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에서 조선군이 각잡고 조총사격 하니까 청 기병들 다 쓸려나가서 패배했는데 조선군도 할수있는걸 일본군이 못할리가 있나
일본은 심지어 장창방진도 완벽히 사용 가능했는데
댓글 94
말박이들이 이기긴할듯 일본은 띵나라 못이겼잖아
밀리터리이야기만함(jinpingsissy)2023-08-10 1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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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 근데 그 전에 청나라군이랑 일본군 제대로 붙은적이 없는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2:00
직산 전투보면 왜군은 명 기병에게도 밀리는 모습인데 정작 수만 단위 명 기병 보병이 요양성과 심양성 등지에서 청 팔기병에게 순식간에 무너짐. 왜군은 야전에서 죽어도 청 팔기병 못 이김
익명(220.93)2023-08-10 1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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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 전투에 참전한 몽고기병이 함경도에서 서우신이 이끄는 함경도 병사들 크게 무찌른 거 보면 큰 피해룰 입은 것도 아니고…
임란 병자호란 기준으로 따지면 왜군은 죽어도 팔기병 못이김
익명(220.93)2023-08-10 1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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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직산전투는 그냥 투닥거림 수준이잖아. 사상도 양측 30~40명 수준의 전투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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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벽제관 전투에서는 명나라군 썰렸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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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자야 왜군이 수백은 되는데 고의로 누락한 정황도 있고 무엇보다 명 기병에 왜군이 밀려서 구축 당한 것 자체는 엄연한 ‘사실’임 직산 전투의 사상자가 얼마인지보다 명 기병이 각 잡고 야전에서 붙으면 왜군이 이길 수 없다는 게 중요한겨. 그리고 그런 명 기병 수만이 청군에게 무자비하게 썰린다는 걸 아셔야지
익명(220.93)2023-08-10 1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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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이야 이여송이 대책없이 가병 이끌고 들니밀다가 지형 이용한 왜군에게 습격당해 밀린거고
익명(220.93)2023-08-10 19: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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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 사상자가 누락되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데;; 그리고 밀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게 전투 후에 명나라군도 피해가 컸는지 그대로 한양으로 빤스런함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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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반대로 구로다 나가마사가 대책 없이 북진하다가 직산전투에서 말린건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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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전투는 일방적인 전투로 보기엔 양측 사료 교차 검증이 잘 안되서 애매함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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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측 자료만 봐도 말이 계속 달라져서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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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은 수원으로 퇴각했지 한양 안감. 그리고 수원 퇴각이 피해땜에 빤쓰런 한거면 천안으로 빤쓰런한 일본군은 뭔데?
글쓴 ㅇㅇ(59.29)2023-08-10 1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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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구로다가 대책없이 북진하다 밀렸단 소리 한 적도 없는데 뭔 헛소리냐? 벽제관 전투 관련 자료 좀 찾아보고 말해라.
이여송이 평양 전투 승전 이후에 생각없이 가병만 이끌고 들이민것과 직산 전투에서 양군이 격돌한 것과 같냐?
반박할거면 헛소리로 물타기하지말고 자료 들이밀어
ㅇㅇ 2(220.93)2023-08-10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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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오히려 전투 직후 죽산까지 진격함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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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가 아니라 팩트임. 양측 사료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직산전투는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는게 팩트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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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죽산 루트는 진격한게 아니라 퇴각루트다. 실록에서도 죽산갔다니까 쟤네 왜 퇴각하냐고 비변사에서 회의하는 기록 나옴.
글쓴 ㅇㅇ(59.29)2023-08-10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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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천성 전투에서도 보면 7000명 시마즈군에게 기병 5000명 넘게 보유하던 명나라군 3만명이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울산성 전투에서도 명나라군 기병대가 지원오는 일본군 예비대에게 탈탈 털린적도 있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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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 전투 이후 안성 죽산까지 올라갔는데 뭔 퇴각 루트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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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죽산까지 올라갔다가 히데요시 명으로 철수한거임. 이건 포로가 직접 말한거라 반론의 여지도 없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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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전투 때문에 철수했다는 학설은 이미 폐기 처분된지 오래인데 아직도 이거 밀려고 하네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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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언급했다시피 벽제관 전투는 이여송 뻘짓이니 벽제관 전투가 명 기병과 왜 보병의 우위여부를 가릴 근거는 못 되고
오히려 직산전투 사천성 전투 등 야전에서 왜군이 명 기병에게 몰리는 양상은 있어도 역으로 쌈싸먹는 건 안보이는데?
