급 받으면서 욕 먹을 게 아니라는 거...낙동강 전선 때 워커 중장도 씨발 다 죽자 이 마인드로 가까스로 막은 건데...화력 병력 다 미군 비해 개씹 허벌창인 한국군이 저 전과를 올린 걸 폄하한다? 빨갱이 새끼지 ㅋ
역시 분탕질을 해야 누군가 ㅂㄷㅂㄷ 거리면서 양질의 정보를 올린다는 게 다시 증명됐노
3편 언제 씀
625전쟁사의 진실은 미군들이 가장 잘 알겠지.
친일부역자 군인이 득세하던 그시대의 기록을 순진하게 믿는다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