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전투에 이골이 났던 친구들이니 당연히 200년간 평화에 찌든 조선무장보다 일본 무장들의 무예 실력이 평균적으로 뛰어났겠지 환도보다 일본도가 리치가 길어서 우위인점이 분명히 있고 근데 이게 조선군의 패주에 결정적이였을까?
물론 어느정도 영향은 줬겠지만 조선군이 육전에서 고전했던 이유는 서술했다시피 전쟁에 이골이 난 왜군측이 진법싸움에서 엄청난 능력을 보였다는 점임
단순히 일본 쪽이 칼이 단단해서? 장수들이 칼싸움을 잘해서? 아님.
매체에서 전근대 싸움이라함은 칼만든
양측군이 벌판에서 서로 마구 뒤엉켜 돌격해 개싸움을 벌이는걸로 묘사되는데
현실에선 절대 그럴수없었음 어느쪽이든 한쪽이 진이 깨지면 그쪽은 몰살당하고 있거나 진을 전두지휘할 지휘체계가 박살이 났다는건데 사람들이 이런 혼전백병전 모습만 생각하니깐 아 일본군이 조선군보다 1대1 맞다이 무예실력이 출중했겠네 그러니깐 조선군이 사움에서 졌겠지하고 만다는거
실제 전투 기록을보면 조선군 진영 장수들은 진을 지휘하는데서 찐빠를 많이 냄
일본군에 유동적이고 선경험자적인 포진에 휘말려 진격,후퇴 타이밍을 놓치거나 잘못된 지휘를 내려 살수들이 죽어나가기 일쑤였음
방패수와 살수들이 많이 죽으면 후위에 창병이나 특히 조선군의 장점인 궁병들은 힘을 쓸 수가 없었음 그냥 와르르 무너지는 것 지휘관이 전쟁 경험도 적고 지가 지휘를 좆같이 해놓고선 지레 일본군에 겁을 먹어 병사들을 무리하게 기동시키다 섬멸되는 경우도 많았고
이 점을 단순 조선,일본 무예와 결탁시키기엔 문제가 많음
아무리 일본 무사가 무예실력이 좋아도 그게 무사시 할애789비라도 진에서 혼자나와 칼춤추다간 농사짓다 끌려온 두식이가 날린 화살 2방처맞고 똘똘 뭉친 돌쇠 삼식이 갑수같은 창병 1,2,3한테 꼬챙이 구이되는게 현실이였으니깐 그리고 아무리 일본도 리치가 좋아봤자 어케 창병 리치를 메꾸겠냐
당장 이괄의 난에서도 항왜들의 칼 실력은 조선 전체가 알아줬는데 도성 근처 정충신과의 교전에서 진 무너지니깐 얄짤없이 다 쓸려나간 것과 같은 이치임
20만명 중 상당수는 조선군과 똑같이 밭에서 김메기하다 온애들인데 얘네가 단지 왜군이라고 개인기량이 조선군을 압살했을까봐?
오히려 이런 진법싸움이 안통하는 의병들의 기습이나 공성전에서 일본군은 적잖게 당황하며 패주하는 모습을 많이보여줌
결론은 임란 초기 조선의 졸전은 일본의 무사도니 일본도의 승리니 뭐니가 아니라 숱한 내전으로 이어져온 왜장들의 노련한 현장 지휘와 조선군의 어랜 평화로 무뎌진 지휘관들의 실수,무경험에서 비롯된 현장 지휘에서의 오류로 한층 더 우위인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
나중가선 조선군도 경험자꾸 쌓이고 베테랑 부대생기니깐 잘 비벼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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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군대는 개인 퍼포먼스나 무기보단 조직력이 좌우하는거 국방군의 교환비딸의 가장 큰 원인은 임무형 지휘체계랑 우수한 제병협동역량 떄문이었으니까
특히 전근대는 더하지 - dc App
애초에 각잡고 침공하려고 대기하던 병력이랑 급하게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은 병력이랑 지휘통제 측면에서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도 있을듯 - dc App
제승방략이 그래서 문제가 컸던게 저런 전근대 진법싸움은 병사와 지휘관이 갵은 막사에서 훈련하며 머리와 수족이 놀듯이 훈련이 이뤄져야하는데 생전 첨보는 놈이 서울에서 내려와 대구군사를 이끌고 이런 식이니 뭐가될리가 당장 조선이 가용한 최고 아웃풋 신립도 충주랑 한양병력이 뒤엉켜있었음 - dc App
왜군은 개인기량도 높다는게문제지ㅠ전국시대는 심한경우는 마을끼리도 전투를했거든
그 개인기량이 단순히 무예나 칼질의 차이보단 지휘와 대전략에서 많이났던개 문제였음 - dc App
ㅇㅇ 그것도있지만 무예도 정신력적인측면에서도 높다는것도문제임 걍 200년동안전쟁만하면서 누구를 죽인다 라는 심리적인 거부감 이무뎌진것도있고 실제로전투를치루면서 대열을 더잘지키게돼는것도 포함되니까
글고 마을단위 전투가 많았다는거는 소부대 전술도 월등했을거임 저어기 북방군은 대등했을지도모르지만 - dc App
그리스시대부터 그러했음. - dc App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저 시대 화포들의 강력함이 체감되네 조란환 펑펑 쏴주면 방진이 사르르 녹아내렸을테니
진법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 왜 터지지도 않는 철환따리가 전투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나요하고 반문하곤하지 진깨는덴 화포맘한게 없다 - dc App
뭉쳐있는데 산탄 찜질 당하거나 대형 철환에 볼링핀마냥 얻어맞는다고 생각하면...어우 끔찍....
