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부터 대숙청이 벌어졌고, 사실 그는 같이 숙청된 투하쳅스키, 블류헤르와는 달리 스탈린과 친했기 때문에 숙청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결국 체포되었다.
그 이유는 일부 독빠들이 주장하듯이 유능한 원수를 숙청하려는 스탈린의 질투가 아니라 여러 다른 이유가 있었다. 먼저 볼셰비키 참여 이전에 제국군 장교로 캅카스에서 노동자 반란을 진압했던데다가(볼셰비키는 노동자 정당임을 공언하고 있었다) 10월 혁명 후 레닌에 의해 불법화된 사회혁명당 경력이 문제가 되었고, 게다가 프룬제 아카데미의 교수나 참모부의 고위 장교들이 그의 지휘력에 문제를 제기하는 편지를 스탈린에게 보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NKVD에 체포된 여러 장교들이 고문에 못이겨 상관도 반역행위를 했다고 허위자백을 했는데, 여기에 예고로프가 오른 것도 치명적이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예고로프가 숙청대상이 된 이유는 1930년 회고록 문제다. 레프 트로츠키 숙청 이후에도 트로츠키가 초대 국방인민위원이자 붉은 군대 창설자인 만큼 군부내에는 트로츠키파 잔당이 많이 남아 있었다. 예고로프는 자꾸 스탈린-남러시아파를 공격하는 투하쳅스키와 트로츠키 잔당-우크라이나파가 소비에트-폴란드 전쟁에서 잘못한 일을 적은 회고록을 썼다. 예고로프는 우선 같은 스탈린 파벌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에게 보여줬는데, 보로실로프는 우리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책을 쓰는건 국가통합에 저해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예고로프는 회고록을 출판했고 스탈린에게 바치는 헌사를 썼다. 그리고 대단위 지휘는 못해도 정치적 감각은 있는 보로실로프가 예상했듯 해묵은 갈등이 다시 불거졌다. 당시 스탈린은 때가 아니라 여기고 가만 있었지만 8년 뒤 '불만이 있으면 중앙위에 나와서 공식적인 절차로 제기해야지 마음에 안든다고 멋대로 갈등을 조장하고 분란을 일으켜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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