ㅇㅇ 2(220.93)2023-08-10 19: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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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 전투에서는 왜군이 명나라군 학살한 전투인데 너가 예시로 들고올 전투는 아닌거 같은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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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전 하다가 튀어나간 시마즈군에게 명나라군 개작살난 전투거든. 그 당시 기병 수천명 보유하던 명나라군 3만명이 7000명 시마즈군에게 속절 없이 털림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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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포로증언 아까부터 자꾸 떠드는데 복전감개는 전라도에 머물 생각 없었다고 씨부렸지만 고니시는 순천에 알박았고 다른 포로는 10월 2일까지 모든 장수들 배타고 일본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래서 일본 간 놈 누가 있음?
글쓴 ㅇㅇ(59.29)2023-08-10 19: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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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언급한거야 사천왜성 공성전 일부고 조명연합군 서로군이 사천왜성에 진격하는 과정에서 시마즈군과 야전에서 몇 차례 붙은건 알고 하는 말이냐? 난 야전을 말한건데 넌 왜 공성전 타령만 하냐?
ㅇㅇ 2(220.93)2023-08-10 19: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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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히데요시 칙서에 나오는 내용임. 충청도 약탈하고 겨울 전까지 왜성으로 오라 이게 팩트인데 니가 뭐라고 해도 변하는 내용이 아님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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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요시 칙서보다 니 뇌피셜이 정확한게 아니란 말이지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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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반고닉은 제장명의 사천성 전투 논문을 읽고옵니다^ㅗ^ 방구석 디시인 아니랄까봐 자료는 ㅈ도 안읽어요
ㅇㅇ 2(220.93)2023-08-10 1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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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포로가 떠든 작계는 칠천량 해전 이전에 세워진 초기작계고 그것조차 얼마든 재량권 부여되서 얼마든 장수들 의지대로 움직여도 됐다. 케이넨의 일기와 조선물어의 회의 기사를 봐도 그 당시 일본군 목적은 한양 맞고 그냥 직산에서 군세 꺾여서 안성- 죽산 거쳐 퇴각한거임
글쓴 ㅇㅇ(59.29)2023-08-10 1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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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하다가 시마즈가 튀어나가서 학살한거 알고 하는 말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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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디시인은 너 말하는건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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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 난독 티내는구만 그걸 우린 공성전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꼬우면 내가 제시한 논문 읽고 오라니까?
ㅇㅇ 2(220.93)2023-08-10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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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성은 직산보다 더 위인데 퇴각지라는건 니 망상임. 애초에 수원으로 퇴각한게 명나라군이고요 ㅋㅋㅋ 그리고 케이넨의 일기는 애초에 작계라고 할 수도 없는 개인 의견이 더 많은데 뭔 소리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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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히데요시 칙서 한번 가져와봐. 니가 가져올수 있는 수준의 자료면 거기에 분명 자율권 허락한 내용 나올거거든 ㅋㅋㅋ
글쓴 ㅇㅇ(59.29)2023-08-10 1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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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넨 일기 보면 겨울까지 약탈하고 철수한다는 내용도 있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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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넨의 일기에 언급된 한양은 한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이 수준일뿐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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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고닉은 공성전이랑 야전은 구분이 안되쥬?
ㅇㅇ 2(220.93)2023-08-10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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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전투 직후 오히려 일본군은 죽산 안성까지 진격해서 선조가 지랄 난리 치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옴. 그래서 조선왕조실록 보면 이새끼들 왜 퇴각했지? 이런 내용도 나온다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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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전 하다가 튀어나기서 싸워도 공성전임? ㅋㅋㅋㅋ 공성전 개념은 알고 씨부리는거지?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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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가 "엠창찍고 저거 퇴각 맞음. 중국장수가 보장했음." 하는 기록이 선조실록에 나온단다. 1597년 9월 11일자 선조실록 뒤져봐 새끼야
그리고 사천성에서 시마즈가 뛰쳐나온것도 서로군의 명군이 화기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화기 다루다 폭약이 터져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역공한건데 그게 명 기병과 왜군 보병의 우위를 따지는 근거가 되냐? 자료 좀 읽으라고 반고닉아^ㅗ^
ㅇㅇ 2(220.93)2023-08-10 19:31:00
답글
애초에 한양 점령은 일본군 목표도 아님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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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일본이 이겨서 한양진공 목적이었음 그냥 직진하면 되지 안성 죽산으로 왜 급커브를 함?
