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nrad von Hötzendorf muss verhindern, dass die Russische Armee ins ungarische Kernland vordringt. Also startet er eine riesige Offensive in den Karpaten -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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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산맥은 대략 100km의 산맥들로 이루어져있으며 평균 높이는 1000m이다. 그렇기에 모든 군대들에게 있어 카르파티아 산맥은 어마어마한 자연장애물이다.
매우 적은 도로나 철도만이 있을 뿐이고 산 위는 항상 춥고 안개가 끼며 좀만 따듯해지면 11월부터 봄까지 쌓인 눈이 녹으며 홍수가 일어난다.
이곳에서의 전쟁수행은 정말 어렵다. 병사들은 이곳에서의 전투를 위해 특별훈련을 받고 특별한 장비로 무장해야하며 병력과 물자수송에 큰 차질생길 수 있으며 대포는 무게와 지형조건 때문에 대부분 사용할 수 없다.
이러한 조건에서 오헝제국은 1월 23일 이곳에서 러시아에 대한 대공세를 시작하였다.
오헝제국군 참모총장 콘라드 폰 회첸도르프가 작전을 계획했다.
그는 오헝제국의 힘을 확인시켜 당시 중립국이었던 이탈리아나 루마니아의 참전을 막기 위해 러시아에 대한 대승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틀린 말은 아닌게 지금까지 오헝제국 카이저의 군대는 전투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해있었다.
예전에 그들은 11월, 12월에 있었던 두번 째 세르비아 침공 때 출발은 좋았으나 곧바로 세르비아군에게 대패를 하여 체면이 크게 실추 되었다.
당연히 오헝제국군의 군사적 위상은 남아나질 않았다.
현재 오헝군 일부는 프세미시우에 포위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이 10만명의 병사를 잃을 경우 곧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또 다른 주 임무는 저 포위망을 뚫어 포위병력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제 3군은 150km짜리 북쪽 카르파티아에서 공격하고 3개 독일군사단의 지원과 함께 새로 결성된 남부군은 러시아군의 가장 왼쪽 측면을 공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총 17만의 병력으로 작전을 수행했으나 상황이 오헝제국군에게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
그들의 첫번째 목표인 통신, 도로교착점인 사녹, 레스코, 메질라보르체와 주변의 기차역들을 점령하는 것이었는데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계획이 처음부터 완전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훨씬 약한 러시아군을 상대하였기 오헝제국군은 어쨋든 잘 나아갔다.
1월 26일 회첸도르프의 군대는 올해 초부터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었던 우쇼프 협로를 확보했다. 이렇게 제 3군의 전선은 100km로 늘어났고 두클라 협로에서 우쇼프 협로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곧바로 러시아군을 공격했으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상악화로 인해 오헝제국군의 계획이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다시 러시아가 두클라 협로를 차지하고 가까이 있는 철도거점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프세미시우에 포위되어있는 병력을 구출하는 목표도 그 주에는 달성하지 못했다. 프세미시우까지는 아직 100km나 남아있었다.
양쪽 모두 소소한 승리와 패배가 있었고 결국 러시아군은 주말에 다시 후퇴했다.
오헝제국군의 큰 문제점들 중 하나는 예비군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군대들과 달리 오헝제국군은 병사들을 교대시켜주질 못했다. 결국 10만여명의 병사들은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될 때까지 그들의 초소를 떠나지 못했다. 여기서 실종이란 보통 어디선가 얼어죽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는 반대로 러시아의 시베리아군은 충분한 예비병력이 있었고 병사들은 추운 날씨에 이미 적응이 되어있다. 놀랍게도 러시아군이 더 잘 운영되어지고 있었고 전략적인 우위에 있었다. 심지어 러시아 대포 마저도 오헝제국군의 대포보다 더 강력했다.
고작 2주 후에 오헝제국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이 겨울 공세로 17만 5천명 중 8만 8천 9백명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격작전은 계속 되었다.
또한 오헝제국군은 겨울공세 때 그들의 엄청난 문제점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전혀 통합작전 능력이 결여된 공격하고 있다.
