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개전 이후, 북한의 철도 상황은 처참해졌음.



유엔군의 참전으로 인한 제공권 상실로 유엔군이 철도란 철도는 죄다 폭격해버리는 바람이었는데,



1950년 8월, 개전 이후 두 달만에 유엔군의 폭격으로 북한 경내의 중국 화물차 2200대가 움직이질 못했고, 중국에서도 화물차 13400여 대가 북한으로 못 들어가고 있었음.



동북군구 병참부 부부장 장밍위안이 북한에 가 올린 보고서에서 "적군기가 파멸적인 폭격을 하여…"라고 할 정도였으니 그 수준이 짐작이 갈 거임.  



북한 철도군사관리총국의 집계에 따르면 유엔군은 3년 동안 교량을 1606회 폭격했고, 철도는 15564회, 역전은 3747회, 터널 89회, 기관차 1058대와 차량 12282대를 폭격했음.



숫자가 과장됐을 수는 있으나 3년 동안 북한 철도망이 정말 지긋지긋하게 폭격에 시달렸다는 것은 알 수 있음.



1950년 11월 6일, 철도복구와 철도운송 지원을 위해 중국 철도병사단과 철도직원 총대대가 북한에 투입됨.


1950년 12월 9일에는 동북군구 철도군용운수사령부가 설립됐고, 12월 말에는 철도군사관리국이 설립됨.

1951년 2월 9일, 철도병사단 부사령원 이수헌과 정치부 부주임 천리가 안동에서 입북해 성천군 지석리에  철도병 전방지휘소를 주둔시킴.


1951년 3월 25일, 철도병사단 제3사단이 지안에서 입북하면서 북한에 중국 철도병사단 휘하 3개 사단과 2개 독립단, 총 2만여 명에 달하는 병력이 주둔하게됨.



철도군사관리국의 자체 집계에 따르면 철도복구를 통해 1월 운송 능력이 전월 대비 평균 88% 증가했고, 2월 운송차량은 1월보다 55% 증가,



3월 운수차량은 1월 대비 91% 증가, 4월 운수차량은 4068대에 이르렀다고함.




그런데 중국 철도병사단이 일하는 동안, 이들은 유엔군의 폭격뿐만이 아니라 북한과의 마찰에도 시달렸음.



1951년 3월 7일, 북한 군사교통관리국 이장환이 안주 군사관리국 차무처(車務處)에 화물 적재를 요구했었음.



청천강을 지나갈 106대의 열차 중 81대가 비어져있던 상황이었는데, 사실 청천강 다리가 파괴된 지라 일부러 25대만 화물을 실은 상태였음.



그러나 이장환은 나머지 81대에도 화물을 적재하라고 요구했고, 군사관리국은 이를 거부함.



그러자 3월 9일, 제9023열차가 평안북도 차련관을 지날 때 3명의 경관 차림을 한 이들이 총격을 가한 사건이 터졌고, 열차가 평안북도 용천군의 양시에 도착했을 때도 경위 차림을 한 사람이 승무원을 총으로 위협하며 차량을 파손시켰음.



3월 15일에도 어파-숙천행 제9023열차가 숙천에 도착했을 때 경무관 김봉준이 강압적으로 기관차랑 차량을 분리시켜 숙천역에서 열차를 57분 연착시키기도 함.



그 외에도 중국군이 탄 열차를 강제로 멈춰세우고 인민군이 탄 열차를 먼저 통과시키거나, 군사관리국에게 열차를 대량으로 내놓으라고 강요하면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음.



북한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심해짐에 따라, 결국 소련이 개입해서 양국간



"중조양국관어조선전시군사관제적협의(中朝兩國關於朝鮮戰時軍事管制的協議)"를 체결해 갈등을 해소하고자 함.



이 협의로 션양에 북중 연합 군용운송 사령부가 설치되고, 산하에 철도군사관리총국을 두어 중국 철도병사단과 북한 철도복구기관을 모두 관리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됨.



하지만 협의의 목적은 북한과 중국 사이의 운행배분을 조율하기 위함이었는데,



1952년 2월 2일에도 긴급운송 중이던 제4002호 화물열차를 북한이 군사관리국의 허가 없이 화물을 신안주에 남겨두고 자기네 소금을 대신 실어 운송시킨 사건이 터진 것으로 보아 여전히 북한과 중국 사이에 갈등은 존재했었던 모양임.  

    


한편 이런저런 사건이 있던 와중에도 중국 철도병들은 새빠지게 일했는데,



1952년 12월부터 1953년 1월까지 중국 지원군철도공정대 6개 사단과 철도국 직원 5000명이 입북해 1953년 4월 신설철도 구은선을 깔아준 덕택에 북한은 경의선이 폭격에 박살나도 원활한 운송이 가능해졌음.



철도 말고도 중국은 기관차, 화물차, 열차를 자기네 수량까지 털어주며 지원해줬는데,



수리는 물론이고, 북한이 정전 전 중국에 요청한 기관차 80~100대, 화물차 5000대, 열차 200대 중에 다른 나라에서 구매할 수 있다고 한 열차 100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를 지원해줌.



중국은 이미 국내 기관차 수량이 아슬아슬해지는 상황인데도 이뤄진 지원이었고,



1953년 7월 1일에 김일성이 저우언라이한테 기관차, 화물차, 열차가 태부족이라고 징징거리니까,



1953년 11월 23일  "정전 후 북한철도 복구 지원 의정서"를 맺어서 후에 무려 기관차 70대, 열차 100대, 화물차 3000대를 더 지원해줌.



원래 협정상 2000대만 지원해줘도 되는데 중국 이새끼들이 무슨 명절 손주손녀 배 터질 때까지 밥 먹이는 할머니에 빙의해서 북한한테 화물차 1000대를 더 얹어서 지원해준거임.



6.25 전쟁기 동안 중국 철도지원 인력 중 2198명이 죽고 6389명이 다침. 기관차와 차량 손실도 상당했고, 철도 복구와 차량 수리 등의 비용과 중국은 북한측 철도 이용료까지 내야했음.


하지만 마오쩌둥은 그 모든 손실과 지원을 전부 무상처리했고, 전후 4년동안 또 8만억 위안을 추가로 더 지원해주기로 함.



하여튼 짱깨새끼들은 6.25 전쟁기엔 북한한테 아낌없이 퍼주는 나무였음.



그런데 이렇게 지원해주는 중국 철도병들한테 지랄한 북한놈들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