글쓴 ㅇㅇ(59.29)2023-08-10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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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로군에 기병이 있었는데 왜 왜군에게 털렸지?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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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치면 샤르후 전투는 그냥 명군이 무뇌로 꼴박한 수준인데 그게 청나라 기병의 우위를 왜 보여주는거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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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또 난독 티내지 말라니깐^ㅗ^ 내가 언급한 심양성 요양성 전투는 후금이 요동 공격하는 전역의 일부를 언급한건데 너님은 왜 사르후 타령만 하실까?
심양성 요양성 외곽에서 명기보병이 후금 팔기군이랑 야전에서 붙은건 알고 하는말임? 사르후 전투랑 구분 좀 하세요^^
ㅇㅇ 2(220.93)2023-08-10 19: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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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서 못이길거 같으니 1차 목적인 하삼도 해안가 장악으로 목표 돌린거지. 분탕치는게 목적인 놈들이 왜 전라도 분탕칠때 고루고루 쑤시고 다닌것과 달리 한양으로 일직선으로 이동하는데?
글쓴 ㅇㅇ(59.29)2023-08-10 19:33:00
답글
그리고 히데요시 칙서 언제 가져올건데 새끼야
글쓴 ㅇㅇ(59.29)2023-08-10 1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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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군이 화약 잘못 다루다가 폭약이 터져 혼란한 상황에서 역격 당해 졌다고 언급해줬더니 앵무새마냥 기병 타령만 하네 좀 댓글 읽자니까 반고닉아? 그게 명 기병이 왜군 보병보다 하휘라는 근거가 되냐고요 좀 읽어라 읽어^^
ㅇㅇ 2(220.93)2023-08-10 19: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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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전투에서 무승부에 가까운 전과인데 그럼 일본군이 직산전투 때문에 철수했다는 당시 사료나 근거는?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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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성 전투만 해도 기습에 의한 싸움인데 벽제관 전투는 안되고 심양전투는 가능하다 이거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1:00
답글
히데요시가 한양을 노렸다는 정확한 내용은?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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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1 당초에 행장과 청정의 뜻은 세 길로 나누어 직접 서울로 올라가려 했는데 관백이 사람을 보내어 전령하기를 ‘서울은 침범하지 말고 9월까지 닥치는 대로 무찔러 죽이고 10월 안으로 서생포나 부산 등의 소굴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3일 길밖에 안 되는데 곧바로 돌아간 것이며 전라도에도 머물 뜻이 없었습니다.
10월3일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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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직산전투 전에 이미 한양 점령은 안한다는데 무슨 사료 근거로 한양 먹으려 했다는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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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고닉은 자기 멋대로 댓글을 뒤틀어서 이해하니 이제는 안쓰러울 지경이네 심양성 전투랑 벽제관 전투랑은 과정 자체가 다르다고요 아죠씨 제발 물타기나 논점 흐리는 건 그만하고 너님이 왜군이 후금 팔기병이나 명군 기병보다 우세하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자료를 제시하세요 댓글 일부만 읽고 왜곡하거나 말꼬리 잡는 뻔한 행동은 그만좀 하시고^^
ㅇㅇ 2(220.93)2023-08-10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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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으로 일직선 이동 안하는데? 애초에 왜군 1만명만 직산 이북으로 갔는데 그걸로 한양 먹으려 한거라고?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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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 대부분은 충청남도랑 전라도에 있었는데? 한양 먹는다는데 왜 북진 안함?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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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관 전투랑 심양전투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나 하고 씨부려야지 지 좆근거에 안 맞으면 이건 아니지!!! 빼에에엗!! ㅇㅈㄹ 밖에 못하는 새끼가 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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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나 기타 자료 제시는 못하지만 아무튼 내 말이 맞다구욧! 아니면 아니라는 반박을 해보라구욧! 자료는 없지만 내 말이 맞다구욧!
반고닉님 말씀이 아무튼 맛다구욧! ^오^
ㅇㅇ 2(220.93)2023-08-10 19:46:00
답글
그래서 전라도에 머물뜻이 없는데 왜 순천에 고니시가 알박았냐고 이 새끼야
글쓴 ㅇㅇ(59.29)2023-08-10 19:48:00
답글
그리고 빨랑 히데요시 칙서 가져와라
글쓴 ㅇㅇ(59.29)2023-08-10 19:48:00
답글
그래서 니가 가져오는 논문은? 난 사료까지 가져왔는데? ㅋㅋ 아무튼 내 뇌대가리가 맞닥께!!!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8:00
답글
야 빨랑 한양 진공 작전 가져와바 ㅋㅋㅋ 있지도 않겠지만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49:00
답글
케이넨의 일기와 조선물어에서 한양 진공을 입증하고 있음. 자 이제 히데요시 칙서는 어디에?