한 전투부대가 옆부대에 알리지도 않고 단독으로 공격을 한다던지 지휘관이 통합된 공격작전을 위해 내려진 명령을 이미 다 지나가버릴 때까지 무시하는 일이 생겨났다. 러시아군이 하는 모든 일들은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충분히 무장되어있지 않은 오헝제국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래도 병사들이 막상 실전에 나가면 꽤나 잘 싸웠다. 2월 6일 오헝제국군은 다시 킴포룽을 점령했으며 다음날에 부코비나를 점령했다.
주말에 온도는 -20도까지 떨어졌으며 양쪽 진영에선 더 많은 병사들을 투입시켰다. 전투는 더욱 격화되었지만 오헝제국은 이미 10만명 이상의 병사를 잃었다. 그리고 프세미시우에는 여전히 10만의 병사들이 몇달째 구원군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2월 12일 오헝제국군은 계속해서 동갈리치아로 진격. 체르노비치를 점령하였다. 5일 뒤 놀랍게도 러시아군은 동부 카르파티아에서 쫒겨났다.
그러나 이 전과는 오래가질 못했다. 오헝제국군의 병사가 얼마나 용감한지는 관계없이 이 공격탬포를 유지하지 못했다.
겨울공세는 점점 멈추기 시작했다. 전쟁은 점점 장기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음에도 프세미시우에 포위되어있는 병력들을 구출한다는 것이나 이탈리아나 루마니아의 참전을 저지하기 위해 러시아군에게서 커다란 승리 거둔다는 두 개의 목적 중 무엇 하나도 이루질 못했다.
그 대신 오헝제국은 그들의 75퍼센트의 병력을 잃어버렸다. 이 들 중 대부분은 전투가 아닌 질병이나 동상으로 사망하였다. 몇몇 병사들은 이러한 상황을 못 견디고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능력있는 장군이었던 스베토자르 보로에비치 장군은 다시 자신들의 병사를 충분한 준비 없이 겨울공세로 몰아넣었다고 불평을 했다.
그러나 참모총장인 회첸도르프는 그저 장군들을 교체하고 제 2차 대공세를 명령하였다.
새로 조직된 군대는 독일전선에 배속되었던 에두아르드 폰 뵘 에르몰리가 지휘하였다. 그는 1차 대공세로 인해 지쳐있는 6000명의 제 3군과 3개사단을 지원받았다. 합스부르크의 제7군단도 발칸반도에서 이곳 카르파티아로 이동했다.
그들은 다시 러시아군을 두클라 협로와 우쇼프 협로에서 몰아내고 사녹, 레스코, 솜보르의 기차역을 확보해야했다.
이번 2차 공세는 제 1차 때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제 1차 때는 전선이 너무 넒었으나 이번 2차 때는 20km짜리 전선을 집중공격하기로 했다.
정치적 압박은 강해져만간다. 그동안 프세미시우에 포위되어 있는 10만명은 식량부족을 겪고 있다. 2월 25일에 계획되었던 공격은 기상악화와 열악한 도로로 인해 전선으로 가는 도로는 막혀버렸다. 도로수리는 불가능했고 여전히 낮은 기온으로 인한 질병환자들은 넘쳐난 상황이었다. 그러나 공격계획은 2월말에 계속 시행되었다.
러시아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 전략적인 후퇴를 시작했다. 오헝제국의 안 그래도 부실했던 보급선은 길어져만갔다.
오헝제국군은 병사들의 통제를 점점 상실해갔으나 계속해서 지원병력을 보냈다. 그러나 곧 러시아군은 오헝제국군의 좌측과 중앙전선을 무너뜨렸고 오헝제국군은 이런 패닉상황에서 계속해서 지원병력을 구멍난 전선에다가 무모하게 밀어넣었다. 이로인해 카르파니아의 모든 전선에서 병사들은 폭탄사료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공격작전은 며칠간 지속되었으나 오헝제국군은 매일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주말에 결국 러시아군은 비스트리차강을 건너 오헝제국군의 오른쪽 측면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3월 중순까지 오헝제국군은 전 병력의 삼분의 일인 5만명의 병력을 잃었다. 이러한 커다란 소모는 포병의 지원없이 러시아의 강력한 방어선에 병사들을 돌격시켜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군은 결국 스몰릭에 위치한 오헝제국군의 기지까지 파괴시켰다.
