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390년, 대족장 브렌누스가 골족 대군세를 이끌고 로마를 건국 이래 최초로 완전히 유린,
카피톨리노 언덕에 살아남은 로마인들에게서 몸값으로 엄청난 금을 뜯어내며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트라우마가 된 일갈 - "패자는 비참하도다! Vae victis"를 남긴 이래로
기원전 52년 카이사르가 알레시아 전투에서 마침내 갈리아를 정복할 때까지
켈트족 - 특히 갈리아의 골족 - 은 실로 한니발의 카르타고를 제외하면, 3세기 반 동안 로마 제일의 숙적이었다.
그런 켈트족을 상징하는 무기는 길이 75~90cm의 "베는" 켈트 장검이었다.
물론 골족은 헬베티족처럼 길이가 최대 3.6m에 달하는 장창으로 밀집방진 전술을 구사하기도 했고,
갈리아 원정기에서 카이사르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투창과 투석 등 골족의 투사무기에 대해 여러 번 인상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평소에는 농민과 소작농들인 부족민병들과는 달리, 골족 군대의 중추인 켈트 귀족전사들
- 카이사르는 원정기에서 이들을 로마의 에퀴테스(기사계급)에 비유했다 - 의 주무기는 역시
용감하고 가치있는 적의 목을 베어, 삼나무 기름에 담궈 평생 자랑할만한 트로피로 만들 장검이었다.
칸나이 전투에서 명장 한니발은, 카르타고 원정군 중앙의 켈트족 - 이베리아인(스페인) 혼성 보병대로 하여금
검으로 "베는"공격을 주로 하는 켈트 전사들과, "찌르는" 공격을 주로 하는 이베리아 병사들이
절묘하게 교대해가며 로마군을 상대하게 해, 계속 바뀌는 적의 패턴에 로마군들이 당황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말에 탄 기병이나, 키가 큰 편인 골족들 중에서도 특히 덩치가 좋은 도보 귀족전사가 사용하기 가장 알맞도록
켈트 장검은 길고도 넒적하며 묵직하게 디자인되어, 말에 탄 채 높은 곳에서 힘센 팔로 휘두르면
가공할 위력으로 적을 베어버릴 수 있었으며, 필요하다면 기병전에서 긴 리치를 활용해 적 기병을 찌를 수도 있었다.
켈트 신들과 정령들께서 검에 힘과 축복을 내려주시길 기원하며, 주머니 사정에 여유가 있는 켈트 전사들은
특히 칼자루에 사람 모양의 주술적 조각을 새기기도 했다.
그런데 나무위키에서는 켈트족의 용감함과는 별개로 켈트 검은 순 개복치급 개쓰레기라,
로마군에게 결국 굴복하는 패인이 되었다고 나온다.
사스가 킹무갓키라고 비웃으려는 게 아니라, 엄연히 근거는 다 있는 서술이다.
그리스 출신 위대한 역사가 폴리비오스 같은 당대 역사가들이, 골족의 검은 기술력 부족으로 담금질이 잘못되어
무르고 형편없는 물건이었기에, 튼튼하게 보강된 로마군의 방패와 투구 앞에서는
기세 좋게 내리쳐봤자 툭하면 휘어지는 쓰레기였다는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고고학적 발굴 및 분석 결과, 적어도 켈트군의 귀족전사들이 쓰는 장검들은
대부분 기록과는 전혀 달리, 로마군의 글라디우스 검에도 딱히 뒤떨어질 게 없는 고품질의 강철로 만들어져
무기로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만큼 튼튼하고 날카로웠다는 게 밝혀졌다.
기원전 3세기경의 켈트 고분들에서 휘어진 검들이 출토되기도 하긴 했는데
연구 결과 이 검들은 멀쩡한 칼을 "일부러" 구부러뜨려서 묻은 것으로 드러났다.
켈트족들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마치 이영도좌 소설의 레콘 종족이 "납병례"를 행하듯
전사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아 켈트 만신전과 선조들이 계시는 낙원에 들었으니
그가 생전에 쓰던 검도 "죽여서 순장"함으로서 전사의 곁으로 보내는 의식을 거행했던 게 아닌가? 라고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실 따져보면 켈트검 = 개복치라는 기록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니발 원정군의 태반이자, 칸나이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모루 노릇을 맡곤 했던 게 바로 켈트 전사들인데
켈트검이 그런 개쓰레기였다면 한니발이 망치와 모루 전술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모루"가 로마군과 부딪치는 족족 빠개지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당시 로마 군단병들의 주요 투구였던 "쿨루스형 투구"와
로마군 하면 떠올리는 그 갑옷인 "로리카 세그멘티타" 보다 오히려 훨씬 널리, 오래 쓰인 사슬갑옷 "로리카 하마타"도
알고보면 다름아닌 골족의 투구와 갑옷에게서 기원한 것인데
갑옷은 로마군도 모방할 정도로 훌륭하게 만들면서, 칼"만" 도무지 못써먹을 개복치다? 납득이 안가는 이야기다.
실은 '우가우가 야만족들이 쓰는 무기인데 당연히 병신같이 만들었겠지' 부터가 편견인게
일단 골족들은 통일되지 못한 부족사회 단위라서 그렇지, 그들의 도시를 짓고, 농업과 광업 같은 산업을 일구고,
로마를 비롯한 다른 문명권들과 수백 년간 교역을 해온 나름 엄연히 문명인들이었다.