글쓴 ㅇㅇ(59.29)2023-08-10 1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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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넨이 군사 작전을 수립하는 인물임? 난 일본군 병졸의 심문+조선왕조실록에 수립된 포로 심문으로 근거하는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0:00
답글
케이넨의 일기에는 딱 한 줄임 한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1:00
답글
이게 근거라는거지?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1:00
답글
자 한양 진공 작전 근거 다시 가져와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1:00
답글
한양가는 길이 즐겁다는게 한양간다는 소리가 아니면 뭔데? 뭐 한양가는게 대단한 군사기밀이라고 그걸 꽁꽁 숨기고 케이넨은 절대 모르게 하냐? ㅋㅋㅋㅋ
글쓴 ㅇㅇ(59.29)2023-08-10 19:54:00
답글
그리고 조선물어에서 회의해서 한양진공 포기했다는 내용 나옴. ㅇㅋ?
글쓴 ㅇㅇ(59.29)2023-08-10 19:54:00
답글
자 이제 왜 고니시가 순천에 알박았는지 설명과 히데요시 칙서 가져와
글쓴 ㅇㅇ(59.29)2023-08-10 1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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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케이넨은 뭐하는 사람인지부터 밝혀야지? 이 사람이 고니시임? 시마즈임? ㅋㅋㅋ 일개 승려 일기가 근거라고?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8:00
답글
심지어 케이넨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하삼도 부대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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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한양 진공이 목적이 아니었음. 왜냐? 겨울이 오고 있는데 수군길도 안 열린 상태에서 보급도 제대로 못하는데 한양 진격한다?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19:59:00
답글
애초에 일본군은 하삼도에서도 보급길 유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양 진격을 한다고? ㅋㅋㅋ 임진년에 일본군이 한양 포기한 이유도 보급이 안되서인데?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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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 복전감개는 뭐 대단한 지위라서 그 증언은 필사적으로 믿냐? 케이넨이 승려든 따까리든 걔가 군진에 있었다는건 변치 않는 사실이고 그 군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정도는 말단병사들도 알수있는일임.
글쓴 ㅇㅇ(59.29)2023-08-10 20:02:00
답글
아 그래서 조선물어에서는 왜 한양진공을 놓고 회의를 하셨다는지? ㅋㅋㅋ
글쓴 ㅇㅇ(59.29)2023-08-10 20:03:00
답글
일본군은 칠천량에서 조선수군 다 쓸어먹었다고 생각했음. 그러니 후일 이순신이 명량에서 일본수군 개박살 내니까 지들 점령하라고 할당된 지역 다 버리고 토낀거지.
글쓴 ㅇㅇ(59.29)2023-08-10 20:04:00
답글
일개 승려 vs 전투 중 포로로 잡힌 병사의 증언 사이에서 승려의 증언이 더 믿음이 간다? ㅋ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04:00
답글
그리고 애초에 직산전투 때문에 한양 포기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04:00
답글
겨울+보급 때문에 멈춘게 맞겠지 ㅋㅋ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05:00
답글
이순신 때문에 한양 포기한것도 얼추 맞는말이긴하지 보급 때문에 애초에 한양 먹는건 무리였으니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06:00
답글
그 일개병사의 증언이 다 틀렸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전라도에 머물 생각이 없었단 놈들이 왜 순천에 알박고 10월 2일까지 배타고 일본 돌아오라고 했다면서 아무도 배탄놈이 없는 이유는?
