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이 독일제국의 중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프로이센이 ‘원래’ 독일국가가 아니며, ‘순수한’ 독일국가는 더욱 아니며, ‘순수게르만의’ 라인란트와 베스트팔렌을 제외하고 단지 ‘게르만화한 슬라브 국가’이기 때문이었다.77) 예전에 ‘낯설었던’ 프로이센이 이제 ‘순수독일적’이 되었다는 주장에, 『라이니셰 폴크스할레』는 프로이센의 본성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78)
프로이센 황제권은 프로테스탄트 황제권으로서,79) 프로테스탄트의 보호자로서,80) 프로테스탄트의 보다 큰 명예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기에, 가톨릭교도의 종ㅁㅁㅁ교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무시할 것이라고 우려되었다.81) 특히 프로이센 프로테스탄트 국왕의 가톨릭 신민은 다른 독일국가의 가톨릭교도보다 종ㅁㅁㅁ교적으로 ‘민감한’ 태도를 보였다. 쾰른 가톨릭교도는, 독일기사단장이었던 알브레히트(Albrecht)가 루터의 조언에 따라 수도사의 옷을 벗고 프로이센공이 되었기 때문에, 프로이센 왕은 가톨릭교도를 ‘희생’하여‘프로테스탄트 교황’의 지위를 얻었다고 주장하였다.82)
78) “Die Niederlage der ‘Einheitspartei’ in Gotha. Köln, 16. Juli,” Rheinische Volkshalle, 196 (1849. 7.17).
79) “Ein Wort für das deutsche Reich. Frankfurt, 2. April,” Rheinische Volkshalle, 100 (1849. 4. 13).
80) “Duisburg, im April,” Rheinische Volkshalle, 91 (1849. 4. 4).
81) “Bonn, 13. Mai,” Rheinische Volkshalle, 132 (1849. 5. 15).
82) “Vermischte Nachrichten,” Rheinische Volkshalle, 44 (Bl., 1849. 2. 16).
-김필영, 「3월 혁명기 가톨릭 보수 언론의 독일 통일국가 안(案): 가톨릭교회에 기반을 둔 독일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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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내 반프로이센 쪽에선, 특히 가톨릭 지역들은 프로이센을 '슬라브'로 보는 시선이 있었음.
흔히 폴란드가 동프로이센이라거나, 혹은 폴란드가 독일 폭력성의 근원인 프로이센 먹고 호전화 되었다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음.
즉 애초에 프로이센이 서폴란드이고, 서폴란드 때문에 독일이 호전화되었고, 2대전 후 폴란드의 폭력성으로부터 독일이 해방됐다고(...)
슬라브라기보단 원 프로이센 사람들은 발트계열 아니었나
서폴란드 동독일 ㅇㅈㄹ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