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산전투가 9월 8일이고 일본군이 안성-죽산을 침범한게 9월 10일임.

그리고 그게 조선 조정에 알려진게 9월 14일이고.



왜적이 10일에 안성(安城)을 노략질하고 전진하여 죽산(竹山) 지경을 침범하였다.


선조 30년 9월 14일 신축 5번째기사 





그런데 일본군이 안성-죽산을 침범했다는 소식을 들은 조정에선 일본군이 왜 후퇴하냐고 회의함.




밤 4경에 상이 별전(別殿)에 나아갔는데, 비변사 당상(備邊司堂上) 홍진(洪進), 좌승지 우준민(禹俊民), 우승지 김신원(金信元), 동부승지 최천건(崔天健), 가주서(假注書) 권진(權縉)·심즙(沈諿), 검열(檢閱) 정홍익(鄭弘翼)·이필영(李必榮)이 입시(入侍)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 초기(草記)를 발락(發落)하기도 전에 여러 당상들이 다 흩어져 가버린 것은 무슨 까닭인가? 지금이 어떤 때인가? 대신(大臣)에게 밀부(密符)를 보내 밤중에 부르면 의당 뭔가 급박하고 긴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쏜살같이 달려와야 하는데 좌상(左相)은 병이 났다고 핑계하고서 오지 않았으니, 정말 병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중국 장수가 뜻밖에 이런 조치를 하였는데, 지나친 염려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예병을 다 거느리고 남쪽으로 내려간 뒤에 흉적이 그 뒤로 돌아나와 앞뒤에서 적의 공격을 받는다면 일이 예측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흉적이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철수하여 물러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장수가 흉계에 빠져들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하니, 준민이 아뢰기를,

"알 수 없습니다. 중국 장수가 우리 나라에서 군기(軍機)를 누설할까 염려하여 모든 일을 완전히 비밀에 붙인다고 합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비변사의 여러 재신(宰臣)들은 어떻게들 의논하였는가? 나는 그 사이의 곡절을 모르니 의혹이 없을 수 없다. 왜적이 물러가는 것은 그 뜻이 어디에 있는가? 별로 두려워할 것도 없는데 이와 같이 하니 흉모를 추측할 수가 없다. 중국 장수는 반드시 적실하게 적정(賊情)을 듣고 나서 이런 조치를 한 것인가?"

하니, 홍진이 아뢰기를,

"어제 저녁 비변사에서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이 왜적이 안성(安城)을 경유하여 곧장 여주(驪州)로 향해서 상류로 돌아나오려는 것이 아닌가?’ 하니, 사람들이 모두 그렇지 않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김수(金睟)는 말하기를 ‘왜적은 필시 충주(忠州)의 길을 택하여 영남(嶺南)으로 철수해 돌아갈 것이다. 중국 장수가 상세히 정탐한 뒤이어서 절대로 그럴 리가 없으니 의심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였고, 유성룡(柳成龍)은 역시 말하기를 ‘왜적이 바로 쳐들어 올 수 있는 세력을 갖고 있는데 무엇을 꺼려 이렇게 군사를 몰래 움직여 돌아나오는 계책을 세우겠는가.’ 하였습니다."

 선조 30년 9월 15일 임인 4번째기사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009015_004



굵은 글자 보면 알수있듯이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안성-죽산 기동 자체를 퇴각이라고 판단했음. 

실제로 일본군은 중국장수의 말대로 안성-죽산-충주 라인을 거쳐 경상도로 퇴각함.


사실 이런 판단이 너무 당연한게 직산에서 한양 가려면 그냥 쭉 직진하면 그만임. 

안성-죽산은 직산에서 거의 90도로 커브해야 갈수 있는 곳이고.

한양 진공이 목적이라면 유성룡 말대로 그냥 바로 쳐들어가면 됨.


결국 안성-죽산 방면으로 간건 당시 조정 말대로 일본군의 퇴각행위지 한양 가려고 찔러본게 아니다 이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