글쓴 ㅇㅇ(59.29)2023-08-10 20:07:00
답글
직산서 천안으로 물러난 것부터가 이미 군세 추스려야 할만큼 피해를 입었단 소리다
글쓴 ㅇㅇ(59.29)2023-08-10 20:08:00
답글
직전인 1597년 2월에 도요토미는 “전라도를 제압하고 충청도 등지에 가능한 번위에서 침공하라”고 군령을 장수들에게 명령했다. 경상도는 이미 장악하고 잇으므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차지해 조선 남부를 정복하자는 것이다. 침략한 상대국을 타도하지 못했지만 그 일부라도 정복하는 것으로 전쟁 목표를 바꾸었다다는 것이다.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11:00
답글
수원으로 철수한거 자체가 이미 명나라도 더 싸울 수 없는 상태라는거임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12:00
답글
그리고 오히려 왜군은 안성까지 진격했었음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12:00
답글
왜군이 철수한건 겨울 오기 전까지 왜성으로 들어가라는 히데요시 명령에 따른것일뿐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12:00
답글
정유재란 개전 명령서
丁酉再亂 開戰 命令書
Toyotomi’s Order to Reinvade Joseon Dynasty
일본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1597년
1597년 2월 도요토미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면서 구체적인 작전 명령을 하달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일본군을 부대별로 배치하고, 조선에 쌓아놓은 왜성에 각 다이묘를 배치하라는 명령이 들어 있다. 또한 전라도를 남김없이 철저히 공략하고 군사 행동이 끝난 후에는 거점성을 지을 장소를 논의할 것을 당부하며 기필코 명까지 공략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익명(k58x4ef37hbf)2023-08-10 20:14:00
유럽에서도 화약 무기 혁명 일어나기 전까지 기병이 전투력 핵심이었다
유수원(tosi6uleer8x)2023-08-10 19:10:00
정 반대임 적어도 30년 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총병은 여전히 기병의 보조가 있어야 기병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었음 병자호란 때 계속 털린 것도 당시 조선에게 기병이 전무해서 계속 총병이 취약한 근접전을 강요당했기 때문
ㅇㅇ 1(125.191)2023-08-10 19:12:00
답글
그리고 당시 조선은 특히 30년 전쟁처럼 총기병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기병 수가 넉넉했으면 권총으로 청 기병 상대로 상황 우위를 잡는게 가능했음 기병 수가 너무 없어서 이게 안되었을 뿐
말박이들이 이기긴할듯 일본은 띵나라 못이겼잖아
청일전쟁:??? 근데 그 전에 청나라군이랑 일본군 제대로 붙은적이 없는데?
직산 전투보면 왜군은 명 기병에게도 밀리는 모습인데 정작 수만 단위 명 기병 보병이 요양성과 심양성 등지에서 청 팔기병에게 순식간에 무너짐. 왜군은 야전에서 죽어도 청 팔기병 못 이김
김화 전투에 참전한 몽고기병이 함경도에서 서우신이 이끄는 함경도 병사들 크게 무찌른 거 보면 큰 피해룰 입은 것도 아니고… 임란 병자호란 기준으로 따지면 왜군은 죽어도 팔기병 못이김
근데 직산전투는 그냥 투닥거림 수준이잖아. 사상도 양측 30~40명 수준의 전투임
반대로 벽제관 전투에서는 명나라군 썰렸음
사상자야 왜군이 수백은 되는데 고의로 누락한 정황도 있고 무엇보다 명 기병에 왜군이 밀려서 구축 당한 것 자체는 엄연한 ‘사실’임 직산 전투의 사상자가 얼마인지보다 명 기병이 각 잡고 야전에서 붙으면 왜군이 이길 수 없다는 게 중요한겨. 그리고 그런 명 기병 수만이 청군에게 무자비하게 썰린다는 걸 아셔야지
벽제관이야 이여송이 대책없이 가병 이끌고 들니밀다가 지형 이용한 왜군에게 습격당해 밀린거고
왜군 사상자가 누락되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데;; 그리고 밀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게 전투 후에 명나라군도 피해가 컸는지 그대로 한양으로 빤스런함
그럼 반대로 구로다 나가마사가 대책 없이 북진하다가 직산전투에서 말린건데;;
직산전투는 일방적인 전투로 보기엔 양측 사료 교차 검증이 잘 안되서 애매함
조선측 자료만 봐도 말이 계속 달라져서
명군은 수원으로 퇴각했지 한양 안감. 그리고 수원 퇴각이 피해땜에 빤쓰런 한거면 천안으로 빤쓰런한 일본군은 뭔데?
난 구로다가 대책없이 북진하다 밀렸단 소리 한 적도 없는데 뭔 헛소리냐? 벽제관 전투 관련 자료 좀 찾아보고 말해라. 이여송이 평양 전투 승전 이후에 생각없이 가병만 이끌고 들이민것과 직산 전투에서 양군이 격돌한 것과 같냐? 반박할거면 헛소리로 물타기하지말고 자료 들이밀어
일본군은 오히려 전투 직후 죽산까지 진격함
헛소리가 아니라 팩트임. 양측 사료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직산전투는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는게 팩트임
안성-죽산 루트는 진격한게 아니라 퇴각루트다. 실록에서도 죽산갔다니까 쟤네 왜 퇴각하냐고 비변사에서 회의하는 기록 나옴.