그러나 콘라드 폰 회첸도르프는 3월 16일 또 다시 제 3차 공세를 명령했다.
한편 3월 19일 몇 달 동안 말고기와 나무껍질로 연명하고 있던 프세미시우에 포위병력들은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많은 사상자를 내고 처절하게 실패하였다.
이 탈출작전은 애초에 성공가능성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첸도르프는 전문을 보내 오헝제국군의 명예를 지키기위해 탈출을 할 것을 명령했었다. 그러나 이 이 전문은 러시아 측에도 넘어갔었고 러시아군은 이미 이 모든 탈출계획을 알고 있었다.
3월 23일 포위되었던 오헝제국들의 병력이 결국 러시아에 항복하였다. 12만6천명이 포로로 잡혔고 700문의 중포가 러시아군에게 노획되었다. 이로서 포위하고 있었던 러시아의 3개 군단이 카파티아 전선으로 투입될 수 있었다.
러시아의 이바노프장군은 이 새로운 병력을 가지고 산맥을 빠져나와 헝가리로 진군하기 위해 공세계획을 세웠다.
오헝의 제 2군은 여전히 항복소식을 알지 못한 채 며칠 뒤 존재하지도 않은 포위병력들을 구원하기 위해 무의미한 공격을 실시했다. 물론 공격은 성공하지 못하고 또 다시 병력만 소모시키게 되었다.
결국 회첸도르프는 자신의 포위병력 구원작전이 실패했고 자신의 병력이 완전히 전멸했다는 것을 인정하게된다.
오헝제국군의 겨울공세는 13만명의 병력을 구원하기 위해 80만의 병력을 소모시켰다.
회첸도르프의 완벽하지 않았던 계획과 작전지휘는 결국 독일군이 합스부르크의 군대에 대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러시아군의 공세가 시작되었으며 3월 25일 루코프 협로를 점령하고 5700여명의 포로와 그 다음날 2500명의 포로를 추가로 잡았다. 그 주에만 러시아군은 만명 이상의 오헝제국군 포로를 잡아들였다.
그 뒤 오헝제국군의 무능을 목격한 이탈리아는 대사관을 빈에서 철수시키고 연합군에 합류하여 참전하게된다.
이걸 보니 동부전선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 읽고 싶네
고요한 돈강 1부가 동부전선 이야기임 - dc App
오호 관련 문학작품 번역도 나왔군 thanks
1머전 오헝제국군 관련 문학에 관심있으면 라데츠키 행진곡도 읽어보셈ㅇㅇ
전쟁 초반에 갈리치아, 카르파티아 전선 말아먹고 5월에 독일에몽 불러서 겨우 수복함 ㅋㅋㅋ - dc App
오헝도 외통수인게 겨우 숨 돌리니깐 이탈리아가 통수치고 이탈리아에 공세 할려고 동부에서 병력 빼니깐 브루실로프 공세 당해서 병신됨 ㅜㅜ. 결국 이게 다 동맹국의 외1교전 폭망 때문으로 볼 수 있는데1차대전을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싹다 구속시킬 세르비안 씹새끼들이랑 러시아랑 관계 파탄 내버린 빌헬름 2세가 제국 해체의 원흉임 - dc App
물론 근 십수년간 조용하게 나라 망친 요제프 영감탱이 책임이 제일 크지만 - dc App
콘라드 폰 회첸도르프 이 양반도 진짜 최악이었는데 전후에 명장이라고 빨렸다가 나중에야 재평가돼서 까인 케이스. 전쟁 초기 갈리치카 카르파디아 전역에서 그나마 멀쩡하던 군사력을 송두리째 날려먹어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 피해를 전쟁 끝날때 까지 복구 못함. 새로 참전한 이탈리아가 이손초에서 콘라드가 나폴레옹으로 보일 수준으로 참담한 수준이었던 게 불행 중 다
존나 못싸우는 열강 최약체 맞구만 오헝 제국군 과소평가 되었다고 하는 애들은 뭐임?
2머전 ㅈ탈보단 나아서...?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