조악한 비유지만, 당장 무수한 소국들이 난립했던 초기 삼국시대 한반도인들이라고 결코 그저 '우가우가'들은 아니었듯 말이다.
애초에 로마군의 상징 중 하나인 글라디우스 검도 정식 명칭은 "글라디우스 히스파니엔시스" - "스페인 검"으로
스페인 원주민들이 쓰던 검의 위력에 주목한 로마군이 과감하게 제식무기로 채택한건데, 과연 원주민 검 = 쓰레기일까?
그렇다면 폴리비오스 같은 이들은 왜 켈트검 = 개복치라는 기록을 남겼던 것일까?
"로마의 가세연" 수에토니우스 같은 놈이 남긴 기록이면 이새끼는 하여간 숨쉴때마다 구라가 나와 하고 넘기면 그만이겠지만
그가 사적으로 큰 은혜를 입은 스키피오 가문을 위한 혼신의 인간비데쇼만 거른다면
리비우스 같은 다른 역사가들의 기록과 엇갈리면, 일단 폴리비오스를 믿는 게 정배라는 평까지 받을 정도로
위대한 1티어 역사가가 이런 찐빠를 남겼으니 말이다.
이 문단은 어디까지나 군붕이의 K-시오노 뇌피셜 망상인데,
아마 "평균의 함정" 때문에 이런 기록이 남지 않았을까 한다.
사실 "켈트족"이란 애초에 영국에서부터 터키 중부까지 온 유럽에 퍼져 있던 무수한 부족들을
유사한 언어, 문화, 종교를 공유하기에 일단 하나로 묶는 개념이지, 통일국가는커녕 단일민족이었던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무수한 켈트 부족들 중에선 후 놈들의 검은 켈트족 최약체...실로 켈트족의 수치...수준으로
유난히 켈트 평균보다 기술력이 몹시 후달리는 부족들도 있었을 법하고
폴리비오스 같은 역사가들은, 바로 이런 부족들과 싸웠을 때의 로마군의 경험담을 기록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순 군붕이 뇌내망상에 불과하고, 분명한 사실은 어디까지나
"기록에서는 켈트족 검이 툭하면 휘는 개복치지만, 고고학적 발굴결과 실제론 충분히 튼튼한 검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에 장점만 있는 무기란 건 없게 마련이고, 개복치 괴담과는 별개로 켈트 검에도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
로마군을 상대할 때 켈트 장검의 문제는 강도가 아닌 바로 길이였다.
베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켈트 장검을 제대로 휘두르며 그 가공할 위력을 발휘하려면, 그만큼 넓고 충분한 공간이 필요했고
로마군을 상대로 켈트군 보병들의 명예로운 선봉을 맡으며 충격보병 역할을 수행하던 도보 귀족전사들은
자연스럽게 로마군보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대열을 짜고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칸나이 전투에서처럼 공간만 충분하다면야 로마 군단병들을 그라인더처럼 갈아버릴 수 있겠지만
전장 자체가 좁은 곳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거나
대머리 난봉꾼 같은 로마 1티어 명장들의 주특기인 양익포위에 말려들어 대열이 밀집(강제)되어버리면
전사 개개인의 용기나 힘이 문제가 아니라, 검을 제대로 휘두를 공간이 없으니 위력이 개떡락할 수밖에 없고
이런 비좁은 거리에서의 백병전에서 최고의 위력을 발휘하는, 로마 군단병의 짧은 글라디우스에 꼼짝없이 당하곤 했던 것이다.
- KODEF 세계 전쟁사 "로마 전쟁"
오스프리 "칸나이 BC216"
스티븐 콜린스 저 "로마의 전설을 만든 카이사르 군단"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켈트족 : 고대 유럽의 정복자"
카이사르 저, 천병희 역 "갈리아 원정기"
로마군도 시간이 지날수록 칼길이 길어져서 주병기가 손잡이까지 해서 1m짜리 한손검인 스파타로 바뀌는 거 보면 결국은 골족이 무기경쟁에선 이겼다고 봐야...(아레시아 ip)
칼 길어진 이유가 뭐야?
ㄴ1. 수백년동안 똑같은 짓을 하고 살았으니 주변부족이나 국가들이 공략법 찾음. 일부는 로마군 복무자들을 자기네들이 받아서 로마군 체계를파악함. 2. 병력자원 모집이 점점 악화됨. 나중엔 옛날처럼 군단병 보조병 나눠서 모집할 만큼 자원이 풍족하질 않아서 다 합쳤는데도 정원을 못채움. 3. 로마를 상대하던 세력들이 물량전, 기동전으로 대응하다보니 로마가 잘하는 토끼몰이해서 회전유도하고 거기서 이긴다는 것부터가 성립하기 힘듬. 4. 로마군들도 개인이 담당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기동전으로 가다보니 검이 길어지게 됨. 보조무기로 들고다니던 2m 넘는 필룸도 짧고 들고 다니기 편하고 몇 개 더 던질 수 있는 소형화된 물건인 베르툼이나 아예 다트수준으로 줄인 플룸바타를 들고다니기도 함.
옛날처럼 정형화가 되어있지 않으니 기병들은 창 들고 다니는 비중이 높고 보병들도 주병기로 창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음
너야말로 평균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 사실 켈트족들의 검은 당대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기록대로 평균적인 품질이 형편 없었고 현대에 멀쩡한 모습으로 발굴될 정도로 튼튼한 소수의 검들을 보고 그게 켈트족의 평균이라고 너가 착각하는 거지
그럴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