그리고 사천성 전투에서도 보면 7000명 시마즈군에게 기병 5000명 넘게 보유하던 명나라군 3만명이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울산성 전투에서도 명나라군 기병대가 지원오는 일본군 예비대에게 탈탈 털린적도 있음
직산 전투 이후 안성 죽산까지 올라갔는데 뭔 퇴각 루트임
안성-죽산까지 올라갔다가 히데요시 명으로 철수한거임. 이건 포로가 직접 말한거라 반론의 여지도 없음
직산전투 때문에 철수했다는 학설은 이미 폐기 처분된지 오래인데 아직도 이거 밀려고 하네
이미 언급했다시피 벽제관 전투는 이여송 뻘짓이니 벽제관 전투가 명 기병과 왜 보병의 우위여부를 가릴 근거는 못 되고 오히려 직산전투 사천성 전투 등 야전에서 왜군이 명 기병에게 몰리는 양상은 있어도 역으로 쌈싸먹는 건 안보이는데?
사천성 전투에서는 왜군이 명나라군 학살한 전투인데 너가 예시로 들고올 전투는 아닌거 같은데?
공성전 하다가 튀어나간 시마즈군에게 명나라군 개작살난 전투거든. 그 당시 기병 수천명 보유하던 명나라군 3만명이 7000명 시마즈군에게 속절 없이 털림
그놈의 포로증언 아까부터 자꾸 떠드는데 복전감개는 전라도에 머물 생각 없었다고 씨부렸지만 고니시는 순천에 알박았고 다른 포로는 10월 2일까지 모든 장수들 배타고 일본 돌아오라고 했는데 그래서 일본 간 놈 누가 있음?
너가 언급한거야 사천왜성 공성전 일부고 조명연합군 서로군이 사천왜성에 진격하는 과정에서 시마즈군과 야전에서 몇 차례 붙은건 알고 하는 말이냐? 난 야전을 말한건데 넌 왜 공성전 타령만 하냐?
이미 히데요시 칙서에 나오는 내용임. 충청도 약탈하고 겨울 전까지 왜성으로 오라 이게 팩트인데 니가 뭐라고 해도 변하는 내용이 아님
히데요시 칙서보다 니 뇌피셜이 정확한게 아니란 말이지
ㅇㅇ 반고닉은 제장명의 사천성 전투 논문을 읽고옵니다^ㅗ^ 방구석 디시인 아니랄까봐 자료는 ㅈ도 안읽어요
일본군 포로가 떠든 작계는 칠천량 해전 이전에 세워진 초기작계고 그것조차 얼마든 재량권 부여되서 얼마든 장수들 의지대로 움직여도 됐다. 케이넨의 일기와 조선물어의 회의 기사를 봐도 그 당시 일본군 목적은 한양 맞고 그냥 직산에서 군세 꺾여서 안성- 죽산 거쳐 퇴각한거임
공성하다가 시마즈가 튀어나가서 학살한거 알고 하는 말임?
방구석 디시인은 너 말하는건데
또또 난독 티내는구만 그걸 우린 공성전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꼬우면 내가 제시한 논문 읽고 오라니까?
죽산 안성은 직산보다 더 위인데 퇴각지라는건 니 망상임. 애초에 수원으로 퇴각한게 명나라군이고요 ㅋㅋㅋ 그리고 케이넨의 일기는 애초에 작계라고 할 수도 없는 개인 의견이 더 많은데 뭔 소리임
그놈의 히데요시 칙서 한번 가져와봐. 니가 가져올수 있는 수준의 자료면 거기에 분명 자율권 허락한 내용 나올거거든 ㅋㅋㅋ
케이넨 일기 보면 겨울까지 약탈하고 철수한다는 내용도 있음
케이넨의 일기에 언급된 한양은 한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이 수준일뿐
우리 반고닉은 공성전이랑 야전은 구분이 안되쥬?
직산전투 직후 오히려 일본군은 죽산 안성까지 진격해서 선조가 지랄 난리 치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옴. 그래서 조선왕조실록 보면 이새끼들 왜 퇴각했지? 이런 내용도 나온다
공성전 하다가 튀어나기서 싸워도 공성전임? ㅋㅋㅋㅋ 공성전 개념은 알고 씨부리는거지?
김수가 "엠창찍고 저거 퇴각 맞음. 중국장수가 보장했음." 하는 기록이 선조실록에 나온단다. 1597년 9월 11일자 선조실록 뒤져봐 새끼야
https://m.mk.co.kr/amp/8757374
그리고 사천성에서 시마즈가 뛰쳐나온것도 서로군의 명군이 화기에 익숙치 못한 상태에서 화기 다루다 폭약이 터져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역공한건데 그게 명 기병과 왜군 보병의 우위를 따지는 근거가 되냐? 자료 좀 읽으라고 반고닉아^ㅗ^
애초에 한양 점령은 일본군 목표도 아님
애초에 일본이 이겨서 한양진공 목적이었음 그냥 직진하면 되지 안성 죽산으로 왜 급커브를 함?
