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SandRhoman 시리즈
· 지슈카의 움직이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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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garian Dance no. 5Provided to YouTube by The Orchard EnterprisesHungarian Dance no. 5 · BrahmsVictoria Day Celebration℗ 2010 Essential World MastersReleased on: 2010-05-01Musi...youtu.be











헝가리의 검은 군대는 중세후기 매우 강력한 용병부대로 알려져있다.








그 때 당시 헝가리는 북쪽에서 서쪽 남쪽까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헝가리 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는 검은 군대에서 그가 필요로 했던 효율적이고 군기가 잡혀있고 충성으러운 전투병력을 찾게된다.

15세기의 헝가리 왕국은 한가지 문제에 직면해있었다. 14세기 때부터 오스만제국이 확장을 해가며 유럽을 위협해갔고 있었으며 헝가리의 국경까지 닿아있었다.

헝가리는 이 거인에 대항하여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었고 대부분의 전투에서 패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1444년의 바르나 전투에서 유럽 동맹군은 오스만의 확장을 막으려 했으나 패배하였고 4년 뒤인 1448년 헝가리가 이끌었던 군대가 코소보 전투에서 패배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 당시에는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이 오스만이 계속 서쪽으로 치고 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하지만 1453년 술탄 메메드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였고 이로서 동로마제국을 멸망시켰을 뿐 아니라 서쪽으로의 확장의 마지막 장애물 제거하게 되었다.

이제 오스만제국은 베니스 공화국이랑 발칸반도의 왕국들로 이동하였다. 이 왕국들 중에 헝가리도 포함되었다. 








오스만과 헝가리간의 전쟁에서는 보통의 경우 당연히 치뤄야할 커다란 평야에서의 대회전이라던가 공성전은 없었다. 오스만제국 역사 연구가인 콜린 엠버는 보통 소규모의 전투만이 있었다고 한다. 보통 오스만군은 대부분 지역 비정규군으로 이루어진 부대로 도시나 마을 주변을 습격하고 약탈하며 포로를 잡아 노예로 팔았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오스만 귀족들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었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이러한 자잘한 공격에도 커다란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다. 헝가리 왕국에게 엄청난 피해를 내며 물질적 인적피해를 안겨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헝가리는 몇몇 조치들을 취했다. 완충지대를 만들고 요새 방어선을 설치했으며 징병제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기병을 양성하였다.

이러한 개혁들은 검은 군대에서부터 탄생하였다.








1458년 보통 까마귀 마티아스로 잘 알려진 마티아스 훈야디가 헝가리의 왕으로 올랐다. 그리고 그가 권좌에 오른 뒤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남쪽으론 계속해서 오스만이 그의 왕국의 국경선을 압박하고 있었으며 헝가리의 북쪽 땅에서는 후스파 용병 도적단이 체코와 여러 지역을 약탈하고 불지르고 다녔다. 그들은 카톨릭과 귀족에 대항하여 신교도 얀 후스를 따르며 15세기 후스파 전쟁을 일으켰던 후스파군의 잔당들이었다.

그의 세번 째 문제는 몇몇 유력 귀족들이 합스부르크 가문의 프리드리히 3세를 헝가리의 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또한 헝가리 왕위를 주장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헝가리의 슈테판 왕관을 직접 갖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라디슬라브스 포스트무스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폰 룩셈부르크가 그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가 그 왕관을 차지하기 전까진 헝가리 왕의 자리는 안전하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3세는 마티아스에게 그를 압박하기에 아주 좋은 왕관을 건네줄 생각이 없었다.

왕이 된 후 마티아스의 목표는 총 세가지이다. 첫번 째, 왕관을 차지하여 헝가리왕으로서의 정당성을 얻는다. 두번 째, 북쪽의 후스파 잔당들을 진압한다. 세번 째, 남쪽의 오스만을 몰아낸다.

이 세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기존의 헝가리 군대보다 더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을만한 전투부대가 필요했다. 여기서부터 검은 군대가 등장한다.








이 때 당시 헝가리는 반데리움이라 불리는 기사나 무장한 기사종자의 군사조직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귀족이 자신의 형편에 맞게 병사들을 징집하고 무장시키는 것에 기초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지 내에 200가구 중에 한명의 아마 기마도 가능했을 궁수를 징집했다. 이 궁수는 다시 전시에는 밀리치아 프로탈리스라 불리는 전투부대를 구성했다. 이런 시스템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가 있었겠지만 마티아스 시기 동안에는 이 시스템이 유지되었고 실행되었다.

그러나 마티아스는 이런 전통방식의 군대 말고도 그가 전적으로 신뢰할만한 전문군인들이 필요했다.