결론은 해본놈이 잘하니 훈련체계가 중요하다 이말이군 그리고 기초적으로 경험한것에 대해선 일본군이 잘 대응했지만 게릴라는 많이 못 겪어봐서 상대적으로 그런거에 털렸던거고
애초에 그짝 농민공들은 무사들한테 덤빌 생각도 안하니깐 - dc App
아 그렇긴 하네
쨋든 정말 왜군의 무예도가개쩔어서라고 단정짓기엔 농민공들 낫이랑 죽창들고 오는거에 패주할 수가 없지 그자리에서 다 죽여버렸을걸 - dc App
그럼 일본의 잇키들은 머임?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 모가지를 딴 아케치 미쓰히데도 잇키한테 뒤졋음
흠..
저런 대규모 전투에서 대규모 군대에 농민들이 막 덤비진 않는다는거지 혁명도 아니고 - dc App
아 엄밀히 좀 다른얘기구만
잇키는 좀 복합적 용어임. 단순 농민 봉기를 의미한다기 보다는 목적이 같은 이익 집단끼리 뭉쳐서 일으키는 봉기라고 보면 됨. 상인이나 종교 단체, 국인중 등 이런게 뭉쳐서 일어나는게 잇키임. 그리고 생각보다 대규모로 일어난 경우도 많았음. 노부나가도 겐신도 이에야스도 잇키들 때문에 쌩 고생을 했었지 ㅋㅋ - dc App
애초애 그냥 단순히 개인기량 때문에 밀린거라 치기엔 후기에 조선군도 육전에서 더 이상 그렇게 밀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지않나 전근대 전장이 무슨 영화처럼 1대1로 뒤엉켜서 싸우는게 아니고 방진짜서 싸우던때인데
ㅇㅇ 내가하고 싶은말 요약한 한문단이네 - dc App
아이신기오로 아민: 솔호놈들은 성에만 들어가면 겁대가리를 상실하나? 칼부림 中
행주산성 : 10배 병력차 극복 - dc App
진법에서 차이난 것도 있는데 난전은 라인배틀 전까지 최중요 요소 중 하나고 이건 임란에서도 결국 도검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 짓는다고 이야기되는 이유임
당시에 일본은 병농분리 시동건지 얼마되지않았다 아시가루는 평상시에는 농사짓다가 소집되면 끌려나오는 사람들이라 경험은 풍부했고, 아시가루 아니더라도 자위차원에서 무장하고,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낙오무사사냥에 나서는경우도 많았다 근처에서 무사간의 합전이 벌어져서 어느한쪽이 패주하는경우에 전리품을 노리고 농민들이 직접 패잔병사냥에 나섰던거임 60센치 이하의 날붙이는 무기로 취급도 안해서 칼사냥할때도 60센치 이하의 칼은 그냥 놔두던 시절이니 얼마나 전란이 흔했을지 예상할수있음
https://m.dcinside.com/board/war/3147672
이런거 보면 개인 기량도 개후달렸던게 맞음 걍 총체적 난국
어차피 그 개인 역량 대규모 회전에서 진법 싸움 벌이면 써먹지도 못해 말했듯이 진나와서 뭐 해보려다간 상대 진한테 죽기밖에 더함? - dc App
오히려 개인 역량 다 쏟아낼 수 있는 공성전에선 정작 개털린 적 존나 많은거보면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 없음 - dc App
당사자들이 결전 때마다 왜놈 무기술 개같았다고 기록해놨는데 정떡으로 갱차당하는 놈 답게 레퍼 제시해도 지 할말만 싸지르노 ㅋㅋ
왜놈 무기술이 개같다고 기록한거랑 그게 결정적인 패착이였는가는 다른 문제임
"이 전열이 무너지면 다같이ㅈ된다 " vs "나 하나쯤..."