당시 서로군에 기병이 있었는데 왜 왜군에게 털렸지?
그렇게 치면 샤르후 전투는 그냥 명군이 무뇌로 꼴박한 수준인데 그게 청나라 기병의 우위를 왜 보여주는거임?
또또 난독 티내지 말라니깐^ㅗ^ 내가 언급한 심양성 요양성 전투는 후금이 요동 공격하는 전역의 일부를 언급한건데 너님은 왜 사르후 타령만 하실까? 심양성 요양성 외곽에서 명기보병이 후금 팔기군이랑 야전에서 붙은건 알고 하는말임? 사르후 전투랑 구분 좀 하세요^^
직산서 못이길거 같으니 1차 목적인 하삼도 해안가 장악으로 목표 돌린거지. 분탕치는게 목적인 놈들이 왜 전라도 분탕칠때 고루고루 쑤시고 다닌것과 달리 한양으로 일직선으로 이동하는데?
그리고 히데요시 칙서 언제 가져올건데 새끼야
명군이 화약 잘못 다루다가 폭약이 터져 혼란한 상황에서 역격 당해 졌다고 언급해줬더니 앵무새마냥 기병 타령만 하네 좀 댓글 읽자니까 반고닉아? 그게 명 기병이 왜군 보병보다 하휘라는 근거가 되냐고요 좀 읽어라 읽어^^
직산전투에서 무승부에 가까운 전과인데 그럼 일본군이 직산전투 때문에 철수했다는 당시 사료나 근거는?
심양성 전투만 해도 기습에 의한 싸움인데 벽제관 전투는 안되고 심양전투는 가능하다 이거임?
히데요시가 한양을 노렸다는 정확한 내용은?
포로1 당초에 행장과 청정의 뜻은 세 길로 나누어 직접 서울로 올라가려 했는데 관백이 사람을 보내어 전령하기를 ‘서울은 침범하지 말고 9월까지 닥치는 대로 무찔러 죽이고 10월 안으로 서생포나 부산 등의 소굴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울까지 3일 길밖에 안 되는데 곧바로 돌아간 것이며 전라도에도 머물 뜻이 없었습니다. 10월3일
애초에 직산전투 전에 이미 한양 점령은 안한다는데 무슨 사료 근거로 한양 먹으려 했다는거?
이 반고닉은 자기 멋대로 댓글을 뒤틀어서 이해하니 이제는 안쓰러울 지경이네 심양성 전투랑 벽제관 전투랑은 과정 자체가 다르다고요 아죠씨 제발 물타기나 논점 흐리는 건 그만하고 너님이 왜군이 후금 팔기병이나 명군 기병보다 우세하다고 주장하고 싶으면 자료를 제시하세요 댓글 일부만 읽고 왜곡하거나 말꼬리 잡는 뻔한 행동은 그만좀 하시고^^
한양으로 일직선 이동 안하는데? 애초에 왜군 1만명만 직산 이북으로 갔는데 그걸로 한양 먹으려 한거라고? ㅋㅋㅋ
왜군 대부분은 충청남도랑 전라도에 있었는데? 한양 먹는다는데 왜 북진 안함?
벽제관 전투랑 심양전투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이나 하고 씨부려야지 지 좆근거에 안 맞으면 이건 아니지!!! 빼에에엗!! ㅇㅈㄹ 밖에 못하는 새끼가 ㅋㅋ
논문이나 기타 자료 제시는 못하지만 아무튼 내 말이 맞다구욧! 아니면 아니라는 반박을 해보라구욧! 자료는 없지만 내 말이 맞다구욧! 반고닉님 말씀이 아무튼 맛다구욧! ^오^
그래서 전라도에 머물뜻이 없는데 왜 순천에 고니시가 알박았냐고 이 새끼야
그리고 빨랑 히데요시 칙서 가져와라
그래서 니가 가져오는 논문은? 난 사료까지 가져왔는데? ㅋㅋ 아무튼 내 뇌대가리가 맞닥께!!!
야 빨랑 한양 진공 작전 가져와바 ㅋㅋㅋ 있지도 않겠지만 ㅋㅋㅋ
케이넨의 일기와 조선물어에서 한양 진공을 입증하고 있음. 자 이제 히데요시 칙서는 어디에?
케이넨이 군사 작전을 수립하는 인물임? 난 일본군 병졸의 심문+조선왕조실록에 수립된 포로 심문으로 근거하는데
케이넨의 일기에는 딱 한 줄임 한양으로 가는 길이 즐겁다
이게 근거라는거지? ㅋㅋㅋ
자 한양 진공 작전 근거 다시 가져와
한양가는 길이 즐겁다는게 한양간다는 소리가 아니면 뭔데? 뭐 한양가는게 대단한 군사기밀이라고 그걸 꽁꽁 숨기고 케이넨은 절대 모르게 하냐? ㅋㅋㅋㅋ
그리고 조선물어에서 회의해서 한양진공 포기했다는 내용 나옴. ㅇㅋ?