그가 필요한 것은 북쪽에서 날뛰는 후스파같은 베터랑 군인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를 위해 싸우지 않고 오히려 그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왜냐하면 후스파의 주요 지휘관 중 한명이던 얀 지슈크라가 프리드리히 3세 편에 서있기 때문이다.







마티아스랑 프리드리히가 협상을 하는 동안 오스만은 계속해서 세력을 뻗쳐나가기 시작했다. 마티아스는 빨리 이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만했다. 결국 그는 프리드리히랑 지슈크라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을 해야만 했다. 그는 제정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지만 두가지 문제를 한번에 끝낼 수 있었다. 그는 왕관을 얻었고 지슈크라의 용병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북쪽의 약탈을 멈출 수 있었다. 이 용병단들이 그의 최초의 용병이었고 나중에 검은 군대로 알려지게 된다.







검은 군대는 중기병, 경기병, 총, 석궁병, 근접보병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들은 통일성있는 군대가 아니었는데 병사들은 각자 자신의 무기와 장비를 스스로 챙겨와야했기 때문이다. 병사들은 다양한 지역, 민족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처음엔 대부분 체코, 폴란드, 독일인이었으나 나중엔 대다수가 헝가리인으로 구성되었다.








근접보병엔 경무장한 병사랑 중무장한 병사들이 있었다. 이 중 중무장한 병사는 아르마티라고 불렸다. 그들은 창이나 할베르트로 무장하였다.







아르마티들은 커다란 파비스 방패로 무장한 클리페아티의 지원을 받았다.







마티아스는 이 근접보병들은 요새같은 원형진을 이루고 성벽처럼 전투를 치뤘다고 기록했다.








이 진형은 때에 따리 짦은 무기나 원거리병을 돌격시켜 공격시킬 수 있게도 했고 언제든 다시 원형 안으로 후퇴시킬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후스파의 마차요새나 스위스 용변단의 사각방진을 생각나게 한다.

검은 군대의 이 원형진은 후스파의 마차요새 전술이나 서유럽의 사각방진을 결합한 것이다.

이 원형진은 초기 화약무기의 장점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부대를 방어진형으로 하나가 된 듯이 움직일 수 있었다.








남쪽 오스만과의 전투로 마티아스 통치기간 동안 경기병의 중요도가 올라갔고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냈다. 이들은 후사르라고 불리어졌다. 이들은 예전 발칸반도에 투입된 적이 있었고 오스만의 경기병에 많은 영감을 받은 경기병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창, 랜스, 방패, 석궁, 세이버로 무장하였다. 이들은 국경에서 오스만 경기병이랑 서로 기습전을 치루었지만 항상 작은 전투만을 치른 것은 아니다.








알려진 몇개의 전투 중에 브로드펠트 전투에선 오직 기병들만 전투를 했었다.

마티아스의 편지에서 그가 검은 군대는 2만의 기병과 8천의 보병을로 이루어져있다고 쓰여져있었다. 보통 검은 군대는 보병부대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점은 매우 놀랍다.








하지만 대부분의 보병병력은 북, 서, 남쪽 전선의 요새에서 전선을 지키는데에 사용 되었다. 그들이 야전에 나와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북, 서쪽 전선의 보병들은 매우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때 또 다시 프리드리히와의 군사적 마찰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 북쪽 전선에선 요새포위전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오스만 전선에는 보병들이 적었다. 마티아스 왕은 오스만과의 전쟁 시작 부터 오스만의 주력군을 피하고 싶었고 오스만군의 대부분은 경기병들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마티아스는 주로 북쪽 전선방어에 집중하였고 방어에 성공한다.

마티아스는 1485년 공세를 통해 빈을 포위하고 검은 군대는 결국 빈을 정복하게된다.








마티아스는 사망할 때까지 빈에서 생활하게 된다.

1481년 메메드 2세는 죽고 다음 오스만 왕은 헝가리와의 전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오스만군의 국경주변의 기습은 멈추지 않았으며 마티아스는 계속해서 그 곳을 감시해야만했다.








그렇게 헝가리는 북쪽의 검은 군대 뿐만 아니라 남부전선 방어군과 반데리움부대 모두의 운영비를 일년 내내 계속 지출해야만했다.

이것은 왕국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비용이다. 이 세개의 군대, 특히 검은 군대의 엄청난 유지비는 훗날 마티아스 통치기간 이후 헝가리가 몰락하게된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 비용적 부담은 결코 견딜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래서 헝가리는 검은 군대를 그들의 창조주 마티아스가 사망한지 얼마 안된 1490년에 해체시키게 된다.





https://youtu.be/g3-v1FsG7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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