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가옥은 본디 1000만평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 최고의 지주 중 하나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별장으로 지어진 집이었음. 그는 이 집을 양식 일식(다다미방과 문 달린 마루) 한식(온돌방)이 혼재된 집으로 만들었으며 각종 자재와 가구 장식품을 조선 팔도도 모자라서 유럽에서까지 이 집을 꾸몄음.
그러나 이 구마모토라는 사람은 다른 소작인에 비해 특이한 전이 있었는데 소작농의 건강에 특히나 신경을 쓴 사람이었음. 이영춘 박사의 말에 따르면 그가 건강하던 소작농이 하루아침에 죽어버린 일을 빈번하게 경험했다고 함. 그리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이영춘 박사를 불러 자혜진료소를 설립하였다고 함. 이것이 바로 이영춘 박사의 의료 봉사의 시작이었음.
그는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을 진료했다고 함. 그러던 중, 그는 환자를 줄일려면 치료를 넘어서서 예방의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구마모토에게 간청하여 농촌 위생 연구소의 설립을 계획하게 되었음. 이영춘 박사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간 그는 당시 돈으로 520만원을 들여 농촌 위생연구소를 만들어 줬는데 이때가 1945년 5월의 일이었음
그러나 일제가 패망하도 이 계획은 허공으로 날아갈 위기에 처했음. 구마모토는 일본으로 도망가버렸거 이영춘 박사는 주민들의 간청으로 군산에 남았지만 이때까지의 계획은 모두 수포가 되었음. 그래서 이영춘 박사는 또다시 미군정에게 농촌위생연구소의 설립을 간청하였고 다행히도 그 해에 원조금과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음. 그리고 이뿐만 아니라 개정중앙병원의 설립까지 해낼 수 있었음.
그 외에도 그는 간호학교의 설립(현 군산간호대학. 이영춘 가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건소 유치 등 농촌 위생을 위해 힘썼고 1980년에 작고하셨음
그 외에도 그는 간호학교의 설립(현 군산간호대학. 이영춘 가옥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건소 유치 등 농촌 위생을 위해 힘썼고 1980년에 작고하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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