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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은 소련 공군에게 큰 변혁기가 되었음.
우선 1945년 트리니티 실험으로 미국 쪽에 급격히 기울었던 공포의 균형은 1949년 소련의 ‘뻬르바야 몰리냐’ 실험으로 균형을 맞추게 됨.
하지만 미국은 B-29 폭격기, B-36 폭격기를 잇따라 실전 배치함에 따라 어디서든 소련 본토에 핵폭격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소련에겐 심각한 위협이었음.
B-29 폭격기
B-36 폭격기
소련 입장에선 다행스럽게도 시기 적절하게 미그-15를 선두로 다수의 고속 제트 전투기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전투기라면 그래도 화력과 속도 면에서 폭격기를 요격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기는 했음.
미그-15
La-15
하지만 최고속도 670km/h에 달하는 B-36은 제트전투기라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음. 거기다 시대의 흐름 상 제트엔진을 사용하는 폭격기가 배치되는 건 시간 문제였음.
그랬기 때문에 1950년대 소련 공군/방공군 전투기들은 빠르게
올라가서 적기를 향해 빠르게 돌입해 강력한 화력으로 요격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음. 이런 맥락에서 N-37이나 NR-30 같은 대구경 기관포 다수를 비교적 소형인 전투기에 꾸역꾸역 탑재하려 했던 건 일견 당연했음.
이러했던 소련 공군에 앞으로의 공중전을 결정지을 것 같았던 3신기가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 사이에 등장하게 됨.
미그-21
K-13/AA-2 공대공 미사일, 나토 코드명 아톨
Vozdukh 지상 관제 요격 체계
Vozdukh는 미국의 SAGE와 유사하게 컴퓨터의 계산에 따라 적기 요격에 투입될 전투기에 최적화된 코스를 제공하고 타겟을 할당할 수 있었음.
이에 따라 공대공 미사일로 무장한 미그-21 조종사는 지상 관제에 따라 최적화된 코스에 따라 요격 작전을 수행하는 미사일싸개가 되었음.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월맹공군 등의 이미지 때문에 소련 공군은 안 그랬을 거 같지만 소련 공군도 미 공군과 똑같이 미사일 만능주의에 빠져 있었음. 그래서 초기형인 미그-21-F-13에는 기관포를 탑재하긴 했는데 30미리 60발이 고작이었고 PF형에 이르면 기관포를 아예 빼버렸음.
(물론 Gsh-23-2 기관포팩이 있기는 했음.)
심지어 지상 관제에 따라 폭격기 요격을 하게 될 전투기들은 2G 이상의 기동을 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받았음. 2G 이상으로 기동하면 미사일을 쏠 수 없었기 때문임.
결국 미국이나 소련이나 핵투발 폭격기 요격을 제1명제로 두고 똑같은 수단을 만들어서 똑같은 뻘짓을 하게 됨.
하지만 곧 뜨거운 맛을 보게 됨.
다만 장소는 달랐음.
미 공군은 베트남에서 뜨거운 맛을 봤음을 누구나 알고 있음.
의외로 소련은 시나이 반도에서 뜨거운 맛을 보게 됨.
직접 맛본게 아닌게 다행이려나? ㄲ
소련도 미사일뽕에 빠진 적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