그 나하나쯤이란 생각을 버릴 수 있는 경험을 쌓은게 크지 - dc App
ㅇㅇ 일본이 200년간 내전상태였다면 아무리 싸움과 관계 없는 농민도 이정도는 사회분위기상 알고는 있지 않았을까?
애초에 일본군도 창병으로 이루어진 방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대였고 그걸 상대하던 조선군도 마찬가지였지. 칼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하는 건 본인 취향상 이유로 고집을 부리거나, 아니면 정말로 시야가 너무 좁아서 국지적인 부분에만 집착을 한 결과임.
바로 밑에계시네요 - dc App
조선 원딜이 힘쓸라믄 앞에 탱커들이 버터야 된다는게 ㅇㅇ 공감가네 진주성도 그렇고
방패수랑 살수 진영이 무너지면 궁병은 ㅈ빠지게 튀어야지 뭐 - dc App
영화 남한산성보면 특히 그럼 무예 실력을 좌지우지해보기 전에 달려오는 적을 보고 어버버하다 튀거나 발포하면 주변도 덩달아 무너지는게 문제임 두려움이라든지 사기부터 어떻게 하는게.... 물론 훈련은 중요하지만 달려오는 적에 압도되어서 지레 겁먹고 빤스런치면 주변도 먼저 도망치는 애 보고 어어 돔황챠!하면서 도망쳐서 뭘해보기전에 진형부터 무너지는게 문제지 무예실력은 의미없다고 생각함 - dc App
개개인의 역량이라는게 단순히 무예만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조직력 사기 전부 이야기하는거지 결국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 더 무예실력도 높고 사기도 높고 조직력도 높은거임
근데 애초에 왜군도 주전력은 장창병이잖아?
개개인의 역량보단 전술에 주목하는 좋은 글이긴 한데 결국 지휘관의 전략 전술의 스탭을 맞춰주는건 조직력과 개개인의 전투력(전문성)이 중요하긴함 프리드리히가 7년전쟁 초기엔 잘싸우다가 중반부터 찐빠내기 시작한게 배테랑의 급감이 원인중 하나였으니
이 댓글이 답인데 너무 관심이없네
조선군은 일반병력 대비 부사관이나 초급장교진이 비율 똥망으로 봤던 거 같다. 그러니 진형싸움의 유연한 대응도 안될 뿐더러 그 진형의 단단함, 탱킹능력도 아주 안좋았던 걸로 생각된다. 오백명 지휘하는데 군관하나 있으면 통솔이라는게 될 리 없지
일본군은 전투경험이 풍부하거나 있는 하급무관 내지는 고참병 같은 부사관 계층이 있었는데 조선은 없는게 가장 치명적이었다고 생각함 - dc App
조선군이 제식훈련이라도 할수 있었으면 방진 유지력이 훨 뛰어났을거같은데 - dc App
조선이 화포 좋아했던것도 결국 가성비 좋게, 평상시에 농업하다가 숙련된 몇몇 포수들만을 통해서 상대의 진법을 깨트려 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스탈린도 그렇고 힌국 국방부도 그렇고 우러전도 보면 그렇고 확실히 포라는게 숙련도 차이를 일부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도구 같음
ㅇㅇ 수년간 지옥같은 전장에서 호흡을 맞춰오며 같은 지역에서 온 정예들이 아따 왱왜이렇게무거워쓰버렸을까잉하며 가져온 총통 철환맞고 싹 쓸려나가면 그 전투는 이겨도 이긴게 아니지 - dc App
제일 간단한 이유 : 일본군이 병력이 존나 많았음. 질적차이 빼더라도 조선군이 피크 야전군 13만 굴리다가 금방 수 만 수준으로 떨어졌고 정유재란때는 2~3만도 간신히 동원할 정도로 피폐해졌는데 얘넨 걍 15~20만을 그냥 드랍해놔서
중세 접전특 개싸움 아님 1ㄷ1 무한반복임 - dc App
글고 진 무너지면 좆되는건 회전 특이었잖어 - dc App
전의경 출신들은 진법의 중요성을 잘 알걸 ㅋㅋ 대열에서 한명이라도 나가거나 뚫리면 ㅈㄴ 위험하다는거ㅋㅋ - dc App
전국시대 내내 베테랑의 다수가 장창인거보면 일본도는 생각보다 큰 역할은 못할 가능성이 크긴하지
근데 왜병의 작전수행능력이 뛰어난것도 사실이기도 함
칼들고 붕붕하는것만이 개개인 전투력을 말하는게 아니니까 정찰이나 병종간 전술적차원에서 조직력 유지가 절대 쉬운일이 아님 . 그리고 개전 중후되면 본문처럼 개개인의 기량차이는 사실상 의미 없어지는거고 전쟁이란게 너무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서 뭐든간 단정하기 불가능함