자 이제 왜 고니시가 순천에 알박았는지 설명과 히데요시 칙서 가져와
자 케이넨은 뭐하는 사람인지부터 밝혀야지? 이 사람이 고니시임? 시마즈임? ㅋㅋㅋ 일개 승려 일기가 근거라고? ㅋㅋㅋ
심지어 케이넨이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하삼도 부대임
애초에 한양 진공이 목적이 아니었음. 왜냐? 겨울이 오고 있는데 수군길도 안 열린 상태에서 보급도 제대로 못하는데 한양 진격한다? ㅋㅋㅋ
애초에 일본군은 하삼도에서도 보급길 유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양 진격을 한다고? ㅋㅋㅋ 임진년에 일본군이 한양 포기한 이유도 보급이 안되서인데?
이열 복전감개는 뭐 대단한 지위라서 그 증언은 필사적으로 믿냐? 케이넨이 승려든 따까리든 걔가 군진에 있었다는건 변치 않는 사실이고 그 군대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정도는 말단병사들도 알수있는일임.
아 그래서 조선물어에서는 왜 한양진공을 놓고 회의를 하셨다는지? ㅋㅋㅋ
일본군은 칠천량에서 조선수군 다 쓸어먹었다고 생각했음. 그러니 후일 이순신이 명량에서 일본수군 개박살 내니까 지들 점령하라고 할당된 지역 다 버리고 토낀거지.
일개 승려 vs 전투 중 포로로 잡힌 병사의 증언 사이에서 승려의 증언이 더 믿음이 간다? ㅋㅋㅋ
그리고 애초에 직산전투 때문에 한양 포기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음
겨울+보급 때문에 멈춘게 맞겠지 ㅋㅋ
이순신 때문에 한양 포기한것도 얼추 맞는말이긴하지 보급 때문에 애초에 한양 먹는건 무리였으니
그 일개병사의 증언이 다 틀렸으니까 그렇지. 그래서 전라도에 머물 생각이 없었단 놈들이 왜 순천에 알박고 10월 2일까지 배타고 일본 돌아오라고 했다면서 아무도 배탄놈이 없는 이유는?
직산서 천안으로 물러난 것부터가 이미 군세 추스려야 할만큼 피해를 입었단 소리다
직전인 1597년 2월에 도요토미는 “전라도를 제압하고 충청도 등지에 가능한 번위에서 침공하라”고 군령을 장수들에게 명령했다. 경상도는 이미 장악하고 잇으므로, 전라도와 충청도를 차지해 조선 남부를 정복하자는 것이다. 침략한 상대국을 타도하지 못했지만 그 일부라도 정복하는 것으로 전쟁 목표를 바꾸었다다는 것이다.
수원으로 철수한거 자체가 이미 명나라도 더 싸울 수 없는 상태라는거임
그리고 오히려 왜군은 안성까지 진격했었음
왜군이 철수한건 겨울 오기 전까지 왜성으로 들어가라는 히데요시 명령에 따른것일뿐
정유재란 개전 명령서 丁酉再亂 開戰 命令書 Toyotomi’s Order to Reinvade Joseon Dynasty 일본 사가현립나고야성박물관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1597년 1597년 2월 도요토미가 다시 조선을 침략하면서 구체적인 작전 명령을 하달한 문서이다. 이 문서에는 일본군을 부대별로 배치하고, 조선에 쌓아놓은 왜성에 각 다이묘를 배치하라는 명령이 들어 있다. 또한 전라도를 남김없이 철저히 공략하고 군사 행동이 끝난 후에는 거점성을 지을 장소를 논의할 것을 당부하며 기필코 명까지 공략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유럽에서도 화약 무기 혁명 일어나기 전까지 기병이 전투력 핵심이었다
정 반대임 적어도 30년 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총병은 여전히 기병의 보조가 있어야 기병을 제대로 상대할 수 있었음 병자호란 때 계속 털린 것도 당시 조선에게 기병이 전무해서 계속 총병이 취약한 근접전을 강요당했기 때문
그리고 당시 조선은 특히 30년 전쟁처럼 총기병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에 기병 수가 넉넉했으면 권총으로 청 기병 상대로 상황 우위를 잡는게 가능했음 기병 수가 너무 없어서 이게 안되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